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희망 들어올린 역도인..김성집 별세[그해 오늘]

전재욱 2023. 2. 2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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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올림픽메달 김성집 선생 2016년 2월20일 별세
해방하고 첫출전한 런던올림픽서 동메달 획득 쾌거
현역 은퇴후 최장기 태릉선수촌장 지내며 금메달 31개 수확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2016년 2월20일. 대한민국 최초 올림픽 메달리스트 김성집 대한체육회 고문이 별세했다. 향년 97세.

고 김성집 고문이 1948년 런던올림픽 역도 경기에 임하는 모습.(사진=대한체육회)
역도 선수로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1935년 전 조선역도대회 중체급에서 정상에 오르면서부터였다. 역도에 입문한 지 2년밖에 안 됐지만, 실력이 출중해 이미 세계 신기록까지 넘어선 상태였다. 실력대로라면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지만 좌절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자국 선수를 내보내고자 김 고문의 출전을 불허했다.

1945년 광복을 맞은 대한민국은 1948년 런던올림픽에 출전했다. 미 군정 하에 있었지만, 사상 첫 하계 올림픽 출전이었다. 이때 역도 국가대표로 대회에 나선 김 고문이 동메달을 획득했다. 대한민국 이름으로 올린 첫 올림픽 메달이다. 스물아홉의 김 고문은 시상대에서 태극기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때 베를린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고개를 숙이고 일장기를 가린 손기정 옹을 떠올렸다고 한다. 한국인 첫 올림픽 메달리스트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 출전한 손기정 옹과 남승룡 옹이다. 그러나 조선은 국권을 상실한 상태였고, 이들이 딴 메달은 일본의 성적으로 기록됐다. 그래서 역사는 대한민국 첫 메달리스트로 김 고문을 기록한다.

김 고문이 당시 들어 올린 것은 역기가 아니라 신생독립국 대한민국의 희망이었다. 김 고문은 다음 대회 1952년 헬싱키올림픽에 나서 또다시 동메달을 획득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지쳐가는 국민은 김 고문의 메달 소식에서 희망을 봤다. 1954년 마닐라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차지해 아시안게임 최초 메달리스트이기도 하다. 1956년 멜버른올림픽에서 5위를 끝으로 1958년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이후 대한민국 체육 발전에 헌신했다. 1972 뮌헨 올림픽과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한국선수단 단장을 지냈다. 체육회 사무총장(1968~1974년)에서 물러나고 1976년부터 1994년까지 태릉선수촌장을 지냈다. 선수촌장 경력만 18년으로 역대 최장기다. 그 시절 태릉선수촌 지옥훈련으로 악명 높은 불암산 크로스컨트리를 도입했다. 체력이 뒷받침해야 기술도 통한다는 게 그의 지도 철학이었다. 이런 지도 철학을 바탕으로 그가 재직하는 기간 대한민국은 금메달 31개를 수확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70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1984년에 체육훈장 최고등급인 청룡장을 수상했다. IOC도 김 고문에게 올림픽 훈장을 수여했다. 대한체육회는 김 고문의 장례를 체육회장으로 치르고자 했지만, 유족은 고인의 뜻이 아니라고 한사코 거부했다. 생전 고인의 검소한 행실과 닿아 있다.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준다고 했는데 운동선수로 남고 싶다고 거절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체육계 발전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10월25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이장됐다.

전재욱 (imfew@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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