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은의 유리창 너머] 뒤를 돌아본다는 것

한겨레 2023. 2. 1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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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더릭 레이턴(Frederic Leighton),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1864, 캔버스에 유채, 127.3×110㎝, 레이턴 하우스 박물관

이주은 | 미술사학자·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소설이나 영화에서 주인공이 뒤를 돌아보는 것은 운명적인 얽힘을 예기하는 농도 짙은 장면 중 하나다. 가령, 톨스토이의 장편 소설 <안나 카레니나>(1878)에서 안나는 기차역에서 우연히 한 남자를 스치고 지나가면서,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는데, 그 순간 남자 또한 고개를 돌려 안나를 바라보았다. 되돌아본 시선이 점차 두 사람 간의 격정으로 치닫더니, 달리는 기차처럼 걷잡을 수 없이 안나의 생애를 휩쓸어버렸다. 안나는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애초의 삶을 회복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고 결국 그를 만났던 기차역으로 간다. 한 남자와의 얽혀진 운명을 없었던 일로 만들고 싶었던 안나는 철도 위에 무릎을 꿇고 다가오는 기차에 몸을 맡긴다.

나처럼 보통의 사람이 시선을 되돌리는 이유는 건망증 때문이다. 아침에 아파트 현관문을 닫고 나올 때 한 번, 커피점에 앉아 글을 쓰다가 자리를 뜰 때도 한 번, 연구실이나 강의실을 나올 때도 각각 한 번씩, 고개를 돌려 내가 있었던 곳을 지긋이 바라보는 것이다. 그 자리에 미련이 남았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고, ‘아차!’ 하며 제법 멀리 갔다가 허겁지겁 돌아오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다. 정신없이 나오느라 불을 끄고 문을 잠그는 마무리를 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또는 자동차 열쇠나 휴대전화처럼 꼭 필요한 소지품을 깜빡 챙기지 못한 것은 아닌지 거듭 확인하는 것이다.

뒤를 돌아볼 때마다 나는 “어두운 통로를 다 통과할 때까지는 절대 뒤를 돌아보면 안 돼”라는 귀에 익숙한 경고를 떠올리며 혼자 웃음 짓는다. 전설 속에서 그 경고를 무시한 자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어둠 속에 갇히게 된다. 그리스신화 중 오르페우스에 관한 전설에도 그런 경고가 나온다. 오르페우스는 자신의 결혼식 날 사랑하는 신부, 에우리디케를 잃는다. 신부의 죽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그는 저승으로 내려가 황홀한 리라 연주로 지하의 여왕을 설득하여 마침내 신부를 데리고 나온다. 하지만 앞장서서 동굴을 걸어가던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가 휘청거리자 자기도 모르게 실수로 돌아보고 말았다. 그 순간 뒤따라오던 에우리디케는 저 뒤 깊은 어둠 속으로 다시 빨려 들어가 버린다.

여러 화가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별 장면을 그렸는데, 대부분이 오르페우스의 손을 잡고 이끌려가는 수동적인 에우리디케를 묘사했다. 자신의 생사가 걸린 그 긴장된 순간인데, 에우리디케는 오르페우스에게만 모든 책임을 지운 채 도대체 뭘 하고 있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듯 영국 아카데미 화풍의 거장인 프레더릭 레이턴(1830~1896)은 독특하게도 에우리디케의 의지와 역할에 초점을 맞추어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를 그렸다.

이 그림을 보면 오르페우스가 뒤를 돌아본 것은 단순히 실수가 아니라, 에우리디케 쪽에서 먼저 “돌아봐요”라고 권유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오르페우스는 이별을 피하려는 듯 눈을 감은 채 얼굴을 돌리며 에우리디케를 팔로 밀어낸다. 반면 에우리디케는 연인의 목에 팔을 두르고 옷자락을 끌어당기며 ‘후회하지 말고 지금 날 봐요. 그리고 마지막 모습까지 기억해둬요’라고 당부하는 듯하다.

연인은 죽음의 섭리를 거스르며 불가능한 사랑을 고단하게 지속할 것인지, 아니면 차라리 지금 여기서 서로를 마주 보며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낼지 갈림목에 놓인 상황처럼 보인다. 에우리디케는 자진해서 이별을 선택하고, 그럼으로써 실수로 인해 망가진 미완의 사랑이 아닌, 끝까지 아름다웠던 사랑의 기억으로 과거를 남기고자 한다.

2월에는 곳곳에서 졸업식이 열린다. 졸업생이라면 한 번쯤 자신의 학창 시절을 반추해보게 되는데, 과거의 실수를 자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를 추억으로 저장해두고 그것을 발판으로 한 보 내딛기 위해서가 아닐까. 내가 두어 걸음 걷다가 뒤돌아보는 이유도 아까 그곳에 정말로 아무것도 남겨 두지 않았다는 것을 최종으로 확인하고, 이후로 더는 신경을 쓰지 않고자 함이다.

이미 벌어진 실수나 실패를 바로 잡아 고치기란 어려울 것이다. 환생이나 시간 이동으로 완전히 과거를 지우고 새 삶으로 갈아타는 것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사람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운명 그 자체가 아니라, 과거를 바라보는 관점과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의 태도뿐이다. 그러니 한번 휙 돌아본 후엔, 그저 묵묵히 전진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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