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선 주장, 사실 아니다" 산악계 줄소송 예고
오은선 대장의 자서전 <오은선의 한 걸음>이 불러 일으킨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관련기사 : 오은선 "박영석, 엄홍길 앞지르려다 셰르파 희생"…朴의 유족 "死者 명예훼손, 산악계와 함께 강력 대응") 오 대장이 본인의 시각으로 담은 다른 등반가들의 행태가 부적절하거나 부당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책에서 비판적으로 서술된 당사자들은 "책의 내용 상당수가 사실과 다르다"며 "책을 통해 일방적으로 잘못된 사실이 알려지고 있는데 월간<산>을 통해 바로잡고 싶다"고 본지에 해명 기사를 요청했다. 이에 이들의 주장을 듣고, 균형있는 기사 작성을 위해 오 대장에게 반론을 요청했다. 오 대장은 일부 주장에 대해 반론을 내놓기도 했으나 "앞으로 변호사와 의논해 처리할 것이기에 기사화하지 말아 달라"는 입장임을 밝힌다. - 편집자
오은선 대장의 자서전 <오은선의 한 걸음>이 일으킨 논란이 새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책에서 부정적으로 묘사됐던 산악인들과 그 유가족들이 하나, 둘 도저히 좌시할 수 없다며 본지를 통해 반박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홍경희 박영석산악문화진흥회 이사장, 김재수 대장, 박준우 전 '그것이 알고싶다' PD, 홍보성 부산다이나믹원정대 대장, 정상욱 전 노스페이스 이사의 반박을 담는다. 이들은 현재 각각 오은선 대장에게 내용증명을 통해 강력히 항의의사를 전달한 상태며, 별다른 명확한 내용 정정과 사과 등 후속조치가 없을 시 법적으로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서울시산악문화센터에서 지난 2월 8일 만난 홍경희 이사장의 눈빛은 복잡했다. 홍 이사장은 "물론 박영석 대장이 세고, 거친 부분이 있지만 그게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다"라며 "제가 대신해 말할 순 없기에 처음에는 대응을 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명예훼손이 너무 심하고, 박 대장을 따랐던 대원들도 오 씨가 자신의 시선으로 거짓을 섞어 말한 부분이 너무 많다고 해서 당시 대원들을 일일이 찾아 증언을 들었다. 박영석의 남편이 아닌, 박영석산악문화진흥회 이사장으로서 대응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따라서 홍 이사장은 "육성 인터뷰 대신 진흥회 차원에서 작성해 오은선 대장에게 전달했다는 내용증명으로 반박하겠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본지가 입수한 해당 문건에 따르면 박영석산악문화진흥회가 책에서 박영석 대장은 물론, 그가 인솔했던 원정대 대원들에 대해 왜곡된 표현을 사용했다고 지적한 대목은 총 14개다. 이중 10개를 그대로 옮긴다.
#1, 2 박영석 대장이 선배를 무시했다?
"피해의식에 비롯된 주관적인 생각일 뿐"
박 대장은 이상돈 원정대장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모습을 후배 대원들 앞에서 보였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유명 산악인이라고 선배를 무시하는 태도는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 49~50p
(박영석) 등반대장과 (이상돈) 원정대장의 갈등이나 나와 동기 사이의 갈등은 찬란함 뒤에 가려진 그늘이었다. 경험이 많다고, 힘이 세다고, 유명하다고 동료를 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약자를 넓은 아량으로 배려할 때 진정한 강자가 된다고 생각했다. - 55p
-> 박영석 대장이 선배를 무시했다는 태도는 오은선의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다. 실제로 당시에 원정을 같이 했던 대원들은 공통적으로 오은선이 피해의식이 있어 한 발언으로 그렇게 적은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명백한 사자에 대한 명예 훼손이다.
#3 원정 중 대원들이 여자 이야기를 했다?
"알러지로 술 전혀 못 먹어…화장품 이야기였을 뿐 술자리 성희롱 같은 이야기 아냐"
저녁먹으면서부터 87학번 후배 김형우와 강철원이 이야기를 이끌어갔다. 주로 여자에 관한 것이었다. 그럴 땐 맥주 한 캔과 소주 한 팩으로 잠재우면 됐다. 둘 다 속이 약했다. 동기들이 보고 싶어졌다. 나에 관한 생각도 많아졌다. - 71p
-> 당시 원정대원인 김형우, 강철원은 알콜 알러지가 있어 전혀 술을 못한다. 맥주 한 캔과 소주 한 팩을 먹으면 붉은 반점과 두드러기가 일어날 정도라 이 부분은 거짓말이라고 전했다. 또 이들은 오은선씨가 사용하는 립스틱과 화장품 이야기를 했을 뿐 마치 성희롱이나 여성 비하를 한 것과 같은 뉘앙스로 책에 쓴 것은 일반 독자들에게 혼란을 주기 충분해 매우 불쾌하다고도 했다.
#4 엄홍길보다 먼저 14좌하려다 셰르파 사망했다?
"바람 불지도 않았고 박 대장 지시와는 무관한 사고"
10월 11일 셰르파 상게가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상게가 숨을 쉬지 않는 다며 무전기 속에서 울부짖던 성규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했다. (중략) 사고 당일 캠프1에 있던 나와 이치상 선배가 베이스캠프에 있던 박 대장에게 "바람이 심하게 불어 등반하기 어렵다"고 말했는데도 "무조건 강행하라"고 다그치는 바람에 루트작업을 하던 중 발생한 사고였다. (중략) 14좌 완등을 엄 대장보다 먼저 마치려는 박대장의 조급증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뱉지는 못했다. - 72~73p
-> 이치상, 강성규 뿐만 아니라 당시 대원이었던 김형우, 강철원도 박 대장 때문에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사망한 셰르파 상게와 함께 현장에서 루트작업을 했던 강성규 대원은 "바람은 불지 않았으며 등반이 불가능한 날씨는 아니었다"며 "일반적인 루트 작업 중 상게가 설사면에서 미끄러져 일어난 사고이지 박 대장과는 무관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5 후배와 말다툼하고 카메라가 여자인 나에 주목하자 B조로 교체?
"박 대장은 누구보다 후배 양성에 힘써…당시 여성 대원 선발한 유일한 대장"
자기 역할을 다하고 있는데 특별조 후배 강성규가 짐 지는 일에 잔소리를 심하게 했다. "엄살 부리지 말라"는 그의 말에 평소 마음에 두었던 생각을 퍼부어 주었다. (중략) 하지만 그 일로 박 대장에게 미운털이 박힌 나는 정상시도 하루 전날 A조에서 B조로 바뀌게 됐다. 아마도 자기가 아끼던 후배와 말다툼한 것과 카메라 맨 한성수 차장이 나에게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팀의 유일한 여자였기에 몇 컷 넣으려고 하는 것 같았는데 14좌 완등을 해야 하는 주인공은 못마땅했을 것이다. 81p
-> 강성규 대원은 "위 내용은 오은선의 주관적인 생각이며, 박영석 대장은 고산을 처음 가는 대원들에게도 최대한 등반 기회를 제공하려고 노력했을 정도로 후배양성에 힘썼다"고 말했다. 애초에 동국대학교 후배도 아닌 여성대원을 데리고 간 대장은 당시엔 박영석 대장이 거의 유일했을 것이다. 이처럼 그는 최대한 많은 이들을 등반시키려고 했고, 사실상 특별대우로 오은선씨를 대원으로 데리고 가준 셈이었다. 따라서 현지에서 오은선씨에게 포커스가 맞춰진다고 의도적으로 B조로 교체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며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
#6 등반 욕심에 후배 안 챙긴 것처럼 몰아세웠다?
"하체 무기력증 걸린 대원 신경쓰라 한 것 뿐"
박 대장으로부터 한 소리를 들었다. 나 역시 전날 내려와 손님 접대하고 배웅까지 신경쓰고 등반 마치고 내려오는 대원들을 위해 차 끓여 놓고 비타민 챙겨주며 동분서주했는데 잠시 쉬고 나왔다고 "후배들 신경쓰라"며 개인면담을 하자고 했다. (중략) 마치 내 등반 욕심에 후배들은 나 몰라라 했다는 듯이 몰아세웠다. 대꾸 한마디 못하고 나와 눈물만 흘렸다.
-> 강성규 대원은 당시 상황에 대해 "고산에 처음 온 대원이 하체 무기력증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박영석 대장이 오은선에게 후배들 신경 쓰라고 말한 것 뿐"이라며 "불합리한 처사인 것처럼 쓴 것은 주관적인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7 환자 뒤를 따라가다 베이스캠프 다가오자 같이 들어갔다?
"탈진한 상태로 하산하던 중이었으며, 대장으로서 동행한 것"
캠프3에 도착하니 나와 교체돼 A조가 됐던 주원이가 하체무기력증에 걸려 있었다. (중략) 박 대장은 BC로 안가고 ABC에서 환자를 기다렸다. 환자가 도착하자 그때부터 환자 뒤에서 천천히 따라가다 카메라가 기다리고 있는 베이스캠프에 도착할 때쯤에는 환자와 같이 들어갔다. 앞으로 박 대장과 등반하는 것은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 86p
-> 강성규, 강철원 대원의 설명에 따르면 상황은 다음과 같다. 박영석 대장은 오희준, 강성규와 함께 K2 정상을 등정한 후 하산하는 중이었다. 박 대장도 탈진한 상태여서 빠른 하산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대장으로서 환자를 기다리다 동행한 것이라고 한다.
#8 박무택을 두고 정상에 갔다는 비난을 주동했다?
"그 등정이 그렇게 떳떳했다면 왜 당시에 바로 안 따졌나?"
비난을 주동한 사람은 박영석 대장이었다. 그와 술자리를 함께한 사람으로부터 들었다. 박 대장은 "어떻게 시신(박무택)을 밟고 정상에 오를 수가 있느냐?"며 술자리에 모인 기자들 앞에서 나를 비난했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참고 넘기는 수밖에 없었다. 박 대장에게 따져봐야 나에게 알려준 사람만 곤경에 빠뜨릴 것이 불 보듯 뻔했다. - 123p
-> 그 당시에 등정을 강행한 것에 합리적인 사정이 있었다면 왜 바로 사실관계를 박영석 대장에게 명확히 전달하지 않았는지 역으로 묻고 싶다. 떳떳한 등반이었다면 박영석 대장에게 따지지 못할 이유가 없으며, 떳떳하지 못했기에 박영석 대장에게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닐지 사료된다. 양심적으로, 윤리적, 도덕적으로 비판받을 것이 두려웠기에 참고 넘긴 것이 아닌가 싶다.
#9 박영석이 주축으로 만든 비공식 1차 면담서 미등정 결론?
"박영석은 참가자 중 한 명일뿐이었으며 결론 내린 적도 없어"
"기사에 실린 깃발은 노란색 삼각기였고 내가 잃어버린 수원대 산악부 깃발은 빨간색 사각기였다. 기사를 쓴 안중국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알려주었으나 그는 "어찌 됐든 박영석 대장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비공식 1차 면담 때 오은선이 칸첸중가에 오르지 못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는 말만 했다. 그때는 나도 참석했었다. 당시 나는 예전에 박 대장을 따라다니며 겪었던 억압적인 어투에 질려 말도 제대로 못했었는데 어이가 없었다. - 240p
-> 실제로 저 말을 했다고 인용된 안중국 기자에게 사정을 들었다. 그는 책에서 언급된 비공식 1차 면담에 대해 "월간산, 사람과산, 마운틴 3개 산악매체가 '오은선의 캉첸중가 등정시비가 자칫 산악인 전체를 욕되게 하는 문제로 커지기 전에 진상을 좀 자세히 알아보자는 의미'에서 가진 모임이었으며, 박영석은 김재수, 김웅식 등과 같이 칸첸중가 등정 경험자로서 참석했을 뿐이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안 기자는 "등반 과정을 면밀히 검토하는 자리였을 뿐 어떤 결론도 낸 바 없으며 이 과정과 1차 면담의 내용은 월간산 2010년 10월호에 '[초점] 오은선 캉첸중가 등정 시비 전말 - 수원대 깃발, 과연 누가 돌로 눌러놨나?'란 기사로 이미 보도된 바 있다"고 했다.
덧붙여 안 기자는 이미 오은선씨에게 "여태껏 관련 취재를 하면서 한 번도 노란색 깃발이라 언급한 적이 없고, 모두 붉은 깃발이라 밝혔었다"고 전했고, 이에 여러 차례에 걸쳐 "착각한 것일 수도 있겠다"에 이어 "고치겠다"라는 답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따라서 조속히 시정 조치가 필요하다.
(오은선 대장은 해당 부분에 대해 2월 15일 본지에 "정정했다"고 밝혔다.)
#10 박영석은 이인정 회장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끈끈하고 정많은 산악계 관계를 조폭 사회로 묘사해"
이인정 대한산악연맹 회장이 칸첸중가 등반자들을 모아놓고 나의 등정이 맞는지를 묻는 회의를 2010년 8월 26일 했다고 들었다. 회의장 밖에서 박 PD가 기다리는 가운데 나 없이 참석자들의 거수로 나의 등정을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나는 그 모임 이틀 전에 참석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지만 그 모임의 주동자들을 알기에 참석할 수 없었다.
박 대장과 이 회장은 동국대 산악부 선후배였다. 이 회장의 한 마디에 박 대장은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린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었다. 그 일로 나의 칸첸중가 등반은 '논란 중'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 241~244p
-> 전통적으로 선후배간의 끈끈한 정과 인간적인 관계는 대학산악부의 독보적인 특징이다. 산 선배들은 온 정성을 다해 후배들에게 등반 기술을 가르치고 산의 정서를 함양할 수 있도록 도우며, 후배들은 또 그런 선배들을 믿고 따른다. 또 산에 가고 싶어 하는 후배가 있으면 어떻게든 보내주기 위해 십시일반 자금을 모아 후원해주기도 하고, 자기 시간을 들여 직접 만나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이처럼 아름다운 미담이 많은데 마치 동국대 산악회원들이 조직폭력배 사회를 구성한 것처럼 묘사한 것은 이들에 대한 치명적인 명예훼손이다.
박영석산악문화진흥회 입장문
"칸첸중가 미등정 의혹 밝힌 것에 대한 보복에 불과"
1997년 가셔브룸 원정대원 및 2001년 K2 원정대원들은 10년도 더 지난 지금에 실명을 공개하며 동료 대원을 비난하는 이런 책이 나온 것에 대해서 이구동성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칸첸중가 미등정 의혹에 따른 박영석 대장에 대한 보복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오은선씨는 1997년 가셔브롬 2봉, 1999년 브로드피크, 마칼루 2001년 K2에 이르기까지 4차례에 걸쳐 박 대장과 함께 등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 대장은 많은 후배들을 데리고 히말라야 고산등반을 하였습니다. 박 대장이 자기 등반 욕심만 내세웠다면 그렇게 많은 후배들을 데리고 산에 다닐 이유가 없습니다. 박 대장은 후배들을 키우는 것에 정말 많은 노력과 열정을 쏟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은 누구보다도 아내인 제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후배들 중에는 동국대학교 뿐만 아니라 타 대학교 후배들도 많이 있습니다. 고인이 된 오희준, 이현조 외에 한왕용, 홍성택 등 유명 후배 산악인들이 있으며 물론 이 중에는 오은선씨도 포함됩니다.
그러나 지금 오은선씨가 책 발간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많은 산악인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특히 책 전반에 걸쳐서 박 대장을 의도적으로 폄훼하는 저의가 곳곳에 묻어나 있고, 지극히 개인적인 악감정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있습니다. 명백한 사자 명예훼손이며, 인신공격입니다.
산악인으로서 오은선씨가 크게 성장한 배경에는 박영석 대장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줄 것을 말씀드립니다. 시정사항들을 조속히 처리해 주기 바랍니다.
(사)박영석산악문화진흥회 이사장 홍경희
김재수 "오 대장을 선의로 도와줬는데 너무도 참담"
"실명까지 등장…잘못된 부분 바로 잡겠다"
"10년도 더 된 이야기로 산악계에 다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 실명을 걸고 수많은 거짓말을 책으로 낸 것을 보고 더 이상 가만히 있으면 바보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젠 잘못 알려진 사실들을 바로 잡으려고 합니다."
그간 침묵을 지켰던 김재수 대장이 입을 열었다. <오은선의 한 걸음>에서 김재수 대장은 '계속해서 사망사고가 일어나는 팀의 리더', '칸첸중가 미등정 의혹을 거짓으로 조장한 인물' 등으로 묘사되고 있다. 책을 읽어본 김 대장은 "'사람의 산을 넘었다'는 책의 글귀가 참 좋았는데, 자세히 읽어보니 자기만 승리자고 다른 등반가들은 패배자로 만드는 문장이었다"라며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사실 관계를 기사를 통해 명명백백히 밝히고자 한다"고 전했다. 김재수 대장이 반박한 장면은 총 4개다. 하나씩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Scene #1. 김재수 대장팀에서는 계속 죽었다?
"무리한 등반 요구한 적 없어…사촌 죽음이 분하다고 했다는 셰르파와 원정 5번 더 했다"
(김재수 대장 원정대의 대원 3명과 셰르파 2명이 K2 등반 중 죽자) 나는 사고 소식으로 심장이 오그라들어 철수했다. 김재수팀 셰르파 중 살아남은, 죽은 셰르파의 사촌이 내게 "우리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고미영을 올려야 했다"며 "사촌의 죽음이 분하고 억울하다"고 말했다. (중략) 내 목숨만큼 셰르파의 목숨도 소중하다. - 222p
9월 26일 김재수팀에서 다시 사고가 났다. 그 팀은 계속 사고가 났었다. - 268p
먼저 김재수 대장은 "사고가 계속 났다는 것 자체는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사고가 '계속' 났다고 표현한 것, 그리고 사고 소식 뒤에 '내 목숨만큼 셰르파의 목숨도 소중하다'고 덧붙여서 마치 셰르파의 목숨을 경시해서 일어난 마냥 표현한 것은 매우 사실을 왜곡하는 행위"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제3자가 보면 저는 혼자 편하게 베이스캠프에 머물면서 악천후에 셰르파들을 올려 보내서 루트 작업을 시키다가 사고가 난 것처럼 이해할 것 같아요. 사고가 났던 상황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정상 날씨, 정상 컨디션으로 등반하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거였죠."
김재수 대장 팀에선 총 3번의 사고가 났다. 2008년 K2 원정 중 사고로 대원 3명과 셰르파 2명이 죽었고, 이듬해 2009년 낭가파르바트에서 고미영 대장이 실족사, 같은 해 안나푸르나에선 눈사태로 카메라 감독이 다리가 부러지고 셰르파 4명이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
"K2의 경우 정상까지 셰르파들과 다 함께 오르고 하산하던 도중 사고가 났던 겁니다. 장갑을 끼지 않아도 추위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날이 쾌청했어요. 정상 등정 후 걸어 내려오다가 세락이 무너져 발생한 눈사태에 대원들이 안타깝게 휩쓸렸습니다.
고미영 대장 사고는 캠프2 위 10m 구간에서 발생했어요. 이 구간이 원래는 로프를 깔지 않아도 내려설 수 있는 안전한 곳인데 가슴 아프게도 거기서 실족하고 말았죠.
안나푸르나 눈사태도 정상적인 날씨에서 캠프2로 물자를 옮기다가 눈사태가 덮쳐온 거죠. 사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카메라맨이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눈사태 나는 장면을 촬영하려고 안 피하고 있다가 휩쓸려서 발목이 부러진 거였어요."
이어 김 대장은 "물론 리더로서 모든 사고에 책임이 있는 건 맞다"면서도 "하지만 모두 경위가 뚜렷한 사고인데 이런 설명 없이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대장인 것처럼 묘사한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전했다. 또 그는 책에서 죽은 셰르파의 사촌이 "우리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고미영을 올려야 했다"고 말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했다.
"책에서 오 대장에게 그렇게 말했다는 친구가 스몰 파상이란 셰르파입니다. 그런데 앞뒤를 살펴보면 그렇게 말했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요. 일단 앞서 말했듯이 K2 등정은 좋은 날씨에, 좋은 컨디션으로 시도했었습니다.
정말 백번 양보해서 당시 등반이 무리였다고 가정해도 그가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는 게 이 친구가 사고 이후에 저랑 5번의 원정을 더 했습니다. 마나슬루와 가셔브룸 1,2봉, 안나푸르나와 초오유입니다. 자기 사촌을 죽인 사람이랑 5번이나 원정을 더 한다고요? 녹취록을 제시하지 않는 한 믿을 수 없는 말입니다."
Scene #2 김재수 대장이 '그것이 알고 싶다' 박 모 PD와 짜고 날 모함했다
"인터뷰 못하게 데려갔다? 내가 아니라 대행사가 그 셰르파를 붙인 것"
나중에 확인한 결과 페마는 "인터뷰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김재수가 거짓말로 "페마가 인터뷰를 거절하며 침묵하고 있다"고 전한 것 같았다. 등반 중에 고용된 셰르파는 원정대의 인공위성전화를 마음대로 받거나 쓸 수 없다. 고용주인 김재수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나중에 페마는 다른 인터뷰를 통해 나의 등정을 인정해 주었다. - 238p
오은선 대장의 칸첸중가 미등정 의혹은 2010년 8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을 통해 일파만파 퍼진 바 있다. 오 대장은 '프로그램을 연출한 박준우 PD가 김재수 대장과 한 편을 이뤄 치밀하게 모의했다'고 썼다. 오 대장은 칸첸중가 등정 당시 페마, 누루부와 등반을 함께했는데 후에 페마는 오 대장이 정상에 올랐다고 하고, 누루부는 못 올랐다고 했다. 그런데 박 PD가 촬영 차 현지를 방문했을 땐 미등정을 주장하는 누루부만 인터뷰했다. 등정했다고 말해줄 페마는 김재수 대장과 원정 중이어서 인터뷰에 응하지 못했는데 오 대장은 이것이 의도된 것이라 본 것이다.
"박 PD랑 사전에 편을 이뤄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원정 전에 딱 두 번 만났지만 그 자리엔 홍보성 대장도 있었고, 다른 PD도 있었어요. 그 분들이 그런 사전모의가 없었다는 사실의 증인이 돼 줄 겁니다. 거기선 그냥 오 씨의 칸첸중가 미등정 의혹에 대해 등정자인 우리 생각을 물으러 왔던 것뿐입니다.
제가 페마 셰르파를 원정에 데리고 간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 친구를 선정한 게 아니에요. 현지 대행사에 가셔브룸 1, 2봉을 등반한 경험이 있는 친구를 선정해달라 했고, 그래서 온 게 페마 셰르파였어요. 그런데 인터뷰를 못하게 하려고 데려갔다는 건 터무니없는 망상입니다."
한편 박준우 PD도 김재수 대장과의 사전 모의설을 완강하게 부인했다. 박 PD는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에 (오씨가) 여생은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지금껏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면서도 "그러나 고인들이 살아 있을 땐 아무 말 않다가 이제 와서 그들의 유가족들에게 일방적으로 상처를 주는 것에 대해 더 참을 수 없어 책에서 지적한 내용을 반박하려고 한다"고 했다.
먼저 그는 "'그것이 알고싶다'는 2주 동안 아이템회의를 하고, 2주 취재한 뒤 1주 편집해서 나가는 방식"이라고 설명하며 "당시 방송이 8월 21일에 방영됐으니 칸첸중가 미등정 의혹을 다루기로 한 시점은 7월 중순이다. 그 시점에 김재수 대장은 이미 가셔브룸 원정 중이어서 접촉할 겨를이 아예 없었다. 방송 이틀 전인 8월 19일에 원정을 마치고 귀국한 김 대장을 공항에서 처음 봤다"고 해명했다.
박 PD는 237~239p에 걸쳐 추가로 언급된다. '인터뷰 약속을 잡아 놓곤 네팔로 갔다', '페마가 침묵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나를 모함했다' 등이다. 그는 "몸이 하나인데 어떻게 모든 인터뷰를 내가 하나"라며 "오씨와 인터뷰는 다른 연출진이 했고, 방송에도 반영됐다. 문제될 게 없는데 뭔가 문제라는 듯 그렇게 썼다"고 말했다. 또한 페마가 침묵하고 있다고 거짓말했다는 대목에 대해서도 "네팔 현지에 머물면서 앙 도르제 등 한국산악계와 친숙한 대행사 사장, 지역사회 유력 인사들을 호스트로 인터뷰 요청을 거듭했지만 계속 거절당한 바 있다"며 "페마가 인터뷰 요청을 받은 적이 없었다고 했다는 것의 사실 여부를 검증해봐야 한다"고 전했다.
"당시 프로그램 기획 의도는 오은선 망신주기가 아니라 더 이상 한국 산악계가 성과주의에 매몰돼 있지 말고 등로주의로 나아가자는 취지였습니다. 단지 유감스럽게도 인명사고가 계속 이어져 안타까울 따름이죠. 그런데 미등정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실을 왜곡하며, 심지어 고인들의 실명까지 들춰내 폄훼하는 건 산악인을 떠나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닙니다."
Scene #3 고미영 대장이 화장을 하고 루비 반지를 자랑했다?
"베이스캠프에서 화장을 해봐야 얼마나 하겠나…현지에서 산 탄생석 반지였을 뿐"
고미영이 화장까지 곱게 하고 앉아 있었다. 전날 밤엔 생일선물로 받은 거라며 나에게 루비반지도 자랑했었다. - 219p
고미영 대장이 원정 중 화장을 하고 있었으며 루비 반지를 자랑했다는 일화는 3년 전 오은선 대장의 자문화기술지 논문에서 먼저 밝힌 바 있어 이미 한 번 논란이 됐었다. 당시에도 김재수 대장은 "그런 사적인 일까지 쓴 건 지나치며 망자에 대한 모독"이라고 한 바 있다.
"생각해보세요. 히말라야 베이스캠프에서 화장을 해봤자 얼마나 하겠습니까? 선크림 위에 파운데이션 조금 더 바른 정도였을 겁니다. 애초에 색조화장품을 갖고 다니지도 않는데 무슨 화장을 하고 곱게 앉아 있었다고 하면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고 대장이 풀 메이크업이라도 하고 있었던 걸로 생각하게 되잖아요.
또 루비반지를 자랑했다고 하는데 그거 원정을 위해 경유한 이슬라바마드에서 산겁니다. 고미영 대장이 마침 원정 중에 생일을 맞았는데 탄생석이 루비라서 그걸로 골라 줬다고 합니다. 그냥 그 정도인데 마치 굳이 원정까지 사치품을 가져와서 자랑하는 속물인 것처럼 말을 합니까.
그리고 또 생일선물인데 자랑 좀 하면 어떻습니까? 축하해주면 될 일이지 그걸 굳이 그렇게 쓴 건 시기와 질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봅니다."
Scene #4 '김재수 대장이 칸첸중가 미등정 의혹을 조장했다'
"단지 정상 사진이 달라서 다르다고 얘기한 것 뿐"
나의 등정을 의심한 김재수는 "나의 정상사진과 오은선의 정상사진이 달라 이상하다고 느꼈고 내가 제기한 문제는 확실히 매듭짓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며 처음에는 나의 등반에 대해 "사진이 이상하다", "시간이 이상하다" 하더니 정상에서 산소통을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를 가지고 결정적 증거인 것처럼 나를 몰아댔다.
증언한 대로 내가 올랐을 때는 정상에 산소통이 없었던 것이 밝혀지자 김재수가 "오은선이 떨어뜨린 교기를 정상 200미터 전 지점에서 내가 주워왔다"고 거짓말하면서 나의 등정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 깃발은 내 뒤에 누루부가 주워와 여기저기 흥정하던 것이었다. - 239p
책에선 김재수 대장이 오은선 대장의 칸첸중가 정상 미등정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김재수 대장은 "처음 의혹을 제기한 것은 맞지만, 책에서 쓰인 것처럼 억지를 부리며 무조건 미등정으로 몰아가려고 한 것은 전혀 아니다"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등반을 모두 마치고 카트만두에 있을 때죠. 박영석 대장과 빌라 에베레스트란 곳에 같이 있었어요. 컴퓨터로 제가 정상에 오른 사진을 회사에 보냈고, 인터넷에서 오은선씨의 칸첸중가 정상 사진을 봤어요. 그런데 제 정상 사진하고 전혀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박 대장한테 '이거 사진이 왜 다르지?'하고 물어봤어요. 의심하려고, 의혹을 제기하려고 했던 게 전혀 아니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달라서, 왜 다르지? 했던 겁니다. 이게 그런데 일파만파 된 거죠."
또한 그는 "책에선 또 시간이 이상하다고 했다는데 난 오은선씨의 등정 속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도 해명했고 "내가 깃발을 줍지 않았다는 건 명백한 허위사실"이라고 했다.
당시 깃발과 산소통은 정상에 남겨져 있었다고 알려진 물건들이라 오은선 대장의 정상 등정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표지물로 여겨졌었다. 다만 현재는 정상에 올랐다는 증거도, 그렇다고 오르지 못했다는 증거도 되지 않는 것으로 판별됐다. 산소통은 오은선 대장과 김재수 대장 사이에 정상에 올랐던 노르웨이팀이 올려뒀고, 깃발은 정상 직전 구간에서 발견됐다는 증언들이 이어져 일단 거기까지 오은선 대장이 올랐다는 증거로만 받아들여지고 있다.
"평평한 1인용 테이블만한 바위위에 네 귀퉁이가 눌려져 있는 그 깃발을 제가 직접 주웠습니다. 제가 주우면서 한 생각은 '아 여기로 지나갔구나'에 불과했어요. 원래 히말라야에서는 등정증거로서 앞선 사람이 남긴 물건을 갖고 내려오곤 하거든요. 애초에 정상 등정을 의심할 생각이었으면 깃발이 놓여진 위치를 촬영하거나 해서 위치를 특정해뒀겠죠."
실제로 앞서 정상에 오른 등반가가 남겨둔 물건을 갖고 내려와 정상 등정이 인증된 사례가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1982년 한국의 허영호 대장이 마칼루에 올라 정상 바위틈에서 회수해온 예지 쿠쿠츠카의 무당벌레 마스코트가 있다. 쿠쿠츠카는 당시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는데 허 대장이 정상에서 쿠쿠츠카의 마스코트를 갖고 내려옴으로써 확실한 등정자로 공인될 수 있게 됐다.
"책에선 같은 팀 셰르파인 누루부가 주워와 여기저기 흥정하던 것이라고 했는데, 누루부가 주워서 저한테 준 것이라면 오은선과 저 사이에 칸첸중가 정상에 올랐고 저와 마찬가지로 정상 직전 구간에서 깃발을 봤었다는 욘 갱달과 매티아스 칼손은 대체 무슨 깃발을 본 겁니까? 너무 거짓말이 많아 충격적일 정도입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다른 모든 원정대는 일관된 정상사진이 있는데 오은선씨의 정상 사진은 세락이 있는 다른 지점이라는 겁니다."
"왜 그러는지 이해 불가…참담한 신경"
끝으로 김재수 대장은 현재 심경에 대해 "참담하고 너무 화가 난다"고 밝혔다. 그는 "언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한 번도 밝힌 적 없는 이야기"라며 말을 꺼냈다.
"가셔브룸 베이스캠프에 있을 때 이야기입니다. 오은선씨는 그 직전 해에 등반을 마치고 떠나간 뒤였죠. 그 때 환경운동가들이 우리 텐트로 갑자기 몰려왔어요. 영문을 몰라 그들이 말하는 대로 갔는데 오은선씨를 후원한 기업의 이름이 박힌 쓰레기들이 빙하를 따라서 엄청나게 많더라고요. 그래서 후원 기업 간부랑 위성전화로 직접 통화를 해서 사정을 설명하고 우리가 해결해보겠다고 하니 그렇게 좀 해달라고 부탁해오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팀이 전부 깨끗하게 치우는 조건으로 간신히 환경운동가들을 무마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입가경이라고 이 운동가들이 캠프3까지 갔는데 거기 텐트 한 동과 산소통 2개가 버려져 있었답니다. 오은선씨 거였어요.
이렇게 알게 모르게 선의로 도와준 일들이 많은데도 지금까지 그 누구한테도 얘기하지 않고, 내색도 안 했는데 이렇게 동료 산악인을 폄훼하는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고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참담합니다."
['오은선 한 걸음' 일파만파] "칸첸중가 등정 의혹 제기했다고 지인들을 악마화하다니…"
부산다이내믹 원정대 홍보성 대장 "오은선 주장, 나와 원정대 관련 세 군데 왜곡"
오은선 대장은 본인의 논문과 자서전 <오은선의 한 걸음>에서 자신의 등반 역사를 돌아보며 남성 중심의 산악계 문화를 직‧간접적으로 계속 지적했다. 가령 다른 남성 산악인들은 크고 넓은 다이닝 텐트에서 함께 지내는 반면 홀로 참여한 여성인 본인은 좁은 개인용 텐트에서 지내야 했던 일화 등이다.
그런데 직접적으로 '남성 중심적 문화'라고 못 박고 비판한 일화는 두 가지다. 하나는 1993년 에베레스트 여성원정대 훈련 중 '줄빠따'를 맞은 일, 다른 하나는 다이내믹 부산 원정대를 이끌었던 홍보성 대장이 2007년 K2 등반 중 부산대가 캠프2까지 거의 모든 루트개척을 했다며 다른 외국인 원정대들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170p). 오 대장은 "듣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며 이걸 "한국 남자 산악인들의 특징"이라고 봤다. 그리고 "반면교사로 삼기로 했다"고도 했다. 밑에 첨부된 오은선 대장의 일기에서 당시 심정이 잘 드러난다.
'자연 앞에 절대 강자가 어디 있는가? 먼저 들어와서 애쓴 보람이 없어 보인다. 모두에게 인정받아야 진정한 실력이지. 자신들만이 내세우는 게 무슨 실력일까? 겸손이라는 단어가 새삼 떠오르는 날이다. 그러면 나는 겸손한가? 되물어본다. 모르겠다. 여러 가지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내 머릿속과 마음속의 잡념들부터 몰아내고 생각하자. 연이은 좋지 않은 날씨는 나에게 반성과 재정비 할 시간을 주는 거 같다. 역시 자연은 위대하다. 나의 몸과 마음의 자유를 위해 K2신께 기도드린다. (2007. 7. 8. 일기 중에서)'
#1 겸손하지 못한 건 한국 남자 산악인들의 특징?
-> "단독 루트개척 어려움 호소하고 대원들 사기 진작 차원에서 말했을 것"
연락이 닿은 홍보성 대장은 "정말 안타까운 친구"라며 말을 꺼냈다. 그는 "칸첸중가 미등정 의혹이 있을 때 거듭 같이 우리와 같이 다시 등반하자고 직간접적으로 설득했을 정도로 (홍보성 대장이 이끈 다이내믹 부산 원정대는 오은선 대장의 정상 미등정 의혹이 터진 이듬해인 2010년 5월에 칸첸중가를 등정했다) 아끼는 후배였는데 본인의 칸첸중가 등정을 인정하지 않아 모종의 불이익을 준 사람들을 이제 와서 악마화 하는 걸 보니 안타까우면서도 화가 난다"고 했다.
덧붙여 홍 대장은 "논문과 책을 봤는데 부산원정대나 나를 사실과 달리 왜곡해 언급한 부분은 세 곳"이라며 "전부 전혀 사실이 아니며 이는 당시 원정대원 다수가 참가해 세밀하고 객관적으로 기록한 원정 보고서에 증거가 많다"고 항변했다.
홍 대장이 반박하고자 하는 세 부분 중 하나는 앞서 다룬 '루트 개척을 했다며 다른 외국 팀들을 무용지물로 만든 것'이며 다음은 자신들(부산대)이 설치해 놓은 로프를 이용해 오은선 대장이 캠프1에서 자고 내려오니 못마땅해 했다는 것, 마지막은 오은선 대장이 K2 등정 이후 브로드피크 연속 등반을 한다고 하자 부산대가 원래 예정이 없었는데 원정을 따라왔다는 것이다. 그는 "순서대로 하나씩 짚어보겠다"고 했다.
"먼저 K2 루트 개척 이야기는 일단 팩트부터 틀렸습니다. 책에는 '가장 먼저 베이스캠프에 들어와 캠프2까지 거의 모든 루트 개척을 했다'고 썼는데 우리는 6월 14일에 여덟 번째로 K2 베이스캠프에 입성했으며, 6월 18일부터 등반을 시작해 전진캠프부터 캠프4까지 전구간의 루트를 개척했습니다."
사실 이는 엄청난 성과다. 히말라야 등반은 베이스캠프에 입성한 원정대 간에 협동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보편적이지 한 개 팀이 루트작업을 도맡는 경우는 드물다. 당시 원정에 참가했던 故 김창호 대장은 "등반을 시작한지 9일 만에 정상 등정을 위한 준비가 갖춰졌다. 만약 정상 등정에 성공한다면 K2 등반사에 한 팀이 전체 루트를 작업하여 등정한 시즌 초등이면서 최단시간 등정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우게 될 것이다. (중략) 우리의 이러한 등반은 K2와 브로드피크에 머무르던 45개 원정대에게 가장 흥미로운 사건이었다"라고 자평한 바 있다.
"K2 남동릉을 안전하게 등반하고 하산하려면 4,000m 이상의 고정로프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많은 팀이 등반할 것으로 판단하고 고정로프를 2,000m밖에 준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다른 팀들도 같은 생각으로 겨우 500m 정도만 준비하고 들어와 있었죠. 다행히 러시아대가 전진베이스캠프에 수송해 놓은 500m 고정로프를 우리와 함께 사용하는데 동의했어요. 부족한 고정로프는 직전 해 다른 원정대가 사용했던 로프 중 손상되지 않은 부분을 잘라 충당했죠."
루트 개척은 장비와 체력, 기술, 그리고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하는 작업으로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하영호 대원은 등반기에서 "우리 팀이 선두에 서서 루트를 개척하니 자긍심이 생긴다"며 "다른 팀들도 미안하고 고마워서인지 베이스캠프에 있을 때 인사하러 자주 오고 우리 팀을 친절하게 대해 준다"라고 회고한 바 있다. 홍 대장은 "루트작업은 보통 각 원정대가 자청해서 작업을 분담해야 하는데 다들 손 놓고 우리만 바라보고 있었다"고 했다.
물론 작업을 분담하지 않고도 고정로프를 이용하는 방법은 있다. 바로 로프 사용료를 지불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부산대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사용료를 받지 않았다. 그러자 다른 외국팀들은 등반 로프나 장비 등을 선물로 줬다. 고마움의 표시다. 이 고마움의 표시조차 아까워서 몰래 도둑 등반을 한 외국 원정대도 있었다. 한국 대원들이 쳐다보면 고정로프를 잡지 않는 척 하는 추태를 보였단다.
"오은선씨를 비롯한 한국팀 대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정확히 어떤 단어로 무엇을 말했는지는 시간이 많이 흘러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무언가를 말했다면, 위와 같은 상황에 근거해서 단독 루트개척의 어려움에 대해 우리끼리 흉금도 털어놓고, 루트작업을 수행한 우리 대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차원에서 말했을 것이라 판단됩니다. 등반사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작업을 성공한 거니깐 자랑을 안 할 수가 없었겠죠.
그런데 이걸 겸손하지 못한 한국 남자 산악인들의 특징이라고 폄훼하다니요. 그렇다면 본인이 쓴 논문 104p에서 초오유 등반 중 합류한 등반가가 앞장서지 않자 '지는 C3에서부터 움직였고 난 C2에서부터 움직였는데, 더군다나 지는 남자고 난 여잔데, 하여간 미국 놈들이란 어쩔 수 없어, 미국 남자 한 사람 때문에 괜히 전체 미국 남자들이 욕을 먹는다'라고 쓴 건 한국 여자 산악인들의 특징입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말도 안 되며 악의적인 사실 왜곡입니다."
#2 오은선이 고정로프 이용해 고소적응한 걸 못마땅했다?
"전혀 사실 무근…서로 매우 우호적으로 협력하며 등반했다"
또한 홍 대장은 '전날 내(오은선)가 첫 운행부터 캠프1에서 자고 내려온 것이 못마땅해 하는 말이었음을 짐작했다. 자신들이 설치해 놓은 로프를 이용해 한 번에 고소적응하고 내려오니 못마땅했을 것이다'에 대해서도 "얼토당토 않는 허위사실"이라고 일축했다. 이 서술은 위에서 살펴본 오은선 대장의 2007년 7월 8일 일기 바로 뒤에 나온다. 따라서 여기서 '못마땅해 하는 말'은 홍보성 대장이 다른 외국팀들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는 그 발언이다.
"처음 K2 베이스캠프에 오은선이 왔을 때부터 저는 같은 한국 원정대로서 무엇을 도와주어야 할지 고민했어요. 이런 고민은 보고서 기록으로도 남아 있고요. 그런데 뭘 못마땅해 합니까. 실제로 오은선 원정대와 부산대는 당시에 서로 매우 우호적이었으며, 협력하며 등반했습니다. 그 결과 두 팀 모두 K2 정상 등정에 성공할 수 있었고요. 가령 오은선 원정대가 캠프2에 설치해 놓은 텐트 두 동이 강풍에 찢겨지자 우리 팀 텐트를 사용할 수 있게 해주기도 했고요. 반대로 우리가 오은선 원정대가 설치한 텐트를 사용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은선이 등반을 끝내고 귀국할 때 저한테 방콕국제공항에서 원정 때 '도움을 줘서 고맙다'며 한국여성대 단체복인 파일복 상의를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또 같은 해 열린 '제3회 부산산악문화축제'에도 초청했고, 참석한 오 씨가 부산지역 산악인들에게 K2 원정 때 도움을 준 부산 팀에 대해 공개적으로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우리가 진짜 못마땅해 했는지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은 채 갑자기 일방적으로 옹졸하고 교만한 남성 산악인 취급한 점은 정말 유감입니다."
#3 K2 등정 후 브로드피크 등반을 따라왔다?
"원래 계획에 있어 예산도 잡아놔…오히려 오은선이 부산팀 대원으로 등반"
오은선 대장은 '브로드피크를 향해 출발했다. 예정에 없던 부산팀은 내가 연속등반을 한다고 해서 정부연락관을 통해 등반허가를 받아냈다'고 썼다. 책 183p 내용이다. 어떻게 보면 지엽적인 부분이고, 사실이더라도 큰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다만 책이 일관적으로 취해 온 스탠스를 따라 보면 부산대가 원래 계획이 없었는데 오 대장이 간다고 하자 마치 빌붙는 모양새인 것처럼 보인다는 지적이다.
"정말 무슨 연유로 허위사실을 주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이내믹 부산 2007 K2 원정계획서>를 보면 애초에 'K2 및 브로드피크 원정예산'이라고 돼 있고, 거기서 '수입‧지출예산'란을 보면 브로드피크를 K2와 별도로 잡아놓고 애초에 예산을 배정해 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정에 없었다니요. 이미 이슬라마바드를 출발할 때부터 현지 대행사에 K2를 등정하면 브로드피크도 간다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K2를 등정하자마자 곧바로 대행사에 연락해서 7명이 등반한다고 했고요.
도리어 우리가 오은선은 물론 그의 셰르파인 틸덴 1명까지 우리 팀 대원으로 등반허가를 신청해줬었습니다. 입산료를 적게 내도록 배려해준 거예요. 그래서 등반도 같이했습니다.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허위사실을 주장하는 건지. 이 원정을 저 혼자 간 것이라면 아마 혼자 삭이고 말았을 테지만, 당시 저는 부산연맹을 대표해서 갔었던 것이기에 부산산악계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개인은 물론 산악단체까지 허위사실로 왜곡, 폄훼하는 행위는 중대한 명예훼손입니다."
['오은선 한 걸음' 일파만파] "고산등반가 30명, 원정 120번 지원한 내가 오은선 발목을 잡았다니…법적 대응 하겠다"
노스페이스 정상욱 전 상무의 항변 "1년만 기다리자 했고, 해고한 적도 없어"
"그동안 논문, 인터뷰에서 오은선은 제가 '떠나는 날까지 매일 전화로 30분 이상 시달리게 했다', '해고했다' 등의 거짓말을 일삼았습니다. 자기 포장을 위해 스토리가 필요했을 거라 여겨 '그래, 너도 살아야지'라 생각하고 그동안 참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 실명까지 거론하며 또 거짓말을 담은 책을 냈습니다."
노스페이스 정상욱 전 상무는 "큰 배신감을 느낀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전 상무는 노스페이스에서 일하며 한국 원정대를 열렬히 지원해 한국 산악계 발전에 지대하게 기여했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노스페이스 산악지원팀을 이끌며 고산등반가 30여 명은 물론 이외에도 스포츠클라이머, 암벽등반가들의 산악활동을 지원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그가 지원한 히말라야 원정만 120여개에 달한다. 오은선 대장도 그가 영원무역 직영점 직원으로 뽑았다. 그는 "오씨는 영원무역 소속으로 총 10번의 원정을 회사의 지원하에 다녀왔었다"고 돌아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오 대장은 "자신의 발목을 잡았다"라고 한 걸까? 정 전 상무는 2009년 오은선 대장의 모 일간지 인터뷰, 2020년 오 대장의 논문 <여성 산악인의 고산등반 체험에 관한 자문화기술지>와 이번에 발행된 자서전 <오은선의 한 걸음>에서 이와 같이 언급된 부분을 정리했다. 요지는 이렇다. 오 대장이 2007년 K2 원정을 가려고 했는데 정 전 상무가 이를 막았고, 원정을 강행하자 해고했다는 것. 먼저 책의 내용을 보자.
'영원 정상욱 상무는 내년으로 연기해 달라며 집요하게 발목을 잡았다. 떠나는 날까지 매일 30분 이상 전화에 시달렸다. 결국 사고가 나면 사표를 수리해달라는 말만 남기고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로 향했다. -164p
나는 등반 때문에 다시 직장에서 쫓겨나는 시련을 딛고 K2 등반 성공후 브로드피크까지 연속등정을 시도했다. - 285p'
이 과정은 일간지 인터뷰 기사로도 실렸다. 기사에서 오 대장은 "그건 오래전에 준비된 원정이었어요. 그걸 막는 것은 내게 고꾸라져 죽으라는 것이지요. 저는 멈출 수 없었어요. 인간적으로 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원정을 갈 경우 자르겠다'고 통첩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굽히지 않았어요. 그까짓 것 자르면 잘라! 그렇게 K2봉 등정에 성공했고 돌아와서는 해고됐습니다"라고 했다.
원정 미숙한 2명 데리고 K2를 간다고?
정 전 상무는 이와 같은 오은선 대장의 주장이 "실제 있었던 일을 악의적으로 왜곡했다"고 봤다. 그는 "첫 번째로 회사 입장에선 원정을 1년 후로 연기하라고 한 합리적 근거가 있었고, 두 번째로 사직서를 내더라도 원정을 가겠다기에 절차에 따라 의원사직처리를 한 것이지 해고한 것이 아니다"라며 전모를 설명했다.
"2007년 5월 18일 오희준과 이현조의 사고가 있었죠. 저는 사고 처리를 위해 현지로 갔었죠. 염도 직접 했고요. 한국으로 돌아와선 유족 분들을 만나 사후처리를 했습니다. 진짜 사랑하는 후배들을 잃은 탓에 상처도 많이 받았었죠. 그렇게 2~3주 정도 정신없이 지냈어요.
그러던 차에 6월 초쯤 K2 원정을 가겠다고 오은선이 찾아왔죠. 제 입장에선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할 수밖에 없었어요. 먼저 원정대 구성이에요. 대원이 오은선 포함 3명이었습니다. 다른 두 대원은 고산등반 경험이 별로 없어서 실제 고소등반이 가능한 건 본인 혼자 정도였어요. K2는 혹독한 훈련을 거친 대단위 원정대가 가도 등정할 확률이 낮은 험한 산입니다. 그런데 이런 구성으로 가겠다고 하니 말릴 수밖에 없었죠. 그 다음은 물론 회사 입장이었습니다. 가뜩이나 브랜드 홍보를 위해 산악인들을 사지로 몰아넣는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사고 난 지 두 달 만에 또 사고가 났다가는 한층 더 회사 입장이 어려워질 것으로 보였어요. 그러니 책임자로서 1년만 기다려서 팀을 보강하고 가라고 했는데 본인이 사직서를 내고서라도 당장 원정을 가겠다고 한 겁니다."
정 전 상무는 "실제로 많은 고산등반가들이 히말라야 등정의 꿈을 위해 사표를 내는 경우가 많아 그렇게 특이한 사례도 아니다"라고 했다. 실제로 월간<산> 과월호 기사 속에선 사직서를 내고 원정을 떠난 사례들이 숱하게 나온다. 당장 검색 첫 페이지에 기형희, 정길순, 은성훈, 한이석, 한미선 등 유명 등반가들의 이름이 나온다.
"이렇게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데 발목을 잡았다고 하니 너무 어이가 없습니다. 애초에 원정 다닐 수 있도록 영원무역에 채용해 준 사람이 저입니다. 제가 악감정을 갖고 원정을 못 가게 길을 막을 리가 있겠습니까?"
덧붙여 정 전 상무는 "이런 과정을 본인에 유리하게 포장하는 과정에서 허위사실과 명예훼손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그는 "오은선 대장의 인터뷰와 논문, 책 각각에서 허위로 표현된 장면들을 찾아 정리했다"며 본지에 자료를 제공했다. 각 장면과 정 전 상무의 입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2009년 3월 16일자 일간지 인터뷰 중
'원정을 갈 경우 자르겠다고 통첩했다'
-> 해고할 수 있는 권한도 없으며, 그렇게 이야기 한 사실도 없다.
'(K2 원정에서) 돌아와서는 해고 됐다'
-> 회사는 물론 나도 오은선을 해고 한 사실이 없다. 오은선은 "사직하겠으니 사직서 써서 내겠다"고 했었으며, 본인의 논문에서도 '사직서를 대필해서 내라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어버렸다'고 이를 자인하고 있다. 이에 따라 회사는 절차에 따라 의원사직처리를 했지, 해고한 것이 아니다.
#2 2020년 2월 오은선 대장의 박사학위논문 및 자서전 중
'떠나는 날까지 매일 전화로 30분 이상 시달리게 되었다'
-> 당시 오희준과 이현조의 에베레스트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네팔 현지에 다녀오고, 이후 유가족들과 사후 협의를 하며 본연의 업무 공백이 보름 이상 발생한 상황이었다. 업무 처리로도 벅찬 상황에 매일 30분씩, 떠나는 날까지 전화할 여력은 전혀 없었다.
'회장님 면담까지 잡으며 집요하게 발목을 잡았다'
-> 회사의 승인을 받지 않고 무단으로 장기간 원정을 떠나면 근무규정상 근무지 무단이탈 및 장기 무단결근으로 징계처리 대상이다. 그래서 원정을 1년 연기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기에 설득했던 과정이다. 그래서 끝내 회사 최종 결재권자인 회장과 면담자리까지 만든 것인데 마치 내가 원정을 방해하는 훼방꾼처럼 묘사했다.
'나중에는 (원정을) 내년으로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 원정 연기 요청은 나중에 한 것이 아니고 K2 원정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에게 처음부터 했던 조언이다.
'사고가 나면 사표를 수리해 달라는 말만 남기고'
-> 출국 전에 사고가 나면 사표를 수리해 달라는 말 따위는 그로부터 들었던 적이 전혀 없다. 귀국 후 자기 합리화를 위해 100% 지어낸 이야기다.
본인이 쓴 논문만 봐도 자기주장과 배치되는 사실을 적어 놓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논문 142p를 보면 '결국, 나는 사고가 나면 사표를 수리해 달라는 말만 남기고 떠났다'라고 한 문장 바로 아래 문단에 '사표는 써 놓지 않고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로 향했다'고 써 놨다. 사표를 쓰지 않았는데 수리해 달라는 말을 어떻게 남길 수 있었던 것인가?
'써놓은 사표를 어디에 맡겼느냐고 물었다. 황당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 본인이 스스로 사표를 써 내겠다고 했으니 산악지원팀 김형우 과장이 오은선에게 사직서의 행방을 물어 본 것은 지극히 당연한 업무처리과정이다. 황당할 이유도 없고,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도 더더욱 말이 안 된다. 본인 스스로가 왜 사직서를 찾는지 잘 알 것이다. 정당한 업무처리를 왜곡하고 비방한 표현이다.
'등반 때문에 직장에서 쫓겨나는 시련을'
-> 원정을 가기 위해 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둔 등반가들이 무수히 많다. 그 또한 자신의 의사로 회사를 그만둔 것이지 회사나 내가 쫓아 낸 것이 아니다. 자발적 의원사직 사실을 허위로 왜곡해 마치 회사나 내가 그를 해고한 것처럼 묘사한 것은 날조다.
박영석과 이상돈 갈등, 보고서엔 없어
한편 정 전 상무의 염려와 달리 오은선 대장은 K2 원정을 강행, 정상 등정까지 성공한다. 아시아 여성산악인으로서 일본의 유카 고마츠에 이어 제2등이었다.
원정대의 역량이 좋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란 질문에 정 전 상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당시 원정 내용을 살펴보면 상당 부분을 부산 다이나믹 원정대에 도움을 받은 사실이 나타나 있다. 그래서 가능했던 등반이지 원정 계획 자체만으로는 성공 확률이 극히 희박했다. 그리고 난 애초에 부산원정대가 같이 가는지도 몰랐다"고 설명했다.
또한 정 전 상무는 "박영석 대장이 이상돈 원정대장을 1997년 가셔브룸 원정 중 무시했다라고 한 부분도 허위다. 애초에 이상돈 원정 대장이 BC 이후 등반에 관한 결정을 박영석 대장에게 다 맡겨놨는데 갈등을 빚을 소지 자체가 없었다. 직접 당시 보고서를 읽어봤는데 그런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오은선 대장의 자서전 50p에선 해당 부분은 '박 대장은 이 대장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모습을 후배 대원들 앞에서 보였다. (중략) 힘들어하던 이 대장은 헬기로 환자를 이송하던 날 보호자를 자청해 베이스캠프를 떠났다'고 묘사돼 있다. 그러나 정 전 상무는 "이상돈 원정대장은 일관되게 박영석 등반대장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환자를 이송하던 날 보호자를 자청한 것도 박 대장을 위한 결단이었다"고 반박했다.
당시 보고서에서 이상돈 원정대장이 박영석 대장을 평가한 부분을 모아봤다. 원정 성공 요인을 다룬 2-37장에선 'BC 이상의 등반을 직접 이끄는 능력이 충분히 갖춰졌고 풍부한 고산 경험을 가진 등반대장'이라 했다. 또 3-18 운행 계획에선 '운행 계획은 히말라야 원정 경험이 아주 많은 박영석 등반대장에게 수립토록 하여 원정대장과 협의한 후 운영했다. 고소에서 대원들과 함께 움직이는 등반대장이 등반 조건이나 대원들의 컨디션 등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었고, 이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또 등반보고 3-78에선 '등반대장(박영석)은 내가 BC 도착 이후의 등반에 관해서 대부분의 책임과 결정권을 주었다'고도 돼 있다.
오은선 대장이 '박 대장과의 갈등으로 힘들어하던 이 대장이 헬기로 환자를 이송하던 날 보호자를 자청해 베이스캠프를 떠났다'고 한 장면도 보고서 3-78에선 사뭇 다른 관점으로 서술돼 있다. 해당 부분을 그대로 옮긴다.
'다음, 누구에게 후송을 맡길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선, 회사일 때문에 먼저 내려가기로 한 바 있는 한왕용대원과 BC 도착 후부터 스카르두로 내려갔으면 하고 계속 눈치를 주던 아웨즈 소령으로 결정했다(정부연락관은 사후 처리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고 실제로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이외에 영어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 고참 대원 중 한 명이 더 내려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꼭 보낼 사람이 없었다. 박영석 등반대장은 BC 도착 이후 등반에 관해서 대부분의 책임과 결정권을 줬기 때문에 앞으로 등반에 꼭 필요했다. 조장인 이치상, 서기석 역시 후배들을 이끌어야 했다. 박기성 부대장도 누구보다도 훈련을 열심히 했고, 말은 안하고 있었지만 등정 욕구가 매우 큰 듯 했다.
개인적으로 정상 등정의 계획이 없었던 나는 최소한 부대장 이하 대원들의 등정 기회는 박탈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중략) 점심식사 후 대원들에게 내가 직접 스카르두로 후송하겠다 말하고 앞으로 일정의 주의사항을 전달했다.'
인터뷰를 마친 정 전 상무는 "10번을 원정을 갔다 올수 있도록 도와줬는데 11번째에 막았다고 앞서 다녀온 원정들은 싹 잊고 회사와 담당자를 허위사실로 비방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3년 전 논문이 나왔을 때도 눈감아줬는데 이번엔 선을 넘었다"며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월간산 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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