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꿈, 기억의 혼재 ‘기묘한 파국’[책과 삶]
빛과 영원의 시계방
김희선 지음 | 허블 | 316쪽 | 1만5000원
터무니없는 내용인데 문체와 전개는 더없이 진지하다. 작가를 믿고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낯선 세상에 도착해 있다. 가끔 따뜻한 울림을 전하기도 하지만, 종종 파국적이다. 개인의 파국을 넘어 인류, 지구의 파국이다.
<빛과 영원의 시계방>은 SF 작가 김희선의 단편집이다. 김희선은 2011년 등단해 단편집 두 권, 장편 세 권을 내놨다. 강원도 원주에서 소설가이자 약사로 살아간다. <저주토끼>의 정보라는 이 책을 두고 “김희선을 흉내 낼까 봐 매우 조심하며 읽었다”고 말했다는데, 읽고 나면 동료 작가에 대한 공치사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꿈의 귀환’은 미국항공우주국(나사)이 꿈을 기록하는 장치 개발에 착수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미국은 세계 최초의 우주비행사인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남긴 일기장을 입수했다. 이 일기장에는 가가린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잠들어 있었다는 내용이 담겼다. 소련의 학자는 가가린의 꿈을 분석하기 위해 대규모 연구를 수행했다. 소련과 나사의 연구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흐지부지됐다. 2025년 이론물리학자 앨런 디멘트는 가가린의 꿈 연구가 중단된 이유를 두고 기이한 주장을 펼쳤다. 이 주장을 접한 사람은 누구나 섬뜩한 침묵에 빠질 수밖에 없다.
<빛과 영원의 시계방>에는 시간여행, 꿈, 전생, 기억 등에 얽힌 기묘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전생에 신라의 승려였음을 깨달은 스웨덴 학자, 세계를 리셋할 수 있는 스마트폰, <공기를 이용하여 우편물과 화물을 빠르고 확실하게 전달하는 방법>이라는 책을 입수한 뒤 관련 연구에 몰두하는 시계방 주인 등이 등장한다.
이런 엉뚱한 이야기의 배경에는 1980년 5월의 민주화운동, 냉전시대의 핵전쟁 공포 등이 깔려 있다. SF에 판타지, 호러 등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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