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투자 ‘골든 타임’에 재판만 89일째… 이재용 족쇄는 언제 풀리나

황민규 기자 2023. 2. 17.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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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법원 출석에 해외 출장, 현장경영 등 차질
“해외서는 드문 사례… 정상적인 경영 활동 어렵다”
급변하는 세계 반도체 시장, 경쟁사는 공격적 투자 행보
“삼성, ‘책임경영’ 하에 과감한 투자·실행력 필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속행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연합뉴스

세계 각국 정부와 반도체 기업들이 미래 먹거리 마련을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총수의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사결정의 핵심인 이재용 회장이 사실상 1~2주꼴로 법원에 출석하고 있는 상황이라 해외 출장이나 현장경영에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 9일 89차 공판을 치른 이재용 회장은 3월에 두 차례, 4월에도 공판기일이 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총 89차례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이 회장은 거의 대부분 법정에 출석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평택캠퍼스 방문과 같은 일정으로 출석을 못한 2~3차례를 제외하면 사실상 매주, 격주로 법원을 찾고 있는 셈이다.

◇4대 그룹 총수 중 JY만 미등기임원… ”책임경영 어려워”

지난해 삼성전자 신임 회장에 오른 이 회장의 첫 일정은 공교롭게도 법원 출석이었다. 그의 혐의는 자본시장법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부정거래·시세조종) 등이었다. 이후 매주 목요일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혐의 재판에, 3주 간격으로 금요일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1심만 1년 6개월째 진행 중인 재판이 대법원까지 올라갈 경우를 생각하면 최소 3~4년은 발목이 잡힐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재계에서는 지난 14일 삼성전자 이사회에서 이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 안건이 다뤄지지 않은 것도 사법 리스크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선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등기이사에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지만 사법 리스크에 대한 부담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현재 국내 4대 그룹 총수 중 유일하게 미등기임원인 상태다.

사법 리스크로 이 회장은 해외 출장을 갈 때도 법원이 휴정하는 기간에 맞춰 일정을 조정해 왔다. 일례로 지난해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경기도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찾았을 때 이 회장은 재판 일정 때문에 참석 여부가 뒤늦게 확정된 바 있다. 당시 법원은 전날 오후 늦게 재판 불출석을 허락했다.

반도체·바이오 등과 관련된 대형 인수합병(M&A) 추진 등 적극적인 경영을 하려면 등기이사로 올라설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TSMC, 인텔, 마이크론 등 글로벌 반도체 회사들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자유롭게 세계 각국을 순방하며 고객사, 파트너, 투자자들을 자유롭게 만나는 것과 달리 이 회장만 잦은 법원 출석으로 경영에 집중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명현 고려대 교수는 “해외에서는 명백한 형법상의 범죄가 아닌 이상 매주 이런 식의 재판이 진행되는 사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며 “변호사 대행 없이 총수가 직접 매주 법원을 드나드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월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릭소스 마리나 호텔에서 열린 한-UAE 비즈니스 포럼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기조연설을 듣고 있다./연합뉴스

◇반도체 대전환기, 경쟁사들은 투자 혈안… 삼성은 정체

삼성전자의 경쟁사들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정치권의 빠른 입법 진행으로 잇단 투자를 단행하며 진격하고 있다. 현재 인텔은 미국 오하이오주와 애리조나주, 뉴멕시코주에 모두 435억달러(약 56조원)의 반도체 공장 시설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는 최첨단 연구개발(R&D)센터를 비롯한 신규 생산공장에 340억달러(약 44조원)의 투자를 단행할 예정이다.

TSMC도 각국의 막대한 보조금을 받을 수 있고 양안 갈등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를 생산기지 확대로 줄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14일 TSMC 이사회는 미국 애리조나 공장의 자본금을 최대 35억달러(약 4조 5000억원) 증액하는 계획을 승인했다. 지난해 말 TSMC가 애리조나 공장에 대한 투자 규모를 당초 계획의 3배인 400억달러(약 50조9000억원)로 늘린 가운데 이번 증액 역시 이의 일환이다.

한편, 세계 반도체 시장은 자동차용 반도체를 비롯해 데이터센터, 고성능컴퓨팅(HPC), 사물인터넷(IoT) 등 수요가 첨단화·다변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챗GPT와 같은 거대 인공지능(AI) 기반의 언어모델이 AI용 반도체 수요를 촉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앞서 발표한 미국 테일러공장 이외에 별다른 투자 계획이나 인수합병(M&A) 프로젝트를 진행시키지 못하고 있다”며 “어느 때보다도 과감한 투자와 실행력이 필요한 시기”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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