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노인 무임승차 연구용역, ‘정부 책임’ 돌연 삭제
與 유경준 의원 “불리한 내용 삭제한 건 아닌지”
국토부 “진행 중인 연구…최종본 5월 제출”
오세훈 “지자체 엄청난 적자 타개점 찾아야”
[헤럴드경제=김진 기자] “특정한 이유가 있어서 내용을 바꾸고 있는 건지, 연구용역기간을 연장하면서까지 불리한 내용을 삭제하고 유리한 내용만 담고 있는 건 아닌지.”(유경준 국민의힘 의원)
“의도를 가지고 내용을 바꾸거나 삭제한 건 아닙니다. 계속 내용이 변동되고 있습니다.”(어명소 국토교통부 제2차관)
지난 1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 산회 직전 ‘노인 도시철도 무임승차’와 관련해 유 의원과 어 차관이 측이 주고받은 질답이다. 현장에서는 초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도시철도 무임승차제도의 개선방안을 다룬 정부의 연구용역보고서 내용이 정부의 ‘입맛대로’ 수정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 국토부에 제출된 중간보고서에서 중앙정부의 책임을 명시한 내용이 일부 삭제됐다는 이유에서다. 국토부는 “최종보고서가 아니다”는 입장이다.
17일 헤럴드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국토부가 2022년 1월 공고한 ‘도시철도 PSO제도 개선방안 마련 연구용역’(5억원 규모)은 대한교통학회를 낙찰자로 선정해 3월부터 착수됐다. 30여년 전 도입된 도시철도 무임승차제도를 진단하고 사회·경제적 변화에 맞게 개선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특히 무임승차 대상인 노인·장애인·국가유공자 중 만 65세 이상 노인층에 대한 혜택이 전체의 82%로 집중된 점에 주목했다.
연구용역은 애초 그해 11월 완료돼 결과물이 제출될 예정이었으나 10월 한 차례 연장 요청에 따라 6개월가량 기간이 늘어났다. 유 의원실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대한교통학회는 연장요청사유서에서 “국내외 사례 및 빅데이터 분석에 대한 추가 검토가 불가피한 부분이 있다”고 했다. 용역비용은 추가로 늘어나지 않았다.
유 의원실은 연구용역 내용이 연장 전후로 달라졌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학회는 2022년 8월, 2023년 2월 1건씩 중간보고서를 국토부에 제출했는데 중앙정부의 책임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들이 삭제됐다. 반면 지방정부의 재정 부담 해외 사례는 보강됐다.
유 의원실이 국토부로부터 제출받은 총 2건의 중간보고서를 비교하면 달라진 부분은 ▷관련법에 따른 중앙정부 권한 언급 ▷해외 사례 ▷해외 사례 시사점 등이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해외 사례 분석을 통한 시사점 페이지가 통째로 사라진 부분이다. 1차 보고서는 해당 페이지에서 “대체로 도시 대중교통 계획 및 운영을 담당하는 지방정부에서 공익서비스제도를 수립하고 재정을 부담한다”면서도 “중앙정부 요구로 시행되는 공익서비스는 중앙정부에서 재정을 부담 또는 보조한다”고 했다. 이는 제도가 시행되도록 한 ‘원인제공자’가 재정을 부담한다는 원칙인 셈이다. 현재 시행 중인 노인 무임승차제도가 1980년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실시됐고, 1984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 의해 100% 할인제가 됐다는 점에서 중앙정부의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이 담긴 시사점은 2차 보고서에서 삭제됐다.
또 1차 보고서는 도시철도 무임승차제도가 시행된 배경을 설명하면서 ‘중앙정부 의결 및 복지관련법 개정으로 시행’됐다고 명시했는데 2차 보고서에서는 ‘복지 관련법에 근거에 시행’됐다고 중앙정부 언급이 삭제됐다. 무임승차와 같은 철도산업 공익서비스(PSO)가 시행되는 법적 근거와 관련해 1차 보고서는 ‘철도서비스 운임 결정은 도시철도법·철도산업발전기본법에 의해 지자체장·국토부 장관이 결정’한다고 했는데 2차 보고서에서는 ‘철도산업발전기본법’ ‘국토부 장관’이 사라졌다. 이 밖에 해외 사례 부분에서는 7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버스 및 지하철 할인을 차등 적용하고, 지방정부가 비용을 부담하는 일본 도쿄도 사례가 2차 보고서에 추가됐다.
유 의원실에 따르면 해당 연구에 참여한 관계자 일부도 중간보고서 내용 변경 사실을 알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최종 보고서는 오는 5월 국토부에 제출될 예정이다.
지적과 관련해 국토부 관계자는 “최종본이 아니다. 현재 진행 중인 연구를 편집·수정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라며 “시사점은 각 해외 사례에 녹이고 있고,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내용도 담겼다”고 설명했다. PSO 법적 근거와 관련해 철도산업발전기본법 및 국토부 장관 언급이 사라진 건 도시철도 무임승차 위주로 보고서를 수정하며 철도 무임승차제도 법령을 제외한 것으로 보인다.
노인 무임승차제도는 1980년 국무회의에서 경로우대제를 의결하며 70세 이상 노인에 한해 운임의 50%를 할인하며 도입됐다. 1982년 노인복지법 및 시행령에 따라 65세 이상 노인에 대해 50% 할인하면서 대상이 한 차례 확대됐고, 1984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노인복지법 시행령이 개정되며 100% 할인이 시행됐다.
그러나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고령화가 제도 존속 논란으로 이어졌다. 100% 할인이 시행된 1984년 당시 서울의 65세 이상 인구는 3.8%였으나 현재는 17.4%에 달한다. 평균 수명은 68.3세에서 83.6세로 늘었다. 통계청은 2025년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보고있다.
이에 서울 등 지자체를 중심으로 제도 개선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논의는 서울시와 대구시가 주도하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최근 노인 무임승차 대상 연령을 ‘70세 이상’으로 상향한다고 예고했다. 해마다 1조원의 적자를 내는 서울교통공사를 지원하는 서울시도 요금 인상과 더불어 노인 무임승차제도 개선을 고심 중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PSO 예산을 확보해 달라는 지자체의 요구를 거부했다.
학계에서는 현행법상 중앙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장호 한국교통대 교수는 통화에서 “100% 감면을 명시한 노인복지법 시행령은 정부의 책임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봤다. 이어 “제도 도입 이후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면서 도시철도 운영을 놓고 혼선이 생겼다”며 “도시철도 운영은 지방사무가 됐는데도 여전히 해당 법령이 중앙부처의 권한인 노인복지법 안에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날 국회에서는 대한노인회 주관으로 무임승차 관련 토론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기자들과 만나 “(정부에서는) 지자체의 고유 사무라는 논리 펴고 있다”며 “지원하려고 하면 이유를 10가지도 찾을 수 있고, 지원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만큼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원리 원칙의 문제라기보다 지자체가 안고 있는 엄청난 액수의 적자를 어떻게 타개할지 방법을 찾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soho090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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