말다툼 중 사표 쓰란 상사, 진짜 출근 안 한 직원…대법 “일방적 해고”

이가람 매경닷컴 기자(r2ver@mk.co.kr) 2023. 2. 20.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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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연합뉴스]
회사 간부로부터 반복적으로 사표를 쓰라는 질타를 받은 근태 불량 직원이 사직 의사를 전달하거나 사직서 제출 절차를 생략한 채로 출근을 하지 않았더라도 해고를 당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20일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버스기사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2020년 1월 한 전세버스회사에 입사해 통근버스 운행을 담당했다. 그러다 두 차례 무단으로 결근해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다. 이에 버스회사 관리팀장은 같은 해 2월 A씨를 사무실로 불러 강하게 꾸짖었다.

이 과정에서 관리팀장이 “사표 쓰고 가라”는 발언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그러자 A씨는 “해고시키는 거냐”고 확인했고, 관리팀장은 “회사에 도움은 안 주고 피해를 줬기 때문에 그만두라”라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리팀장은 A씨에게서 버스 키도 회수했다.

A씨는 이튿날부터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 버스회사는 A씨가 출근하지 않았지만 문제 삼지 않았다. A씨는 그로부터 3개월 뒤인 같은 해 5월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했다. 또 A씨는 버스회사에 사과를 요구하면서 출근하지 않았던 기간에도 임금을 달라는 내용증명을 보낸 뒤 소송을 제기했다.

중앙노동위는 해고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A씨는 소송을 제시했다. 1심과 2심은 버스회사의 손을 들어 줬다. 관리팀장에게 직원을 해고할 권한이 없고, 사표를 쓰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우발적인 발언이라고 판단했다. 또 버스회사가 A씨에게 ‘무단결근에 따른 정상근무 독촉 통보’를 보낸 것을 참작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A씨가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버스회사와 근로계약관계가 존속한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봤다. 또 관리팀장에게는 A씨를 해고할 권한이 없는 것은 맞지만, A씨가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한 뒤에야 버스회사가 출근을 독촉했다는 점으로 미뤄 대표이사가 묵시적으로 해고를 승인·추인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고에게 버스 키 반납을 요구하고 회수한 것은 그로부터 노무를 수령하지 않겠다는 의미”라며 “해고는 묵시적 의사 표시에 의해서도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서면 통보는 해고의 효력 여부를 판단하는 요건일 뿐 의사 표시의 존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어서, 근로자가 보인 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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