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코로나19 백신계약서 공개해야”…질병청 상대 승소
백신 피해자 "보상 논란에 긍정적 효과 예상"
질병청 "세부 사항 검토 뒤 항소 여부 결정"
그간 정부가 거부해온 코로나19 백신 계약서를 일부 공개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백신 공급 계약이 제약사에게 유리한 일방적 합의로 체결된 탓에 정부가 백신 접종 이상 반응자의 부작용을 쉽게 인정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 계약서가 공개되면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행정법원 제6부(재판장 이주영 부장판사)는 지난 10일 유튜버이자 사회 운동가인 양대림(20) 씨가 질병관리청장을 상대로 지난해 4월 낸 코로나19 백신 공급계약서에 대한 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유튜브 채널 ‘양대림 연구소’를 운영 중인 양 씨는 지난해 ‘정부가 코로나19 백신 접종 뒤 이상 반응의 인과성 인정에 소극적인 이유가 백신 공급 계약서에 굴욕적인 내용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내용의 제보를 받았다. 이에 양 씨는 질병청에 국민의 알 권리 등을 내세워 코로나19 공급 계약서 내용의 전체 공개를 요구했다.
하지만 질병청은 “계약서에 백신 제약사의 생산 공급, 인수, 대금 지급, 배송, 접종 등에 관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이 기재돼 있다”며 “이는 경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 타인에게 알려지지 아니함이 유리한 사업 활동에 관한 일체의 정보 또는 비밀사항에 해당한다”며 공개를 거부했다.
특히, 질병청은 백신 제약사와 비밀유지 조항이 담긴 협약을 체결했고, 이를 위반할 때 제약사들이 코로나19 백신 공급 계약을 해지함으로써 국민에게 백신을 안정적으로 공급하지 못하게 될 우려가 높아,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보호되는 공익이 국민의 알권리보다 훨씬 크다고 주장했다. 이에 양 씨가 같은 해 4월 질병청장을 상대로 코로나19 백신 계약서를 공개해 달라며 행정소송을 낸 것이다.
재판부는 “코로나19 백신 계약서는 헌법 제21조와 정보공개법의 목적 및 취지에 따라 원칙적으로 모두 공개해야 하고, 정보공개법에 적시한 비공개대상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정은경 당시 질병관리청장이 코로나19 백신 계약서에 대한 자신의 정보공개청구를 거부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에 앞서 피고 측인 질병청이 제출한 백신 계약서 일부를 비공개로 열람했다. 그 결과 정부가 제약사와 체결한 각 계약에 모두 비밀유지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비밀유지조항의 존재만으로 비공개 대상이 된다고 볼 수는 없다”며 “비밀유지의무는 계약 당사자들 사이에서만 효력이 있을 뿐 국민과 법원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공공기관이 계약 상대방과의 비공개합의만으로 정보공개를 거부할 수 있다면 정보공개법은 무력화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백신 계약서가 공개되지 않아 백신 도입 과정에서 여러 추측과 오해로 인해 공권력의 신뢰 훼손이 더 위험한 상태이며 외국에서도 일부 공개된 상항에서 더 이상 백신제조사들의 수익에 큰 피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질병청은 이번 판결서를 열람한 이후 2주 이내에 항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만약 질병청이 항소 대신 계약서 공개를 결정하면 지난해 정부가 어떤 회사와 얼마에 어떤 조건으로 계약을 맺고 2조6000억 원의 예산을 썼는지 알 수 있다.
특히, 계약 내용 중 그간 소문으로 제기됐던 정부와 제약사 간 불공정 합의 내용 등의 실체가 드러나면 백신 피해 보상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관련 절차에 따라 이 내용은 양 씨 측에게 제공되는데, 양 씨는 정부로부터 백신 계약서를 받게 되면 언론사 제보나 유튜브 방송 등을 통해 계약서를 대중에게 공개할 계획이다. 양 씨는 “그간 백신 계약을 둘러싸고 의혹만 증폭된 상황에서 접종 피해를 입고도 피해 인정을 받지 못한 분들의 육체·정신적 고통이 컸던 것을 안다”며 “이 분들이 정부로부터 인과성 인정을 받는데, 이번 판결이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피해자들도 이번 재판부의 결정에 기대감을 건다.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 관계자는 “정부가 공개하지 않는 계약 사항 중 일부 내용이 백신의 불확실성을 직·간접적으로 입증한 증거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질병청 관계자는 “현재 판결문과 관련해 세부 사항을 검토 중”이라며 “이 작업이 끝나는 대로 항소 여부 등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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