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과의 나홀로 독대… ‘전시를 전시하는’ 기획 실험 [박미란의 오프 더 캔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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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주간 매주 한점 선별 전시장 걸어두고
5일 걸쳐 4시간씩 감상하는 프로젝트
내밀하고도 소란한 마음의 기록 엮어
한국과 미국서 미술 공부한 큐레이터
기획자 공동운영 플랫폼 ‘웨스’서 활동
2023년 샌정·이재헌의 개인전 등 준비 중
◆하나의 그림과 보내는 오롯한 시간
◆그림을 보는 나, 나를 보여주는 그림
그림을 본다는 것은 무엇을 위한 일일까. 시야를 스치는 세상의 풍경과 마음을 두드리는 감정의 색채가 그림을 경유하면 무엇이 될까. 샌정의 작품을 감상하던 첫째 주에 맹지영이 다음처럼 적었다. “그림을 보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 타인을 통해, 작품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 일.”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1915∼1980)가 ‘푼크툼’이라는 개념에 대해 연관된 설명을 했다. 같은 작품을 대하더라도 보는 이의 감상은 각자 다르다. 같은 사람이 보더라도 때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매번 변한다. 늘 다른 주관적 경험에 비추어 화면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작품을 보는 순간 마음을 찌르듯 나타나는 직관적이고도 강렬한 감정의 이름이 푼크툼이다.
다만, 맹지영의 바라봄은 그림과의 첫 만남 이후 5일간의 유예된 시간을 길게 포괄한다. 첫인상에 드러나지 않은 여러 요소를 찬찬히 들여다볼 시간이 의도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화면을 가로질렀을 붓의 모양, 물감의 점도, 작가의 마음을 다각도로 상상하면서 성실하게 응시하는 날들이 이어진다. 최초의 대면이 선사한 푼크툼의 순간이 과거의 자아를 투영해 보여주었다면, 이후의 시간 동안 맹지영은 그림과 더불어 자라나는 현재의 ‘나’를 새로이 써 나갔을 것이다. 두 번째 주 최상아의 작품을 바라보며 그는 “볼 때마다 새롭게 보이는 이미지들을 보면서 그것은 내가 달라지는 것임을 알아차리고는 늘 신기하다”라고 썼다. 세 번째 주에 이재헌의 작품과 함께하면서는 다음처럼 적었다. “어떤 대상을 오래 본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 속속들이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파헤친다기보다는 현재를 이해하고 싶은 것에 가깝다.”
바라보는 작품에 따라, 생각의 흐름에 따라 문장의 호흡이 달라진다. 때로 걱정스러운 속내를 고스란히 내비치기도 한다. “사람들이 나의 감상을 관람하고 있다. SNS의 특성상 오래 머무르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는 고백이나 “다시 살색 세계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서 오래 머물러야 하는 것 같다”는 식의 서술은 글쓴이의 은밀한 속내를 말갛게 훔쳐본 듯하여 멋쩍은 기분마저 든다. 넷째 주에 이르러 임충섭의 작품과 시간을 보내는 맹지영은 컴퓨터 대신 종이 위에 펜으로 글을 썼다. 그림의 호흡과 글쓰기의 속도, 생각의 흐름과 손의 움직임이 맞아떨어짐을 느끼면서다.
말 없는 뒷모습에 감추어진, 이토록 소란한 마음의 기록을 읽어내는 일은 내게 낯선 종류의 기쁨이다. 마지막 주에 정경빈의 작품을 마주한 맹지영은 “그림은 멈춰 있지만 끊임없이 움직인다”고 썼다. 이어 모든 작품은 “내가 살아 움직이는 한 생동한다”고도 했다. 미술 작품을 바라보는 마음은 매 순간 다른 물결로 요동친다. 그것이 회화나 조각처럼 가만히 멈추어 있는 작품이라면, 감상의 순간 움직이는 것은 오로지 보는 이의 마음뿐이다.
그림을 보는 일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 본다. 작가의 손을 떠난 그림 한 점이 나의 시야에, 나의 세상에 들어와 비로소 내 것이 되는 마법 같은 순간에 대하여. 그림이 내가 되고, 내가 그림이 되는 그 놀라운 바라봄의 여정에 대하여. 5주의 기록을 차근히 읽고 책의 말미에 다다르면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의 글을 만나게 된다. 그중 이재헌이 이야기하길 “그림을 보는 일은 그림을 그리는 일과 같은 것이 된다. 그림을 보면서 저마다 화가가 되고, 그림을 그리면서 저마다 보는 이를 그리워한다.”
그린 이의 몸짓과 정서를 켜켜이 품은 그림은 보는 이의 눈과 마음에 깃들어 작은 자리를 비워낸다. 다시 맹지영의 말을 빌리자면 “작품 앞에서의 능동적인 고요는 감상자의 내면에 다른 향기로 채워지는 공터를 만든다.” 그 내면의 땅을 보듬는 매일의 뒷모습이 유난히 애틋했다. 새로운 공터 안에 씨앗을 심듯 곱게 써 내려간 일련의 생각들이 감사하기도 했다. 누구에게는 틔우지 않아도 그만인 그런 종류의 새싹. 그가 그림과 함께 한 날들의 끝에서, 그 씨앗이 매우 튼튼하게 움텄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맹지영은 올해 샌정과 이재헌의 개인전, 그리고 상업 갤러리와의 협력하에 선보일 단체전 기획을 준비 중이다. 다가오는 내년과 내후년의 일정 또한 앞서 계획하고 있다.
박미란 큐레이터, 미술이론 및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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