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말로' 처음 소개하다…'1호 DJ' 최동욱씨 별세

이충원_독자부 2023. 2. 1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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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호 DJ' 최동욱(崔東旭)씨가 17일 오후 4시께 서울 마포 자택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말로 음악을 소개'하는 게 인기를 끌자 화신백화점 3층의 뮤직홀 '메트로'나 충무로의 '카네기', '세시봉'에서도 고인을 불렀다.

아들 최성원(TBN DJ)는 "지난달까지도 종로 뮤직홀에 간간이 나가서 활동하셨다. 음악이 너무 좋아서 음악과 함께 사시다 가신 분"이라며 "저도 그걸 배워서 DJ 겸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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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6일의 고인 [촬영 황광모]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국내 1호 DJ' 최동욱(崔東旭)씨가 17일 오후 4시께 서울 마포 자택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7세.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6·25 전쟁 때 전주로 피난 가서 전주고를 졸업했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 등이 동기다. 고려대 국문학과에서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과 함께 배웠다.

군 제대 후 복학생 때 종로 2가의 뮤직홀(음악감상실) '디쉐네'에 가서 "음악을 말로 소개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당시는 턴테이블에 레코드를 틀고 곡명은 흑판에 쓰거나 유리창에 앨범 재킷을 게시하던 시절이었다. '말로 음악을 소개'하는 게 인기를 끌자 화신백화점 3층의 뮤직홀 '메트로'나 충무로의 '카네기', '세시봉'에서도 고인을 불렀다. 한동안 라디오 프로그램 구성작가로 일하면서 신문에 팝 칼럼을 쓰기도 했다.

1963년 동아방송(DBS) 공채 1기 프로듀서(PD)로 입사했다. 1964년 10월 초부터 동아방송 '탑툰쇼'로 제작과 진행을 동시에 맡으며 라디오 DJ의 길로 들어섰다. PD인 그가 DJ까지 맡겠다고 해서 소동이 났지만, 최창봉(1925∼2016) 방송부장이 아나운서실과 긴급히 상의해서 진행을 맡겼다. 한국 방송에 처음으로 DJ가 태어난 것.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는 이 해를 국내 DJ 탄생 원년으로 삼았다.

1964∼1971년에 진행한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 '3시의 다이얼'은 한국 방송 최초로 생방송에서 전화로 음악 신청을 받았다. 고인은 2011년 문화일보와 인터뷰에서 "호응이 너무 커서 전화가 집중되는 바람에 광화문전화국이 일시 마비되는 현상까지 빚어졌지요. '전화 받는 것을 자제해 주십시오'라는 공문을 전화국으로부터 받은 적도 있어요."라고 했다.

'0시의 다이얼'에선 처음으로 심야 생방송을 시작했다. 19770년대에는 서울신문과 스포츠동아 기자로 활동했고, 국내 최초로 자동차 운전요령, 드라이브 코스 등 자동차 관련 서적을 펴냈다. 1991년 미국으로 이주해 로스앤젤레스(LA) 미주한인방송 사장을 지냈다. 2010년말 창립한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초대 회장을 맡았다.

고인은 지난 2019년에도 '세시의 다이얼' 방송 55주년을 기념한 공연을 펼쳤고, 2020년엔 복지TV와 '올디스 콘서트'를 진행했다. 아들 최성원(TBN DJ)는 "지난달까지도 종로 뮤직홀에 간간이 나가서 활동하셨다. 음악이 너무 좋아서 음악과 함께 사시다 가신 분"이라며 "저도 그걸 배워서 DJ 겸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고 말했다.

유족으론 부인 최승수씨와 사이에 2남(최성원·최인기)과 며느리 양유지아씨 등이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6호실에 마련됐고, 발인은 20일 오전 5시20분. ☎ 02-2227-7566

chung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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