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눈] 고향사랑기부제가 지속하려면

안의호 2023. 2. 2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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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호 태백주재 부국장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못 한다’는 속담이 있다. ‘가난은 극복하기가 힘들다’는 이 말의 원뜻은 ‘가난을 이기려면 본인의 노력이 필요하다’와 ‘지역 마을 단위에서 ‘십시일반’으로 함께 견디고 이겨나가야 한다’라는 뜻으로 의미가 확대된다. 나라 예산을 아무리 투자한다 해도 말단에는 항상 듬성듬성 복지의 사각지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매일 함께 어울리며 지켜보는 이웃이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사람뿐 아니라 귀신과 야생동물에게도 온정을 나누던 ‘고수레’와 ‘까치밥’ 풍습에서 보듯 혼자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죄로 생각하는 우리 민족의 고운 심성은 ‘나’보다는 ‘우리’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는 언어생활에도 잘 드러난다.

이런 우리 민족의 심성을 토대로 한 ‘고향사랑 기부제’가 지난 1월 1일부터 본격 시행돼 지난 한 달 동안 숱한 화제와 사연을 낳으며 동참 열기가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수구초심’으로 고향 발전을 위해 보내는 마음에서부터 직접적인 인연이 없음에도 왠지 마음이 끌려 보내는 정성까지 지역 발전을 위한 동참 열기는 겨울 추위마저 녹이는 모습이다. 카타르 축구 월드컵 16강을 이끈 손흥민 선수(춘천시)를 비롯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음성군) 등 유명인들도 고향에 기부금을 보내며 제도 활성화를 위해 힘을 보태는 등 훈훈한 사연이 연일 잇따른다.

고향사랑 기부제는 자신의 현 거주지가 아닌 고향이나 다른 지자체에 기부하면 대상 지자체가 해당 기부금을 주민 복리에 사용하는 제도로 기부자에게는 지역의 특산품을 답례품으로 제공하고 세금공제 혜택을 부여한다. 이 제도는 국민들의 자발적인 기부를 통해 도농 간, 세대 간의 재정 격차를 완화하자는 차원에서 도입됐다. 지난 2008년 일본에서 먼저 시행해 지역 발전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제공한 ‘고향 납세제도’를 우리 실정에 맞춰 고쳤다. 일본의 고향납세 제도는 10여년 만에 완전히 정착, 지난 2020년엔 7조 원 이상의 기부금을 모으며 지역발전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역 회생에 성공한 선진사례도 외신을 통해 들려온다. 소멸 위기에 놓인 전국의 지방자치단체가 고향사랑 기부제에 목을 매고 있는 이유이다. 어려울 때마다 남다른 저력을 보였던 우리 민족이라면 일본이 10여 년 만에 거둔 성과 이상의 결과를 도입 첫해에 거둘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제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 제도 도입 전에 일본의 지자체를 방문해 고향납세제의 운영방안을 벤치마킹한 공직에 있는 친구도 우려의 목소리를 전한다. “수년간의 검토를 통해 도입한 이번 기부제가 일본 고향납세 제도의 성공 요인인 핵심 부분은 놓치고 지엽적인 부분만 따라 한 것 같다”며 “각 지자체가 지역회생을 위한 사업 아이템에 고심하고 사업의 진행과 결과까지의 전과정을 기부자와 공유하면서 다음 사업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 것이 일본의 제도가 지속되는 중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아직 도입 초기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기부자는 기부금을 낼 뿐 그 돈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쓰이는지에 대한 정보는 막혀 있다. 여기에 기부제 활성화를 위해 지자체마다 답례품 경쟁을 펼치면서 고향사랑 기부제도 홈페이지인 ‘고향사랑e음’은 ‘지역답례품 쇼핑몰’처럼 보인다. 기부액의 30%에 해당하는 답례품으로 인해 ‘고향사랑’이라는 말과 ‘기부’라는 말이 무색한 실정이다. 기부문화가 일상화한 서구 선진국에 비할 바는 안되지만 한국사회 전반에도 기부문화가 보편화하고 있다. 전쟁으로 인한 난민, 가난과 폭력 상황에 놓인 아이들, 지구 온난화로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하자는 캠페인까지 다양한 형태의 기부 캠페인에 정기적으로 기부금을 보태는 국민이 갈수록 늘고 있다. 방향성이 분명한 이들 기부 캠페인에 동참한 사람들은 주최 측이 답례품을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고향사랑 기부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고향사랑e음’이 답례품 홍보장이 아닌 지역회생사업 홍보장이 돼야 한다. 또한 지역발전을 위해서 꼭 필요한 사업이 무엇인지를 제시해 기부자의 동참을 이끌고 성공의 성과를 함께 공유하는 교류의 장이 돼야 한다. 처음이 정말 중요하다. 한 번 마음이 돌아서면 두 번 다시 돌이키지 않는 냉정함 또한 우리 민족의 심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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