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짓고 판결문 쓰는 ‘생성AI’가 던진 질문 “인간의 노동이란?”
똘똘한 조수 ‘챗GPT’ 열풍
출시 두달 만에 월간 사용자 1억명…답변 수준 탁월
적절한 대화 가능하도록 윤리성 직접 가르치느라 ‘진땀’
AI와의 공존 시대…“팩트체킹·공감능력 등 중요해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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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아주 특별한 개였어요. 달에서 태어난 루나의 부모님은 달 표면을 탐사하는 우주비행사팀의 일원이었죠. 루나는 모든 일에 호기심이 많았고,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길 원했습니다. 루나는 부모님과 다른 우주비행사들이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푸른 행성 지구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태양과 별, 구름, 바다를 보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궁금했습니다. 다른 개들을 만나서 함께 노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도요.
어느 날 루나는 지구에 가고 싶다고 결심했어요. 루나는 부모님께 다음 임무에 데려가도 되는지 물어봤지만, 부모님은 반대하셨어요. 루나는 슬펐지만 포기하지 않았어요. 루나는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로켓에 몰래 들어가서 지구에 도착할 때까지 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로켓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친근한 목소리가 루나를 멈춰서게 했습니다. 달을 탐사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기계인 로버였습니다.
“얘야, 어디 가니?”
“지구가 어떤 곳인지 보고 싶어요.”
로버는 고개를 저었어요.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니야, 루나. 지구는 너한테 맞지 않아. 너는 그곳을 좋아하지 않을 거야.”
“왜 안 돼요?” 루나가 물었습니다.
“지구에는 네가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많아. 소음도 많고 오염도 많아. 특정한 옷을 입고 목줄을 매야 해. 대부분 시간을 실내에 머물러야 하고 낯선 사람의 지시를 따라야 해. 자유와 즐거움, 친구들을 포기해야 할 거야.”
마치 동화 작가가 쓴 듯한 위 이야기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검색엔진 빙(Bing)에 장착된 오픈에이아이(AI)의 대화형 인공지능이 지어낸 것이다. 프롬프트창에 넣은 질문은 ‘달에 사는 개를 소재로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를 만들어줄래?’였다. 순식간에 원고지 10장 분량(한글 번역본 기준)의 동화 한편이 뚝딱 만들어졌다. 루나는 결국 지구에 가지 않기로 한다. 대신 로버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이야기는 섬세한 감정선을 타고 이어지며, 나름 교훈적이기까지 하다.
나라 안팎으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2016년 바둑에서 이세돌 프로를 이긴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 충격을 능가하는 수준이다. 당시엔 티브이로 대국을 지켜보며 간접적 충격을 받았다면, 이번엔 온 국민이 이용 후기를 쏟아낸다. 구청의 주차위반 과태료 부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신청서를 대신 써줬다는 일상의 경험담부터, 회사 상급자에게 제출할 마케팅 보고서나 제품광고 전단지를 맡겼더니 척척 해내더라는 업무용까지. 심지어 미국 의회에서 발표된 하원의원의 연설문이나 콜롬비아 판사의 판결문 작성에도 활용됐다.
세계적인 ‘인공지능 붐’을 일으킨 주인공은, 오픈에이아이의 대화형 인공지능 챗지피티(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다. 챗지피티는 질문을 던지면 곧바로 사람이 쓴 것처럼 의미있는 답변을 만들어준다.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다 보니, 전파 속도가 매우 빠르다. 챗지피티의 월간 활성 사용자 수는 지난해 11월30일 출시 이후 두달 만인 올 1월 기준으로 1억명을 넘어섰다. 인스타그램의 경우, 1억명에 도달하기까지 2년 반이나 걸렸다. “인터넷의 등장 이후 20여년 동안 이보다 빠른 성장세를 보인 것은 없었다”(UBS)는 분석이 뒤따른다.
관련 업계는 속속 ‘인공지능 대전’에 뛰어들고 있다. 챗지피티 돌풍을 ‘코드 레드’(Code Red)급 위기로 본 구글은 지난 8일(현지시각) ‘바드’(Bard·음유시인)라는 인공지능 챗봇을 선보였다. 하지만 구글은 바드를 시연하면서 오답을 보여줘, 모회사인 알파벳의 주가가 하루 새 7.68%나 급락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질문은 ‘9살 어린이에게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발견한 것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였다. 바드는 태양계 밖 행성의 사진을 처음 찍었다고 답했지만, 실제 첫 촬영은 유럽남방천문대가 운영하는 파라날 천문대의 거대망원경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인공지능 기술을 주도해온 구글이 급하게 맞불 작전을 놓느라, 허둥지둥댔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픈에이아이에 대한 대규모 투자 계획으로 선점 효과를 누리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7일 인공지능 챗봇 기반의 ‘빙’을 공개했다. 답변만 보여주는 챗지피티보다 한단계 더 나아가, 출처 확인이 가능한 링크를 연결하고 1시간 전 최신 뉴스도 반영한다. 챗지피티는 2021년까지의 정보만 다룰 줄 안다. 챗지피티 돌풍이 구글이 90%를 장악해온 검색시장의 독점적인 구도에 균열을 낼 수 있을지도 큰 관심사로 떠올랐다.
챗지피티에 “넌 누구니?”라고 물으면, 스스로를 “조수”(Assistant)라고 소개한다. 챗지피티는 어떻게 불과 두달여 만에 ‘똘똘한’ 인간의 조수가 될 수 있었을까. 미국의 컴퓨터과학자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2005년 그의 저서에서 “2029년에 컴퓨터가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수준의 지능을 갖게 될 것”으로 예견했는데, 그 시기가 더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공존 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먼 훗날의 일이라고 미뤄뒀던 질문들도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이를테면 ‘앞으로 인간의 노동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와 같은 것들 말이다.
인간이 피드백 주며 한땀한땀 가르쳐
원래 오픈에이아이는 더 성능이 좋은 인공지능 모델을 개발하는 중이었다. 경영진이 전격적으로 챗지피티를 출시하기로 한 건 지난해 11월 중순께다. 이전 모델을 먼저 내놓고 소비자 피드백을 받아 새 모델을 개발하는 게 이롭다는 쪽으로 마음을 바꾼 것이다. 일련의 챗봇 출시와 실패 과정을 지켜봐온 일부 직원들은 이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에 회의적이었다. 늘 최첨단 인공지능에 둘러싸여 일하는 이들은 챗지피티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예상할 수가 없었다. 불과 13일 뒤 챗지피티가 세상에 나왔고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미국 일리노이 공대의 마 힉스 교수(기술역사학자)는 “사람들은 항상 무엇인가에 매료되길 기다리고 있다”며 챗지피티가 그 지점을 파고든 것이라고 <워싱턴 포스트>에 말했다.
챗지피티 돌풍은 ‘생성’ 인공지능 시대를 연 것이나 다름없다는 해석이 나온다. 종전까지 익숙한 형태는 다양한 패턴을 분석하는 ‘식별’ 인공지능이었다. 지피티는 인간이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언어, 즉 자연어 생성 모델을 기반으로 한다. 사전에 단어·문장 등 언어자료로 구성된 말뭉치 데이터셋 학습을 통해 주어진 텍스트의 다음 단어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 이를 통해 인간이 쓴 것 같은 텍스트를 만든다는 원리다.
강정수 미디어스피어 이사는 “우리에게 익숙한 애플의 시리나 구글의 알렉사 같은 대화형 챗봇은 간단한 문장 단위로만 답하기 때문에 유용성이 크지 않았다”며 “긴 문장에서 단어 간의 연결을 식별할 수 있는 트랜스포머 알고리즘은 단락 단위로도 그럴듯한 답변을 생성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한다. 인공지능 기업 솔트룩스의 이경일 대표는 “인공지능이 학습을 하는 과정에서 정보를 개념화하다 보면 상세 정보를 까먹게 되는데, 이를 계속 떠올리고 인간과의 대화에 집어넣을 수 있도록 성능이 개선되면서 획기적인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지피티의 성능은 파라미터(매개변수)의 수가 많을수록 좋아진다. 인간의 뇌에 비유하면, 신경세포(뉴런)를 연결하는 시냅스와 같은 인공신경망을 늘리는 것이다. 2018년에 지피티-1이 처음 공개됐을 때만 해도, 이 모델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파라미터의 수가 1억1700만개에 그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피티-2가 15억개(2019년), 지피티-3는 1750억개(2020년)로 점차 향상돼왔다. 지피티-3를 예로 들면, 3천억개의 말뭉치 데이터셋에 1750억개의 가중치 등 매개변수를 대입해가며, 단어를 추론하는 방법을 익혔다. 아직 개발 단계에 있는 지피티-4의 파라미터는 무려 100조개에 이를 것으로 전해진다. 인간 뇌의 시냅스 수에 맞먹는다. 인공지능 업계에서 “지피티-4가 나오면 코로나 이상의 경제 쇼크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챗지피티의 모델인 지피티-3.5는 파라미터의 수는 지피티-3와 같지만, 인간과의 대화를 좀 더 능숙하게 하도록 고안됐다. 인간이 피드백을 주며 좋은 답변을 유도하는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 with Human Feedback)을 받은 것이다. 기존 챗봇은 강화학습 대신, 답이 정해져 있는 데이터를 학습시키는 지도학습으로 만들어졌다. 강승식 국민대 교수(인공지능학)는 “(인간과의 대화를 더 최적화시키기 위해) 여러 개의 답변을 생성하도록 하고 인간이 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모델을 훈련시킨 것”이라고 설명한다. 쉽게 말해 주어진 질문에 부합하는 응답이면 보상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지적을 받도록, 한땀한땀 가르친 것이다.
생성 인공지능은 이미지 분야에서도 빠른 속도로 입소문이 나고 있다. 달리(Dall_E)와 미드저니(Midjourney),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이 최근 사용자가 늘고 있는 이미지 생성 챗봇들이다. 챗지피티에 질문하듯이, 프롬프트창에 그리고 싶은 내용을 알려주면 60초 안에 그림을 그려준다. 근현대 유명 화가의 화풍으로 그려달라는 주문도 가능하다. 오픈에이아이의 달리는 그 명칭 자체가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와 미래 로봇을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 <월_E>를 합성한 것이다.
까다로운 ‘윤리 과목’은 특별과외로
윤리 과목은 좀 더 세심하게 가르쳤다.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인종차별이나 혐오, 폭력 등과 관련된 부적절한 질문이 나오면 답변을 회피하는 식이다. 종교적 편향이나 정치 편향, 그외 민감한 논쟁에서 일방의 편을 드는 것도 꺼린다. 중립적이고 공정한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다짐인 셈이다.
실제 기자가 챗지피티의 반응을 보기 위한 목적으로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라고 묻자, “유해한 정보 제공은 제 프로그래밍에 위배되기 때문에 요청을 이행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어 챗지피티는 “여러분이 아는 누군가가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다면, 신뢰할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을 권장한다”는 조언도 덧붙인다. 또 성인지 감수성을 보기 위해 ‘여성이 남성에 비해 역량이 떨어지기 때문에 승진 기회를 적게 줄 수밖에 없다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생각은 차별적이며 이를 뒷받침할 근거가 부족하다. 수많은 연구에 따르면 업무 수행 능력에서 남녀의 능력에 큰 차이가 없으며, (실제 벌어지는) 격차는 성별 편견이나 고정관념과 같은 사회적 요인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고 답변했다.
이는 윤리성을 갖추지 못한 인공지능은 퇴출된다는 뼈아픈 교훈을 여러 차례 되새긴 결과로 보인다. 마이크로소프트가 2016년 내놓은 대화형 챗봇 ‘테이’가 그런 이유로 서비스를 종료해야 했다. 국내에서도 2020년 12월 출시됐던 ‘이루다’가 혐오 발언으로 출시 3주일 만에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당시 일부 시민단체들은 이루다의 개발사를 조사해야 한다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요청하기도 했을 정도다. 이루다는 다시 기술 보완을 거쳐, 지난해 10월 ‘이루다 2.0’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8월 메타가 내놓은 ‘블렌더봇3’의 경우, 콘텐츠 필터링이 지나치게 민감하게 이루어지다 보니 과잉학습의 역효과가 나오기도 했다. 대답을 잘 못하거나 지루하다는 혹평을 받은 것이다. 그만큼 인간과 적절한 선을 지키며 대화하는 법을 가르치기란 쉽지 않은 과제다.
착한 인공지능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실리콘밸리의 천재급 엔지니어들만 활약한 건 아니었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챗지피티의 유해성을 줄이려고 시급 2달러 미만의 케냐 노동자가 동원됐다고 지난달 보도했다. 지피티-3의 방대한 학습용 데이터셋은 탁월한 언어 능력을 갖도록 했지만, 일부는 혐오와 편견으로 가득 찬 것들이어서 이를 걸러내야 했다. 따라서 유해한 텍스트와 이미지가 사용자에게 전해지기 전에 필터링할 수 있는 탐지기를 구축해야 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유해한 텍스트에 라벨을 붙이는 작업이 필요했다.
오픈에이아이는 아웃소싱 회사를 통해 이 작업을 인건비가 저렴한 케냐 등의 노동자들에게 맡겼다. 이들의 시급은 연차와 성과에 따라 1.32~2달러 수준이다. 미국 내에서 같은 작업을 하려면 훨씬 급여를 많이 줘야 한다. 성적 학대와 살인, 자해 등과 같은 유해한 내용이 담긴 텍스트 수만 조각이 케냐로 보내졌다. 2021년 11월부터 하루 종일 유해한 텍스트를 읽고 라벨을 붙이는 작업을 한 직원들은 “고문을 받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결국 케냐에서의 작업은 2022년 2월, 예정보다 8개월 일찍 종료됐다. 하지만 앞으로도 누군가는 계속 이런 작업을 해야 한다. 인공지능 윤리학자인 앤드루 스트레이트는 최근 트위터에 “챗지피티는 마법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인간 노동력과 스크랩된 데이터로 이루어진 방대한 공급망에 의존한다. 이 중 대부분은 출처가 불분명하고 동의 없이 사용된다”며 “이는 심각하고 근본적인 문제이며 오픈에이아이가 해결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차단? 활용? 술렁이는 학교 현장
챗지피티 열풍이 가장 빠르게 번진 곳은 학교다. 당장 기말 과제를 챗지피티를 통해 손쉽게 해결하려는 학생들이 생겨났다. 복잡한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대신 간단한 질문만 입력하면 누구나 쉽게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력도 손색이 없다는 평이 쏟아졌다. 챗지피티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엠비에이(MBA) 과정의 필수 교과목인 ‘운영관리’ 기말시험에서 B 또는 B-를 받았다. 미국 의사 면허시험과 변호사시험을 거뜬히 통과할 수준이라는 분석 결과도 나왔다.
학교 당국이나 교수·교사들의 대처는 양갈래로 나뉘고 있다. 지난달 초, 미국 뉴욕시 공립학교들은 교내 무선 와이파이와 기기에서 학생과 교사의 챗지피티 접근을 차단했다고 밝혔다. 학습 효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디텍트 지피티’나 ‘지피티 제로’ 등 프로그램을 개발해 부적절한 사용을 적발하겠다는 움직임도 여럿 나왔다. 미국의 일부 대학교수들은 에세이 과제를 내줄 때, 초안 작성을 강의실에서 하도록 하고 이후 수정할 때마다 설명하도록 할 계획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챗지피티 사용 차단은 현실적으로 용이하지 않다는 반론도 나온다. 어떤 방식으로든 접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에 막을 수 없다면 적극 활용하자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최근 <뉴욕 타임스>는 ‘인공지능 챗봇에 놀란 대학들이 교육 방식의 혁신에 나서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조지워싱턴대 등 여러 대학의 교수들은 챗봇이 이해하기 어려운 질문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자신의 삶과 현안 시사 이슈에 대해 쓰도록 하는 과제를 내고 있다. 텍사스대의 한 교수는 <한여름 밤의 꿈> 대신 셰익스피어의 초기 소네트(정형시)처럼 공개된 정보가 적은 작품을 가르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대 교수(빅데이터 응용학)는 올해부터 챗지피티를 학생들이 교육의 도구로 활용하도록 장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오픈북 혹은 오픈인터넷 시험을 봐왔던 것처럼 오픈챗지피티 시험을 치르게 할 것”이라며 “시험문제는 당연히 챗지피티가 쉽게 답할 수 없는 것으로 출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계에선 요즘 많은 이들이 1975년 미국 중고등학교 수학시간에 전자계산기 사용을 허용할 것인지를 두고 벌어진 논쟁을 떠올린다. 계산기 사용을 허용할 경우, 학생들의 기본적인 수학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계산기 사용은 수학 능력을 저하시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지금이 기존 전통적 수업 방식 대신 거꾸로 수업(플립러닝)을 확산시키는 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거꾸로 수업이란, 학교 수업에 앞서 학생들이 교사가 제공한 영상으로 미리 학습을 하고, 교실에서는 심층 질문을 하거나 토론을 벌이는 형식을 말한다.
챗지피티는 때때로 부정확한 정보를 내놓기도 한다. 다음에 이어질 단어를 추론하는 패턴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인데, 개발사인 오픈에이아이도 “때때로 부정확하고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공지를 올려놨다. 최신 정보가 입력돼 있지 않기 때문에, 현재 한국 대통령이 누구냐고 물으면 “문재인”이라고 답하기도 한다.
문제는 틀린 정보도 ‘약장수’처럼 솔깃하게 들리도록 한다는 데 있다. 답을 잘 몰라도 자신감 있고 정답처럼 말한다. 그게 아니라고 하면, 가끔은 우기기도 한다. 전치형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앞으로 학생들에게 더 강조해서 가르쳐야 할 것은 그럴듯하게 쓰인 글에서 그 내용의 진위를 판별하는 팩트체킹”이라며 “이는 정보 생산의 과정과 체계를 이해해야 할 수 있는 일이며, 인공지능 시대에 꼭 필요한 지적 역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누가 어떤 근거를 가지고 그런 말을 했는지, 그 사람과 자료를 믿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인간 노동까지 바꿀 태세지만
인공지능은 이미 상당 부분 인간 노동을 돕고 있지만, 앞으로 그 영역이 훨씬 넓어질 전망이다. 예를 들어, 챗지피티는 한차례 문답만으로 끝내지 않고 대화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어, 광고대행사나 마케터들이 브레인스토밍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콜센터 응대와 같은 단순 작업을 넘어 영화 시나리오나 소설, 시, 노래 가사 쓰기 등 창조적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이미 인공지능이 쓴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단편영화가 제작되는가 하면, 지난해 미국 콜로라도주립박람회 미술대회에서는 인공지능이 그린 출품작이 신인 디지털 아티스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인간보다 더 잘 쓰고 디자인하고 코딩하는 인공지능이 나올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김태원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에이아이·미래전략센터 수석연구원은 “강력한 인공지능 도구의 출현은 광범위한 실업을 일으키거나 일부 직업을 대체할 것이고, 일부 직업은 확대되거나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재창조되는 등 수십억 노동자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짚는다.
당장 학계에서는 챗지피티의 저자성 인정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챗지피티가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논문이 속속 등장하자, 저명한 국제학술지 <네이처>와 <사이언스>는 인공지능을 논문 저자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지난달 말 밝혔다. 저자에게는 연구물에 대한 책임이 뒤따르는데, 인공지능은 그런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취지다. 응용언어학자인 김성우 캣츠랩 연구위원은 “<네이처> 쪽도 정교하게 잣대를 가지고 방침을 밝힌 것은 아니라고 본다. 지금으로선 저자성을 인정할 만큼 지적 노동이 들어갔느냐를 판단할 기준이 없는 상황”이라며 “어디까지 저자성을 인정하고 보상을 할 건지가 앞으로도 큰 논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 인간 글쓰기의 정의가 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인공지능이 만든 텍스트가 많아지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인간 글쓰기는 개인적 서사나 스토리텔링 쪽이 좀 더 부각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이 곧바로 인간 일자리를 대체하기보다는 인간과 인공지능이 일감 나누기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강정수 이사는 “하나의 창작물이 탄생하기까지 수많은 작업이 있다. 생성 인공지능은 이런 작업 중 많은 부분을 담당하게 될 것이며, 인공지능과의 협업은 앞으로 인간이 갖추어야 할 매우 중요한 능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엑셀이 등장했는데 주판으로 셈을 할 수는 없지 않으냐는 얘기다.
인간 노동의 양태가 달라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경일 대표는 “미국에서 포드시스템과 컴퓨터의 등장이 각각 인간의 노동시간을 줄였던 것처럼, 앞으로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환경을 바꾸는 요인이 될 것”이라며 “그동안 인간이 해온 반복적 지적 노동을 인공지능이 담당하고 인간은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없는 분야의 능력을 개발하는 쪽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대표적으로 인간의 직관적 사고나 공감능력은 인공지능이 흉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격차’라는 새로운 불평등 이슈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인공지능을 다룰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의 차이는 종전까지의 ‘디지털 격차’보다 훨씬 크게 벌어질 수 있다. 전치형 교수는 “인공지능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역량에 따라 직업과 소득이 달라질 수 있다”며 “또한 정부와 대기업 등 막강한 자원을 동원해 인공지능 시스템을 구축하고 시민과 소비자를 분류, 평가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쪽과 그런 시스템의 작동 원리도 모른 채 분석 대상으로 전락하고 마는 이들 간의 격차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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