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김정은은 왜 딸 주애를 등장시켰나
어떤 일이 갑자기 벌어졌을 때 사건이 일어난 맥락을 처음부터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급한 일을 처리하며 시간이 흘러가다 보면 사건의 전체적인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북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이 예상하지 않은 행동을 했을 때 처음에는 어떤 의도에서 비롯된 것인지 파악하기 어렵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북한의 의도가 서서히 파악되게 됩니다.
김정은 총비서의 딸 주애가 등장한 것도 그렇습니다. 지난해 11월 18일 ICBM 발사 현장에 주애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김정은이 어떤 맥락에서 딸을 공개했는지 추측이 분분했습니다.
그런데, 김주애가 성인 여성처럼 단장하고 본격적인 공개 활동에 나서면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지난 8일 인민군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을 전후해 드러난 현상들은 김정은이 왜 10살 남짓한 주애를 공개석상에 등장시켰는지 짐작하게 했습니다.
김정은, '다음 권력은 자녀에게' 강조
열병식장 귀빈석에 자리 잡은 주애는 행사 도중 주석단 앞자리에까지 나왔고, 북한군 기병대 행진에서는 김정은의 백마에 이어 김주애의 백마까지 등장했습니다. 북한은 또 김주애의 모습을 담은 기념우표까지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이 의도적으로 김주애를 부각하고 있는 양상인데, 이번 열병식에서 북한군이 외친 구호를 눈여겨볼 만합니다. 북한 군인들은 열병식장에서 "김정은 결사옹위, 백두혈통 결사보위"를 반복적으로 외쳤습니다. '김정은 결사옹위'는 북한이 계속하던 구호지만, 백두혈통 즉 김정은의 가족을 결사 보위하겠다는 구호가 이번 열병식에서 강조된 것이 특이합니다.
부상하는 김주애, 밀려난 김여정
지금까지 북한의 백두혈통 가운데 김정은 다음으로 주목받았던 김여정이 여기에서 빠져있다는 점입니다. 김여정은 김정은의 여동생이라는 특수관계를 바탕으로 전반적인 국정을 보좌하며 사실상의 북한 2인자로 자리 잡아 왔습니다. 국내 학자들 가운데는 북한을 '김정은 남매정권'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여정은 김주애가 주인공으로 대접받는 동안 외곽으로 밀려나 있었습니다. 열병식 전날 연회에서 외곽에 자리 잡은 모습이 포착됐고, 열병식 당일에는 김정은 부부와 주애가 열병식장에 입장할 때 밀집해 있는 군인들 뒤편으로 대열과 떨어져 홀로 서 있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김정은의 딸 주애가 레드카펫을 밟고 주석단에 오르며 주인공 대접을 받는 동안, 김여정은 주변으로 밀려나 있었던 것입니다.
김주애가 부상하는 시점에 주변으로 밀려난 김여정, 북한군이 김정은 가족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열병식장에서 전면에 서지 못한 김여정, 이것이 바로 김주애의 등장을 통해 김정은이 내보이려 했던 정치적 메시지입니다.
최진욱, "리설주 영향력 분명히 있었을 것"
최진욱 원장은 SBS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의 다음 권력이 김여정에게 간다면, 김정은의 자식들이 온전하기가 쉽지 않다"며, "김여정의 권력이 계속 강해지면 리설주가 가장 불안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고, (이번 일에) 리설주의 영향력이 분명히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최진욱 원장은 또 "북한에서 김여정을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이 김정은 말고는 없을 정도"로 김여정의 권력이 너무 커진 것이 김정은이 김여정 견제에 나선 이유가 됐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그렇다면, 김주애는 김정은의 후계자일까요?
열병식 전후 과정에서 김주애가 후계자급의 대우를 받았지만 김주애를 후계자로 보기는 아직 어렵습니다. 지난 글('후계자설'까지 나오는 김정은 딸 주애... 김정남 때 살펴보면)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제 10살 남짓한 아이를 벌써 후계자로 정했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고, 이번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김정은이 주애를 부각한 주요한 이유는 김여정 견제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 https://premium.sbs.co.kr/article/aeGOOk4uk9 ]
김정은이 이번 열병식 과정에서 4대 세습의 의지를 확실히 한 만큼, 김정은의 후계자는 자녀 가운데 한 명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김정은의 자녀는 2017년 국정원이 밝힌 정보를 근거로, 2010년생 첫째 아들과 2013년 초를 전후해 태어난 둘째 주애, 2017년 2월생으로 성별이 파악되지 않은 셋째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지난 15일 이에 대해 "김주애 외에는 확인된 바 없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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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news.sbs.co.kr/d/?id=N1007083717 ]
안정식 북한전문기자cs7922@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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