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과의 나홀로 독대… ‘전시를 전시하는’ 기획 실험 [박미란의 오프 더 캔버스]

2023. 2. 1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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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지영과 그림의 시간
5주간 매주 한점 선별 전시장 걸어두고
5일 걸쳐 4시간씩 감상하는 프로젝트
내밀하고도 소란한 마음의 기록 엮어
한국과 미국서 미술 공부한 큐레이터
기획자 공동운영 플랫폼 ‘웨스’서 활동
2023년 샌정·이재헌의 개인전 등 준비 중

◆하나의 그림과 보내는 오롯한 시간

가만히 앉은 뒷모습에 왜인지 마음이 시큰했다. 하얀 방 한가운데 미동도 없이 그림을 보는 이의 모습이야말로 정갈한 그림 같았다. 숨 쉬는 어깨를 오르내리다 종종 손을 움직여 무언가 적고, 이내 다시 멈춘 듯 적막한 화면. 그 모습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생중계로 방송되었다. 큐레이터 맹지영(46)이 2021년 2월22일부터 3월27일까지 총 5주의 시간 동안 진행한 ‘그림의 시간(one at a time)’에 관한 이야기다. 매주 1점씩 선별한 작품을 전시장에 걸어 두고 하루 4시간씩 5일에 걸쳐 홀로 작품을 감상하는 프로젝트다. 그 과정을 SNS에 실시간 송출함으로써 ‘전시를 전시하는’ 기획이기도 했다.
작품을 감상하는 맹지영의 뒷모습. 맹지영 제공
어느 미술 전시에서도 온전히 작품을 독대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기획자로서나 관객으로서나 마찬가지다. 바쁜 일정에, 때로 사람에 떠밀려 다음 동선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 순간이 자꾸만 찾아오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전시라는 것이 짧으면 수일에서 길면 수개월간 지속되다 홀연히 사라지는 사건이라서도 그렇다. 약속된 기간내 일정을 쪼개어 두세 번 찾아가는 노력이 생각처럼 녹록지 않다. 그래서 맹지영의 뒷모습이 무척이나 부럽고도 인상 깊었다. 그가 최근 이 프로젝트에 대한 기록을 엮어 ‘그림의 시간’(소환사, 2023)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했다.
그와의 시간을 위해 선택된 다섯 그림은 샌정, 최상아, 이재헌, 임충섭, 정경빈의 작품이다. 책의 서두에서 밝히길 “작품과의 온전한 만남을 보장받으면서 작품을 이해하는 시간을 확보하고자” 기획된 이 프로젝트는 오롯이 한 명의 기획자이자 관객인 자신에게 한 번에 한 점씩 유일한 감상의 대상을 제공했다. 전시장 내 흐르는 시간은 오직 그와 작품의 상호 관계만을 매개하게 된다. 스크린 너머 불특정 다수의 다른 이들이 감상의 과정을 역으로 관람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몰입의 시간 자체를 “어떻게 전시의 형태로 가져갈 수 있는지에 대한 나름의 실험”이 된 자리이기도 하다.
임충섭, 리처드 터틀 2인전 ‘How Objects Grasp Their Magic’ 전시 전경. 페이스갤러리 서울 제공
맹지영은 한국과 미국에서 미술을 공부한 큐레이터다. 시각예술 분야에서 연구 및 기획 활동을 하며 다양한 글을 쓰고 있다. 2009년부터 2020년까지 비영리기관 두산아트센터에 재직하며 서울과 뉴욕 지점의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 및 운영했다. 지난해 미국에 본사를 둔 페이스갤러리 서울 분점에서 디렉터로 근무하면서 임충섭과 리처드 터틀의 2인전(2022) 및 염지혜, 정희민, 최상아, 홍이현숙이 참여한 단체전 ‘유어 프레젠트(Your Present)’(2022)를 기획해 선보이기도 했다. 2019년부터 현재까지 기획자 공동 운영 플랫폼인 웨스(WESS)에서 활동 중이다. 그간 ‘그림의 시간’(2023), ‘스몰토크: 뉴욕에서의 대화’(2015) 등의 책을 냈다.

◆그림을 보는 나, 나를 보여주는 그림

그림을 본다는 것은 무엇을 위한 일일까. 시야를 스치는 세상의 풍경과 마음을 두드리는 감정의 색채가 그림을 경유하면 무엇이 될까. 샌정의 작품을 감상하던 첫째 주에 맹지영이 다음처럼 적었다. “그림을 보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 타인을 통해, 작품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 일.”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1915∼1980)가 ‘푼크툼’이라는 개념에 대해 연관된 설명을 했다. 같은 작품을 대하더라도 보는 이의 감상은 각자 다르다. 같은 사람이 보더라도 때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매번 변한다. 늘 다른 주관적 경험에 비추어 화면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작품을 보는 순간 마음을 찌르듯 나타나는 직관적이고도 강렬한 감정의 이름이 푼크툼이다.

다만, 맹지영의 바라봄은 그림과의 첫 만남 이후 5일간의 유예된 시간을 길게 포괄한다. 첫인상에 드러나지 않은 여러 요소를 찬찬히 들여다볼 시간이 의도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화면을 가로질렀을 붓의 모양, 물감의 점도, 작가의 마음을 다각도로 상상하면서 성실하게 응시하는 날들이 이어진다. 최초의 대면이 선사한 푼크툼의 순간이 과거의 자아를 투영해 보여주었다면, 이후의 시간 동안 맹지영은 그림과 더불어 자라나는 현재의 ‘나’를 새로이 써 나갔을 것이다. 두 번째 주 최상아의 작품을 바라보며 그는 “볼 때마다 새롭게 보이는 이미지들을 보면서 그것은 내가 달라지는 것임을 알아차리고는 늘 신기하다”라고 썼다. 세 번째 주에 이재헌의 작품과 함께하면서는 다음처럼 적었다. “어떤 대상을 오래 본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 속속들이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파헤친다기보다는 현재를 이해하고 싶은 것에 가깝다.”

맹지영이 그림 앞에서 보낸 720시간은 작품을 이해하기 위함인 동시에 스스로를 발견하기 위한 응시의 여정이었을 터다. 그림으로 하여금 지금의 나를 비추도록, 바라봄을 통해 또 다른 나로서 거듭나도록 만드는 지난한 과정인 것이다. 그림을 보는 이유는 누구에게나 그래서가 아닐까. 낯선 화면으로부터 나의 어제와 오늘을 발견하고, 내일을 비추어 보기 위해서. 타인의 흔적으로부터 나를 찾고, 나 외의 세상과 서툴지만 내밀하게 공명하기 위해서. 때로 위로받고, 함께 절망하고, 또다시 희망을 모색하곤 하는 것이다. 문자도 문법도 없는 그림의 언어가 마음속에 전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의 목소리다.
‘그림의 시간’ SNS 생중계 화면 캡처. 맹지영 제공
◆내밀하고도 소란한 마음의 기록

바라보는 작품에 따라, 생각의 흐름에 따라 문장의 호흡이 달라진다. 때로 걱정스러운 속내를 고스란히 내비치기도 한다. “사람들이 나의 감상을 관람하고 있다. SNS의 특성상 오래 머무르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는 고백이나 “다시 살색 세계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서 오래 머물러야 하는 것 같다”는 식의 서술은 글쓴이의 은밀한 속내를 말갛게 훔쳐본 듯하여 멋쩍은 기분마저 든다. 넷째 주에 이르러 임충섭의 작품과 시간을 보내는 맹지영은 컴퓨터 대신 종이 위에 펜으로 글을 썼다. 그림의 호흡과 글쓰기의 속도, 생각의 흐름과 손의 움직임이 맞아떨어짐을 느끼면서다.

말 없는 뒷모습에 감추어진, 이토록 소란한 마음의 기록을 읽어내는 일은 내게 낯선 종류의 기쁨이다. 마지막 주에 정경빈의 작품을 마주한 맹지영은 “그림은 멈춰 있지만 끊임없이 움직인다”고 썼다. 이어 모든 작품은 “내가 살아 움직이는 한 생동한다”고도 했다. 미술 작품을 바라보는 마음은 매 순간 다른 물결로 요동친다. 그것이 회화나 조각처럼 가만히 멈추어 있는 작품이라면, 감상의 순간 움직이는 것은 오로지 보는 이의 마음뿐이다.

그림을 보는 일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 본다. 작가의 손을 떠난 그림 한 점이 나의 시야에, 나의 세상에 들어와 비로소 내 것이 되는 마법 같은 순간에 대하여. 그림이 내가 되고, 내가 그림이 되는 그 놀라운 바라봄의 여정에 대하여. 5주의 기록을 차근히 읽고 책의 말미에 다다르면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의 글을 만나게 된다. 그중 이재헌이 이야기하길 “그림을 보는 일은 그림을 그리는 일과 같은 것이 된다. 그림을 보면서 저마다 화가가 되고, 그림을 그리면서 저마다 보는 이를 그리워한다.”

그린 이의 몸짓과 정서를 켜켜이 품은 그림은 보는 이의 눈과 마음에 깃들어 작은 자리를 비워낸다. 다시 맹지영의 말을 빌리자면 “작품 앞에서의 능동적인 고요는 감상자의 내면에 다른 향기로 채워지는 공터를 만든다.” 그 내면의 땅을 보듬는 매일의 뒷모습이 유난히 애틋했다. 새로운 공터 안에 씨앗을 심듯 곱게 써 내려간 일련의 생각들이 감사하기도 했다. 누구에게는 틔우지 않아도 그만인 그런 종류의 새싹. 그가 그림과 함께 한 날들의 끝에서, 그 씨앗이 매우 튼튼하게 움텄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맹지영은 올해 샌정과 이재헌의 개인전, 그리고 상업 갤러리와의 협력하에 선보일 단체전 기획을 준비 중이다. 다가오는 내년과 내후년의 일정 또한 앞서 계획하고 있다.

박미란 큐레이터, 미술이론 및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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