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황국신민서사 암송’으로 교과서 실린 사진, 실제로는 ‘황국체조’ 장면
역사학자 최규진, ‘매신 사진순보’에서 확인
“이 매체, 일제 나팔수이자 ‘선전의 독가스’
하루빨리 교과서 사진 삭제하거나 수정해야”
<한국사> 교과서에 실린 ‘황국신민서사 암송’ 사진이 ‘황국체조’ 사진인 것으로 확인됐다. 역사학자 최규진은 일제 강점기 친일 매체인 ‘매신 사진순보’에서 황국체조 설명이 붙은 사진과 기사를 발굴했다. ‘역사연구’ 46호에 발굴 내용과 함께 전쟁 프로파간다 문제를 분석한 <‘매신 사진순보’로 생각한다>를 싣는다.
일장기 머리띠를 두른 채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경건하게 선 모습을 담은 해당 사진은 ‘황국신민서사’ 하면 떠올리는 것이다. <한국사> 교과서 9종 중 8종(금성, 동아, 리베르스쿨, 비상교육, 씨마스, 지학사, 천재교육, 해냄에듀.리베르스쿨은 미확인 )이 이 사진을 실었다.
출판사들은 ‘황국신민서사를 외우는(암송하는) 모습’이란 사진설명을 달았다. ‘황국 신민 서사를 외우고 있는 교사와 학생들’처럼 ‘교사’라고 못 박아 설명하기도 했다.
최규진은 매신 사진순보 280호(1942년 3월21일자)에서 사진 출처를 확인했다. 한 면 전체 기사 제목은 ‘이른 아침의 황국체조’다. ‘황국신민서사 암송’ 사진으로 알려진 사진 설명에 ‘황국체조, 진혼(鎭魂)의 정신통일운동’이라고 적었다.
‘이른 아침의 황국체조’ 기사는 다음과 같다.
“오전 6시 반 둥둥 울리는 큰 북소리에 ‘에이야!’하는 힘찬 소리가 새벽잠을 깨워 놓는다. 이는 황금정 3정목(현재 을지로 3가) ‘오오쿠보 마사토시 상점(大久保眞敏商店)’에서 10년 전부터 해오는 야마도바다리기(皇國體操)이다. 이것은 이바라키(茨城)현 우치하라(內原) 만몽개척 청소년의용군훈련소에서 하는 것과 똑같다. 이 체조를 통하여 정신집중을 하는 것으로 오오쿠보(大久保)씨는 이것을 점원은 물론이고 부근 어린이들에게도 알려주고 있다.”
최규진은 사진 맨 앞의 남자 즉 일부 교과서에서 교사라고 적은 남자는 상점 주인인 오오쿠보 마사토시라고 했다. 아이들은 을지로 일대에 살던 일본 어린이일 것으로 추정했다.
매신 사진신보 기사는 시간 순서에 따라 황국체조 모습을 실었다. ‘북을 쳐서 모이라고 신호하기’ ‘일장기 달기’ ‘황국체조’ ‘일상정신 10개조를 낭독하기 전원 제창하기’, ‘진혼(鎭魂)의 정신통일’ ‘천황폐하 만세 삼창’ 순이다. 날마다 ‘아침 수양 행사’로 진행했다.
‘황국체조’는 “일본정신을 되새기고 군국주의를 부추기는 운동”이다. 최규진은 황국체조 모습을 보도한 매신 사진순보를 “일제의 나팔수 노릇을 했던 매체이자 ‘선전의 독가스’”로 규정했다. 그는 “전쟁이 일어나자 사진은 전쟁 프로파간다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매일신보사는 ‘사진으로 중요한 뉴스를 생생하게 전달’해 선전 효과를 높이려는 목적으로 사진화보집인 매신 사진순보를 발행했다”고 말했다.
최규진은 “인터넷과 보도 매체에도 이 사진이 ‘황국신민서사 암송’ 사진으로 퍼져 있다. 최소한 하루빨리 <한국사> 교과서에서 만이라도 그 사진을 삭제해서 학생들에게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좌우가 반전된 사진을 실은 곳도 있다.
최규진은 동아일보, 매일신보, 조선일보, 경성일보, 조선신문 기사에서 찾은 오오쿠보 행적도 정리했다. 1904년 러일전쟁 때 일본군을 따라 올라간 평양에서 살았다. 1907년 경성으로 와 노점상, 행상, 직공으로 일했다. 1913년 휘장과 깃발 사업을 하며 성공했다. ‘오오쿠보 마사토시 상점’은 일장기와 만국기, 휘장, 상패와 메달, 타올 등을 제작·판매하는 곳이었다.
최규진은 “오오쿠보는 충실한 황도(皇道)주의자였다”고 말한다. 그는 1930년부터 해마다 기원절에 쌀 한 되씩을 경성에 사는 빈민 1000명에게 나눠주는 행사를 하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기원절은 2월 11일 “진무(神武)천황이 일본을 세우고 즉위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활력미’라 이름 붙인 주머니 쌀을 나눠주면서 일장기도 함께 배포했다. ‘국기 선양회 조선본부 대표’를 맡은 그는 ‘국기 아저씨’라고도 불렸다. 남산 조선신궁 옆 국기 게양탑도 ‘봉납’했다. 기관총 헌납 등을 하며 여러 상도 받았다. 1941년 쌀 배급제 이후에는 국방비와 국민총력연맹 사업비를 기부했다.
최규진은 “오오쿠보는 전쟁 프로파간다에 효용성이 높은 사람”이라고 했다.
오오쿠보는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점원 16명과 국가합창, 황거요배 (皇居 遙拜) 등 국위선양식도 진행했다. ‘국체 관념’을 명확하게 하고, 황국신민 신념을 기르게 하겠다는 취지로 종업원들을 일본에도 견학 보냈다. 1941년엔 경기도 안양에 청소년 교화 시설인 ‘이야사카 농원’을 만들었다. 그는 당시 “불량 청소년을 수용해서 충량한 신민으로 양성하겠다”고 했다.
‘매신 사진순보로 생각한다’는 사진과 전쟁 프로파간다의 역할을 분석한다. 최규진은 “영화가 선전의 기관총이라면 사진은 선전의 독가스”라는 말을 인용하며 “일본에서 유통되는 수많은 사진은 적과 대치하는 상황, 점령지 모습, 그리고 ‘황군의 보호를 받으며 윤택하게 사는 인간’을 담았다. 식민지 조선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매신 사진순보는 ‘감정 호소’ ‘복제’ ‘진실감 반영’ ‘문맹자도 이해’ ‘직감적 정세 포착’ ‘전파 송신 가능’ ‘아름다움’ 등 사진 장점을 살린 ‘선전전의 무기’였다. 또 이 매체는 “각종 사실을 교묘하게 편집하고,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예쁘게 포장”했다. 최규진은 다음 사례를 들었다.
매신 사진순보 330호(1943년 8월 21일자)의 한 사진 제목은 ‘결전의 바다에 모습을 드러낸 목조선’이다. 이 매체는 목조선 사진을 여러 장 실었다. “목조선은 수송력을 보강할 뿐만 아니라 적이 습격하는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다. 만약 적의 공격으로 손상을 입어도 피해액이 적은 장점이 있다”는 내용의 기사도 썼다. 최규진은 “군사용 또는 수송용 배를 쇠로 만들기 힘든 상황에서 ‘응급대책’으로 목조선을 만들어야 했던 그때 상황을 변명하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최규진은 “이미지를 서로 비교하여 겹쳐보는 작업은 이미지 독해법에서 빠뜨릴 수 없다. 여러 이미지를 겹쳐보면 그 내용을 좀 더 풍요롭게 알 수 있고 잘못 해석하는 것도 막을 수 있다”며 1944년 3월 29일자 ‘경성일보’에 실린 ‘조림 운동 포스터’를 분석한다. 이 포스터도 “풀과 나무는 식량 생산에 필요한 비료와 사료 또는 연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군수 증강에도 절대 필요했다”는 내용의 기사와 함께 실렸다.
매신 사진순보 327호(1943년 7월21일자)는 “물이 넘치는 것도 모른 채 ‘수다’를 떠는 한복 입은 여인”의 모습의 사진에 “물을 절약하는 것은 날마다 할 수 있는 봉공(奉公)이다. 물을 절약해서 미영 격멸의 여름 진영을 굳게 다지자”는 기사를 붙였다. 조선 여성을 물 낭비 주범이자 교화 대상으로 삼으며 ‘미영’에 대한 결전을 다지는 이미지 기사로 볼 수 있다. 당시 한복은 ‘비국민(非國民)’의 상징이기도 하다.
335호(1943년 10월 11일자) 표지엔 피마자(아주까리) 열매를 따는 조선 여성들이 등장한다. 한가로운 풍경에 ‘젊은이는 하늘에, 여성은 증산에’란 제목을 붙였다. “남성은 비행사가 되어 전투를 치르고 여성은 ‘총후(銃後, 총의 후방이란 뜻으로 전장에서 총을 겨누는 남성과 구분해 후방에서 보국하는 여성을 간접적으로 가리킨다)’에서 피마자를 증산하라”는 취지의 기사를 보도했다.
최규진은 매신 사진순보의 만화도 분석했다. 325호(1943년 7월1일자)의 만화엔 “해군특별지원병제도 실시를 기념하여 우리도 월월화수목금금의 의기(意氣)로 나아가세”란 글이 붙었다. “총력전체제에 맞게 쉼 없이 몸과 정신을 단련하고 군인정신으로 생활하자”는 취지의 만화다.
335호(1943년 10월11일자) 만화는 항공병이 총검으로 미국 비행기들을 꿰뚫는 모습을 담았다. 최규진은 “(1942년부터) 일제는 ‘총검도는 군대에서만 하는 것으로 아는 그릇된 관념을 타파하고 국방무도로 삼아아 한다’라며 일반인에게도 총검도를 보급했다”고 설명했다.
323호(1943년 6월 11일자) 만화는 산골에서 밭갈이하던 부부가 비행기를 바라보는 모습을 그리곤 ‘총후의 감사’라는 제목을 넣었다. 최규진은 “만주사변 뒤부터 이어진 ‘비행기 헌납운동’은 일상의 영역에서 비행기를 익숙하게 만든 하나의 계기였다. 이 만화는 ‘비행기의 전쟁은 국민의 전쟁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고 했다.
최규진은 레지스 드브레의 “이미지는 글보다 전염성이 강하다”는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매신 사진순보에 실린 이미지 하나하나는 전쟁 프로파간다의 방향과 목표를 잘 보여준다. 또한 그 이미지들을 ‘두텁게’ 바라보면, 그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총후 신민’의 일상생활을 좀 더 풍요롭게 해석할 수 있다. 생생한 것으로 따지자면 정말이지 문자보다 이미지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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