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는 일상으로의 회귀를 소망한다 [박영순의 커피 언어]

2023. 2. 1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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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주가 영하로 뚝 떨어진 추운 날씨에도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만을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2018년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커피) 협회'가 출범했을 때만 해도 '소수의 일탈'쯤으로 여기고 웃어 넘기는 분위기였지만, 4년여 만에 사정이 바뀌었다.

스타벅스코리아의 지난달 아메리카노 판매량만 따질 때 '아아'가 전체의 54%를 차지하며 마침내 '따아(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제쳤다.

아아의 돌풍은 한국만의 사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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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주가 영하로 뚝 떨어진 추운 날씨에도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만을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2018년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커피) 협회’가 출범했을 때만 해도 ‘소수의 일탈’쯤으로 여기고 웃어 넘기는 분위기였지만, 4년여 만에 사정이 바뀌었다.

스타벅스코리아의 지난달 아메리카노 판매량만 따질 때 ‘아아’가 전체의 54%를 차지하며 마침내 ‘따아(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제쳤다. 아아의 돌풍은 한국만의 사정이 아니다. 미국, 일본, 중국에서도 2013년부터 냉커피 출시가 잇따르더니 2017년을 기점으로 연 성장률이 30∼40%로 빅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강추위 속에서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는 것은 무던한 맛과 해방감을 불러일으키는 짜릿함에 있다. 커피화가 유사랑 제공
아아의 무엇이 이토록 커피애호가들을 열광케 하는 것일까? 같은 에스프레소를 뜨거운 물로 희석하든 얼음에 붓고 찬물을 추가하든 성분은 다르지 않다. 따아건 아아건 폴리페놀과 카페인 등 유효 성분에 의한 신체 반응은 별다를 게 없는 것이다.

따라서 아아와 따아는 맛과 마시는 사람의 기분에서 갈린다고 봐야 한다. 아아의 차별적 면모는 “상쾌하면서도 견고하고, 짜릿하면서도 무던하다”고 압축할 수 있다. 따아에서는 향미 성분을 붙잡고 있는 에스프레소의 기름 성분이 뜨거운 물을 만나 휘발성 화합물이 방출하면서 강한 향미를 발휘하게 된다. 이는 풍성한 인상을 주지만 커피의 쓴맛 역시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반면, 아아는 얼음의 냉각 효과로 인해 미뢰를 순간적으로나마 마비시켜 쓴맛과 신맛이 별로 없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덕분에 따아보다 부드럽게 느껴지고 코를 자극하는 휘발성 성분의 활력도 줄어들어 온화하고 균형이 잘 맞는 듯한 인상을 갖게 된다.

후각과 미각을 통해 중추신경을 자극함으로써 감지하게 되는 맛 외에도 아아가 불러 일으키는 물리적 감각도 인기를 끄는 비결이다. 뜨거운 커피에 비해 한 모금 가득 입에 담을 수 있어 포만감에서 앞선다. 입안의 점막을 눌러주는 무게감이 상대적으로 견고해 꽉 찬 느낌을 주는데, 피로가 누적돼 풀린 듯한 몸의 골격을 꽉 잡아주고 정신마저 또렷해지는 기분이 들게 한다.

일과 중에 아아를 마시는 것은 과한 업무와 온갖 근심으로 달아오른 신체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같다. 순간적인 체온의 하강은 답답한 가슴을 탁 트이게 하고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뛰쳐나와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듯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한마디로 기분 전환이 즉각적이며 확실하다. 그러므로, 아아는 행복하고 싶은 우리의 본능과 닿아 있다. 뜨거운 커피가 대세를 이루는 상황에서 아이스 커피는 습기가 많으면서도 찜통 더위가 겹쳐 불쾌지수가 높게 형성되는 반도 또는 바다를 낀 지역에서부터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차가운 커피 선호 현상’을 한때의 유행이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음료의 진보이자 진화로 보는 견해가 있다. 갈수록 지구는 달궈지고 있고, 도시화로 인해 갑갑하다 못해 숨이 막힐 지경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AI)과 네트워크 등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류를 격리시키고 고독하게 만들고 있다. 갈수록 ‘일상으로의 회귀’를 위해 아아에 매달리게 하는 세상이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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