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미술품 물납제…작품 감정이 과학기술과 만나면[스테파니]

김선미 기자 2023. 2. 17. 10:0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스테파니 독자 여러분. 동아일보에서 미래&스타트업팀 데스크를 맡고 있는 김선미 기자입니다. 스테파니가 무슨 뜻인지 아시죠? ‘스’타트업과 ‘테’크놀로지를 ‘파’헤쳐보‘니’의 준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테크놀로지 트렌드를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예술과 과학이 융합되는 시대에 미술품 감정에 적용되는 요즘 과학 기술입니다.

미술품 감정은 올해 예술계의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입니다. 올해 1월1일부터 상속세 납부세액이 2000만 원이 넘는 경우 문화재와 미술품으로 물납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돈 대신 세금으로 내는 예술품이 위작(僞作)이면 안 되겠죠.

이런 상황에서 한국화랑협회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14일 서울 성북구 KIST 본원에서 ‘ART & TECH, 연결과 확장’이라는 세미나를 개최해 다녀왔습니다. 국내 미술시장과 첨단 과학을 주도하는 두 단체는 지난해 4월 업무협약을 맺고 예술과 과학의 융합을 논의해왔는데요. 이날의 세미나를 스테파니 독자 분들에게 지상 중계해 드립니다.

프랑스 뤼미에르 테크놀로지 연구소와 물리학자 파스칼 코테가 ‘모나리자’ 그림을 다중 스펙트럼으로 분석한 결과 나타난 여러 명의 얼굴 윤곽. 과학기술의 발전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밑그림을 세상에 드러나게 했다. 서민아 KIST 연구원 제공

세미나는 △1부: 디지털, 빅데이터, 인공지능 아트 △2부: 과학 분석 기술기반 미술품 감정으로 진행됐습니다. 1부에서는 KIST 연구진들이 빅데이터의 패턴화 및 인공지능(AI) 학습방법, 홀로그램 기술 동향, 뇌파 인터랙션, 삼차원 메타버스 등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집중 소개해 드리고 싶은 것은 2부입니다.

160여개 갤러리로 구성된 한국화랑협회는 국내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인 키아프(Kiaf)를 주최해 온 단체로 산하에 미술품감정위원회를 두고 1982년부터 감정활동을 해 왔습니다. 이날 황달성 한국화랑협회장은 설명했습니다. “지난해 세계적 아트페어인 프리즈(Frieze)가 서울에서 성황리에 열린 후 우리가 프리즈를 이길 수 있는 게 무엇일지,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AI, AR(증강현실)과 VR(가상현실), 챗봇, NFT(대체불가토큰) 등에 대해 집중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더욱이 올해부터 상속세 물납이 시행되면서 미술품 감정에 신뢰도를 높일 과학적 분석이 절실해졌습니다.”

미술품 감정은 그동안 전문가와 평론가 등이 해당 작가와 작품의 화법·재료·구도·서명 등을 안목과 경험으로 살피는 ‘안목 감정’이 전통적 방식이었는데요. 이날 발제에 나선 과학자들은 미술품 감정에 과학적 분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도 ‘과학 감정’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이었습니다. ‘미술품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접근’으로 이해해달라며 앞으로 관심과 논의를 통해 더 많은 과학적 데이터가 확보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테라헤르츠 전자기파

서민아 KIST 연구원의 발제 주제는 ‘분광학(分光學) 기반 미술품 감정 및 암호화’였습니다. 서 연구원은 ‘미술관에 간 물리학자’ ‘빛이 매혹이 될 때’ 등의 저서를 통해 물리학자의 눈과 화가의 마음으로 본 빛과 예술을 소개해왔는데요. 테라헤르츠파(투과성을 가진 방사성 전자파), 적외선, 형광, 엑스선 검사 등 다양한 파장의 광학 장비를 이용하는 분광법을 동원해 과학적으로 그림을 분석하면 위작을 가려낼 수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14일 서울 성북구 KIST 본원에서 열린 ‘ART & TECH: 연결과 확장’ 세미나에서 서민아 KIST 연구원이 분광학 기반 미술품 감정을 소개하고 있다. 한국화랑협회 제공

빛은 엑스선부터 자외선, 가시광선, 적외선, 테라헤르츠파 쪽으로 나아가며 파장이 점차 길어지는데요. 파장이 긴 빛은 그림 표면에서부터 더 깊이 그림 안으로 침투했다가 반사돼 그림 내부 정보를 알려줍니다. 테라헤르츠파는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아 오랫동안 미지의 영역으로 여겨지다가 1990년대부터 기술 개발이 시작됐습니다. 파장은 길지만 에너지가 매우 낮아 물질을 훼손하지 않고, 다양한 절연체 물질도 관통할 수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서 연구원은 말합니다. “적외선이나 테라헤르츠파로 작품을 관찰할 수 있는 카메라를 활용하면 유화의 물감 아래 젯소가 칠해진 부분, 심지어는 나무나 캔버스 표면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유럽의 대형 미술관과 과학 연구소들은 파장이 긴 빛으로 그림을 분석하는 연구를 이미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은 새로운 감정 기술이 나올 때마다 과학자들이 유명 작품에 직접 검사해 볼 수 있도록 합니다. 우리도 실험실이라는 제한적 환경을 벗어나야 외국처럼 이 분야의 상업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봅니다.”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

미술품의 과학적 분석은 엑스레이 분석법 등 비파괴 조성분석과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의 파괴분석으로 나뉩니다. 유병용 KIST 연구원은 이날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을 소개했습니다. 유기물에 들어있는 방사성 탄소(14C)의 양으로 유물과 화석의 연대를 측정하듯 미술품의 연대측정에도 방사성 탄소가 시계처럼 활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미술품의 안료, 철재, 캔버스, 종이, 나무 등에 있는 탄소를 통해 작품의 제작 연대를 파악하는 방법입니다. 다만 14C는 양이 매우 적어 가속기질량분석기(AMS)가 사용됩니다.

연대 측정을 통한 미술품 감정을 설명하고 있는 유병용 KIST 연구원.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국내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고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 위작 논란(2007년) 때에도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는 서울대 기초과학공동기기연구원 등에 의뢰해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과 물감성분 분석, 엑스레이 형광분석법 등을 진행했습니다. 2년 가까이 끌었던 진위공방은 2009년 서울중앙지법이 “빨래터가 진품인 것으로 추정되지만 위작 의혹을 제기한 미술잡지의 취재도 정당하다”며 일단락됐죠. 유 연구원은 “연대 측정은 작품의 재료에 대한 시기만 제공하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전문가의 안목과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유화 물감 분석

이날 세미나의 마지막 발제자는 이한형 이송문화유산기술 대표였습니다. 이송문화유산기술은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산학협력단에서 출발해 지난해 설립된 과학기술 회사입니다. 이 대표는 미술품 감정 지원을 위한 유화 물감 분석을 소개했습니다.

이 대표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1940년대 이전에는 ‘마티숑’과 ‘홀베인’ 등 일본에서 생산되는 유화재료가 쓰였습니다.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까지는 미 군부대를 통해 수입되는 유화재료, 서울 을지로의 재료상들이 무기안료를 구입해 린시드 오일과 혼합해 만든 유화물감 등이 사용됐습니다. 1970년대 이후에는 알파화학과 신한화구가 전문가용 유화물감 생산을 시작하는 한편 국가주도 민족기록화 사업을 위해 네델란드 ‘램브란트’, 프랑스 ‘르프랑’, 영국 ‘윈저앤뉴튼’ 등의 유화물감도 수입됐습니다.

이 대표의 설명을 듣고 황인 미술평론가가 말했습니다. “마티숑 물감 얘기하시니 반갑네요. 김구림 화백(87·한국 1세대 전위 예술가)이 마티숑을 사용했기 때문에 김 화백 초기작 진위를 감별할 때 마티숑인지 아닌지 봅니다. 이렇게 물감이 시대별로 데이터베이스화하면 앞으로 작가와 인터뷰할 때 ‘1960년대에는 어떤 제품을 썼습니까’ 물어볼 필요가 없겠네요.”

●미술품 감정 신뢰도 높이려면

세미나의 마지막 순서는 패널토크였습니다.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회 윤용철·황규성·황인 위원과 유병용·서민아 연구원, 이한형 대표가 자리했습니다. 감정위원들은 위작의 실력이 갈수록 고도화돼 미술품 감정에 과학기술의 활약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미술품 감정과 과학기술을 주제로 패널 토크를 하고 있는 참석자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미술품 감정의 신뢰도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과학자들은 “과학자들의 데이터와 연구결과에 대한 신뢰가 일단 요구된다”고 합니다. 과학기술을 충분히 인정하고 고려하면서도 여러 사안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광학 분석으로 똑같은 재료와 색상이 나와도 작가의 팔 길이에 따라 물감 두께나 붓이 지나간 흔적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접근방식을 활용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한 작가의 질문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합리적 비용으로 간편하게 제 작품의 위조를 방지할 방법이 있을까요.” 전문가들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밑그림 그릴 때 작가의 이름이나 작가만 아는 작은 그림을 그려 넣는 겁니다. 그러면 나중에 적외선 영역대의 카메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긴 해도 예술과 과학을 연결하고 확장하려는 자세가 진지한 세미나였습니다. 스테파니는 다음주 목요일 오전 8시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