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4시] AI 설계에서 엔비디아 못 넘는 이유
스마트폰 명실상부 1위인 삼성전자에도 흑역사가 있다. 스마트폰 자체 운영체제(OS)였던 '바다'와 '타이젠'이다. 삼성이 야심 차게 내놓은 작품이지만 모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하드웨어에서는 1위를 차지했지만 소프트웨어에서는 결국 실패한 것이다.
소프트웨어의 힘은 무섭다. 한 소프트웨어가 기술력으로 시장을 선점하면 많은 사람이 그 생태계 안에 포섭된다. 한 번 익숙해진 소프트웨어를 바꾸긴 어렵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는 PC 시장을 먹어버렸다. 애플이 스마트폰인 아이폰을 내놓은 뒤 하드웨어는 삼성전자가 금방 따라잡았지만 정작 소비자를 잡아놓은 '애플 생태계'를 따라잡기 어려운 것도 소프트웨어 때문이다.
반도체 시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5일 한림대 도헌학술원 주최로 열린 학술심포지엄에서 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부회장)는 국내의 부족한 소프트웨어 역량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인공지능(AI) 인재를 뽑으면 하나같이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쿠다(엔비디아 전용 프로그래밍 소프트웨어)를 쓰게 해달라'고 한다. (쿠다와 비슷한) SK의 '사피온'을 갖고 개발하라고 하면 쿠다보다 시간을 3배 더 달라고 한다. 이 싸움에서 못 이기는 거다."
박 부회장의 말처럼 반도체 시장에서도 소프트웨어는 힘을 발휘한다. 학교에서부터 학생들은 쿠다로 AI 설계를 배운다. 이미 엔비디아 생태계에 익숙해진 학생들이 SK의 소프트웨어를 쓰긴 어렵다. GPU와 소프트웨어를 내세운 엔비디아의 경쟁력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예를 들어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를 60만~70만원에 팔면 엔비디아는 수천만 원에 쿠다 플랫폼 GPU를 넣어 '챗GPT'를 운영하는 오픈 AI에 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소프트웨어 기술은 시스템 반도체와 팹리스(반도체 설계) 등 한국의 반도체 생태계로 연결된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강국이지만 시스템 반도체와 팹리스 등이 이제 막 걸음마 단계인 이유 중 하나로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꼽힌다. 기업과 정부가 나서 소프트웨어 인재를 육성하고 기술력을 키우기 위해 고민해야 할 때다.
[이새하 산업부 ha12@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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