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책과 지성] "독자들이여 내 책을 읽을 시간에 제 갈길을 가라"
로트레아몽 (1846~1870)
악마적인 시인 로트레아몽은 스물네 살에 세상을 떠났다. 그와 관련된 자료를 찾으면 살바도르 달리가 그려준 스케치가 검색된다. 미소년의 얼굴이다.
하지만 그의 시는 얼굴과는 딴판이다.
"독자여, 음산하고 독으로 가득 찬 이 작품의 황폐한 늪 가운데서 방향을 잃지 말고 가파르고 황량한 자기의 길을 찾아내기 바란다."
세상에, 자기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방향을 잃지 말고 제 길을 찾아가라는 훈계를 한다니.
그의 대표작 '말도로르의 노래'에는 악마적인 문장이 가득하다.
"인간 족속은 무서운 고통에 시달려 전멸할 것이다. 굉장한 광경이리라! 나는 천사의 날개를 하고서 그것을 관망할 것이다."
인간들을 전멸시키고 자기는 천사가 되어 그 광경을 관망하겠다니. 이 미소년은 도대체 어떤 지향 때문에 이런 시를 썼을까.
'말도로르의 노래'는 말도로르라는 인물의 입을 빌려 전개되는 매우 긴 산문시다. 난해하지만 손에 잡으면 끝까지 읽게 되는 마력이 있다. 수렁에 빠지듯 그의 글 속에서 헤매게 된다. 의외로 그의 글이 너무나 문학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시 전편에 참신한 문학적 장치들을 절묘하게 숨겨 놓았다. 다음 문장을 보자.
"그를 늙어버리게 한 흔적. 그건 명예로운 것인가 치욕스러운 것인가? 그의 주름살은 존경심을 가지고 쳐다보아야 할 것인가? 나는 그걸 모르겠다. 그리고 그걸 알기가 두렵다. 오 참으로 음울하도다! 자네는 어디서 왔는가?"
인간 존재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그는 악동 같기도 하고 20대에 이미 도를 깨친 고승 같기도 하다. 그의 문장은 우리를 불편하게 함으로써 무엇인가를 깨닫게 한다.
로트레아몽의 이력은 간단하게만 남아 있다. 본명이 이지도르 뒤카스인 로트레아몽은 1846년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프랑스 영사관 일등서기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14세 때 중등교육을 받기 위해 프랑스로 온 그는 대학 입학을 포기하고 문학에 전념해 1868년 '말도로르의 노래' 제1집을 익명으로 출간한다. 이후 5개 시집을 더 발표했으나 모두 발매 중지를 당한다. 그리고 얼마 후 1870년 파리의 한 호텔에서 객사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로트레아몽은 자신의 난폭한 시에 대해 어떤 설명도 없이 죽었다. 그의 난폭한 시에 가치를 부여한 것은 훗날에 나타난 초현실주의자들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20세기 초 파리의 초현실주의자들은 로트레아몽을 근대시의 화신으로 격상시켜 랭보와 비슷한 반열에 올려놓는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초현실주의는 이성이나 합리성보다는 비합리적이고 무의식적인 초현실의 세계를 지지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로트레아몽은 신성일 수밖에 없었다.
'말도로르의 노래'를 읽으면 흡사 자라투스트라의 악마 버전을 보는 듯하다. 그는 자멸로써 문학을 완성한 사람이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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