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보다 심각... 전세發 부채위기, 주택시장 무너질수도”

차학봉 부동산전문기자 2023. 2. 18. 09:1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차학봉기자의 부동산 봉다방>
이창무 한양대 교수 인터뷰-상
전세를 매개로 레버리지 극대화, 금리인상에 취약
역전세-깡통전세로 매매 시장 붕괴 가능성
전세 신뢰의 위기, 전세금으로 연결된 부채구조 붕괴
전세의 대출 의존도 급증으로 변동성 극대화, 주택 과소비 촉발
고금리-가구수 증가 둔화의 이중 충격, 수요 위축 발생

“전세가와 매매가 동시 폭락은 역전세 대란과 깡통전세를 대거 발생시켜 전세 시장 자체를 마비시킬 수 있다. 주택시장이 대출의존도가 커져서 외환위기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 올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시장 정상화를 위한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지금 전세시장이 유지되는 구조는 임차인의 연결을 통한 ‘부채 돌려막기’”라며 “전세가 안전하다는 믿음이 깨지면 전세시장 뿐만 아니라 전세 갭투자로 연결된 매매시장도 붕괴될 수 있고 신용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대 도시공학과 출신으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 교수는 한국부동산분석학회장, 아시아부동산학회장, 한국주택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본지는 14일 한양대에서 이 교수를 만나 전세와 매매가 폭락의 의미에 대해 질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주택 1139채를 보유하다 사망한 일명 '빌라왕' 김모 씨 사건 피해 임차인들이 최근 세종시 국토교통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한 법안 마련 및 관련자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전세제도에 대한 신뢰가 붕괴할 경우, 전세 갭투자로 연결된 매매시장도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우려했다./뉴스1

-지금 시장 상황은 어떤가?

“매매가와 전세가의 동반 급락은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다. 매매가가 하락하면 추가하락 기대감으로 주택 구매 대신 전세를 선택하는 수요가 증가하면서 전세가격이 오르는 현상이 발생한다. 전세가 매매가의 폭락을 저지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매매가와 전세가의 동반 하락은 극히 드문 현상이고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시장으로 진입하는 것일 수도 있다. 주택시장에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상황, 한국만 발생한 금리발 임대료 폭락

-매매와 전세 동반 폭락의 원인은 ?

“전세가격이 매매가와 함께 폭락하는 것은 전세시장의 대출 의존도가 커진 것이 원인이다. 매매시장 뿐만 아니라 전세시장도 금리인상의 직격탄을 받은 이유이다. 여기다가 가구 수 증가가 둔화된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2020년과 2021년 수도권에서 연간 30만 가구가 증가했는데, 작년에 12만 가구로 증가폭이 크게 줄었다. 이는 1인 가구의 가구 분화가 대폭 감소했다는 의미이다. 주택시장이 금리와 가구 수 증가둔화의 이중충격을 받고 있다.”

-1인 가구의 증가폭이 줄어든 이유는 ?

" 2020년과 2021년 수도권에서 연간 30만 가구가 증가했다. 수도권 가구 수 증가가 보통 10만 가구인데, 갑자기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2030세대 1인 가구가 급증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가 자산계층에 대한 부동산 대출 등 규제를 강화하는 대신 청년층에 대해서는 전세자금 대출 등을 늘렸다. 저금리를 활용해서 대출을 받아 분가한 2030세대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금리가 치솟으면서 2030세대의 분가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게 됐다. 가구수 증가의 둔화는 전세, 매매시장의 기반 축소로 이어진다. "

이창무 한양대 교수

-전세가 폭락은 금리 인상의 영향인가?

“월세가 주류인 외국의 경우, 임대료는 소득과 연동한다. 임대료가 치솟아도 소득이 견딜 수 있는 범위를 크게 벗어날 수 없다. 이때문에 외국에서는 집값이 폭락해도 월세 임대료의 변동이 크지 않다. 금리가 치솟으면서 집값이 폭락하는 나라는 있어도 임대료가 조정수준이 아니라 폭락하는 나라가 없는 이유이다.

반면 한국은 전세가격 하락폭이 집값 급락폭을 쫓아가고 있다. 실거래가 지수 기준 작년 서울 아파트 매매가 하락률이 22%인데, 시세지수라 보수적일 수 밖에 없는 전세가 하락률도 15%에 달했다. 이는 전세의 금융화, 즉 대출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전세시장이 금리와 연동하는 시장으로 바뀐 결과이다. 전세시장이 금리에 따라 춤추는 변동성 장세가 이어질 수 있다.”

-전세시장의 금융화가 일어난 원인은?

“전세는 전통적으로 자가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했고 일종의 강제저축수단이었다. 자산을 축적해가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세의 의미가 달라졌다. 박근혜 정부가 전세대출 확대 정책을 도입했고 문재인 정부에서 전세대출이 대폭 늘었다. 전세대출 총액이 2012년 20조대에서 2021년 180조로 급증했다. 서민 및 신혼부부, 청년가구를 위한 대출 확대정책 덕분이다.

물론 전세대출이 급격하게 확대된 배경은 저금리도 한 몫했다. 금리가 낮아 대출을 받아도 부담이 크지 않았다. 저금리와 전세대출 확대정책이 합쳐지면서 서민층의 주거 소비를 늘리는 지렛대 역할을 했다. 2억 전셋집에 들어갈 사람이 대출과 저금리를 활용해서 4억 전셋집에 들어가는 식의 ‘전세 과소비’로 이어졌다. 전세가격 급등이 발생한 이유 중 하나이다. 당시와는 반대로 금리가 치솟아 전세대출의 이자부담이 갑자기 커지면서 전세수요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여기다가 1인 가구 증가폭도 급속도로 줄면서 전세 수요기반 자체도 위축됐다.”

◇레버리지 극대화하는 한국의 주택시장

-한국의 주택시장이 다른 나라보다 금리에 취약한가?

“금리가 급속도로 치솟으면서 다른 나라들도 집값이 하락하고 있다. 그런데 임대료와 매매가가 동반 폭락하는 나라는 한국이외에는 없다. 한국 주택시장이 이처럼 금리에 취약한 것은 레버리지를 극대화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우선 아파트는 택지가 조성되기 전에 건설사에 선분양하고 건설사는 토지대금의 10%로 주택을 짓기도 전에 소비자에게 선분양한다. 주택을 분양받으면 분양잔금을 전세대금으로 메꾸고 자신은 다른 집에 전세로 거주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전세대출이라는 비제도권 금융을 제도권 금융으로 대체하기보다는 비제도권 부채를 제도권 부채로 떠받치는 레버리지 고리를 확대했다. 특히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의 전세반환보증보험은 전세레버리지 리스크를 오판하게 했다. 금리발 전세가격의 폭락이 기존 매매시장 뿐만 아니라 아파트 미입주, 미분양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이다.”

- 한때 서울 매매의 40%가 전세를 낀 투자 갭투자였고, 사기극이 빈발하는 빌라 다세대 주택은 전세가격이 매매가에 근접한다.

“전세시장에서 갭투자는 숙명이다. 한국의 전세는 집주인 입장에서는 집을 사는 일종의 금융상품이다. 반면 세입자는 매매가보다 싸게 임대하는 수단이었다. 전세금을 자기 자본으로 조달하던 시기에도 전세가의 큰 변동성은 부담이었다. 그런데 전세대출이 본격화되면서 변동성이 증폭된 전세가격이 집값에 근접하는 수준까지 치솟으면서 이른바 무자본 갭투자 등이 기승을 부렸다. 지금처럼 갑자기 금리가 치솟으면 전세가격이 폭락하고 수요가 위축된다. 자산 여유가 없는 무자본 갭투자가들은 견딜 수가 없다. 투매를 하거나 집을 팔아도 전세금을 내주지 못하는 깡통전세로 인해 파산이 속출할 수 있다. 무자본 갭투자가 유행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정책적 무관심에다 전세가격 폭등이 한몫했다.”

-빌라왕 사기극이 터지면서 전세제도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전세는 저렴하고 안전하고 서민을 위한 임대계약제도라는 것은 잘못된 믿음이다. 전세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자산계층에게 유리한 임대 형태이다. 전세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월세시장으로 밀려났다. 더군다나 이번에 확인된 ‘금리 리스크’를 감안하면 전세가 월세보다 저렴한 것도 아니다. 빌라왕 사기극에서 확인된 것처럼 전세금 반환 장치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전세제도에 대한 정책적 재검토가 필요한 시기가 됐다.”

◇전세는 부채돌려막기 구조, 외환위기보다 취약

- 전세시장이 주택시장의 위기를 촉발시킬 수 있다고 보는가?

“2021년 고점에서 계약한 전세계약이 올해 2년 만기가 도래한다. 전세시장이 유지되는 구조는 임차인의 연결을 통한 ‘부채 돌리기’이다. 전세금은 보통 신규 세입자가 기존 세입자에게 주는 형태로, 전세가격과 집값이 최소한 장기간 하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새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거나 전세가격이 너무 떨어지면 이른바 역전세대란이 발생해서 시장이 작동을 멈춘다. 매매가까지 떨어지면서 집을 팔아도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는 ‘깡통전세’가 발생한다. 전세가 안전하다는 믿음이 깨지면 전세시장 뿐만 아니라 전세나 보증금이라는 갭투자로 연결된 매매시장도 붕괴할 수 있다. 전세사기와 깡통전세 문제는 부채돌려막기가 내재된 전세시장에 걷잡을 수 없는 신용경색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

-외환위기와 비교하면 지금 주택시장 상황은 어떤가?

“1990년대는 전세와 주택담보 대출 자체가 많지 않았다. 전세도, 집도 대부분 자기 자본으로 마련했다. 외환위기로 인해 폭락했던 전세가와 매매가가 금방 회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이다. 그러나 지금은 전세도 매매도 대출 의존도가 굉장히 높다. 매매와 전세 동반 폭락이 지속되면 전세와 매매의 선순환이 아니라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전세제도에 대한 근본적 신뢰가 무너지면 한국의 임대시장은 붕괴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 "

-1.3대 대책이후 일부 지역에서 급매물 중심으로 팔리면서 집값 반등론도 나오고 있다.

" 반등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금리 안정이다. 전월세 전환율이 금리보다 낮은 지금 상황은 여전히 전세가의 하락 압력이 크다. 전세가 급락에 대한 리스크는 어느 정도 정리되어야 할 듯하다. 거래량 회복이 전제되어야 반등은 아니더라도 저점이 현실화될 수 있다. 정부의 규제완화는 문제인 정부 초기 수준이다. 다주택자 종부세의 경우, 3주택에 대해서는 여전히 규제가 남아있다. 정부가 강남3구와 용산을 규제지역으로 묶어 두고 있는데 시장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추가 해제해야 한다. 수요가 많은 지역에서 거래가 터져야 다른 지역에도 파급효과가 있다.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