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오두막에서 기록한 정원의 언어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3. 2. 19.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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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산문집 ‘작별들 순간들’
15년간 한국과 독일 오가며
오두막에서 쓴 내면의 일기
배수아 산문집 ‘작별들 순간들’
‘한국에선 번역을 하고, 독일에선 소설을 쓴다.’ 이것은 시차의 감각을 유지하는 소설가 배수아의 오랜 생활이었다.

하지만 15년간 그가 오간 베를린 오두막의 심연을 들여다본 이는 없다. 배수아 작가의 산문집 ‘작별들 순간들’(문학동네)은 오직 소설과 번역으로 삶을 채운 한 작가의 낡은 이국땅 오두막같은 내면을 들여다보는 한권의 여행기 같은 책이다.

‘은둔할 수 없다면, 집이 아니다. 은둔할 수 없다면, 여행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는 배수아 작가에게 지구 반대편 베를린 오두막은 은둔의 거처다. 오두막의 정원은 단지 안식으로서의 거처가 아니라 외부 세계와의 단절로써 비로소 자아를 조각하는 공간이 된다. 배수아 작가는 그곳에서 마르그리트의 ‘연인’, 게르하르트 마이어의 ‘죽음의 섬’을 열며 사유하고, “궁극적으로 인간은 오직 기억하기 위해서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문장을 매만진다. 오두막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곧 한 작가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과 동의어다.

배수아 작가는 오두막의 안팎에서 ‘베를린 서가의 주인’과 자주 대화한다. 도시별로 흩어져 있는 주인의 서재 세 곳은 책으로 가득하다. 주인은 그때그때의 ‘운명과 우연’에 따라 책을 배치한다. 서재에 꽂힐 책의 재배치를 위해 여행가방엔 오직 책이 가득하다. 여행가방은 그 자체로 ‘작은 도서관’을 이룬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손바닥만한 발코니에서 하루를 보낸다. ‘하나의 방주’와 같은 테라스에서 쓴 글들을 읽다보면 본 적 없는 정원의 진한 식물향에 코가 마비될 지경이다.

배수아 작가의 ‘1인칭 산문집’을 보는 기회는 흔치 않다. 그의 문장은 대개 화자의 입을 빌렸거나 외국 작가의 시선에서 배태됐다. 이번 책을 덮으면 그의 과거 산문집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 ‘잠자는 남자와 일주일을’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을 다시 펼쳐보고 싶은 욕망을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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