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는 넘겼지만… 증권 PF 리스크, 중소형사 '위기감' 여전
[편집자주]부동산 호황기가 지나면서 증권사 효자 수익원으로 떠올랐던 부동산금융의 영업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치솟는 공사비와 금리 이슈까지 겹치며 개발사업 여건이 비우호적으로 돌아선 탓이다. 부동산에 돈을 빌려준 증권사 등 2금융권의 자금 경색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철저한 리스크 관리로 부동산 부문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증권사와 그렇지 못한 증권사의 희비는 엇갈린다. 올 상반기도 부동산 하락이 예상되는 가운데 증권사의 부동산금융 리스크 현황과 생존 방안 등을 들여다봤다.
① 고비는 넘겼지만… 증권 PF 리스크, 중소형사 '위기감' 여전
② 메리츠증권, 부동산PF 부실 우려 속 나홀로 '미소'
③ 불황 먹고 자란 부실채권 'NPL' 큰장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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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 물량은 6만8107가구로 집계됐다. 2012년(7만4835가구) 이후 9년 만에 가장 많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 닥친 2008년(16만 5599가구)에 비해서는 적지만 2021년 12월 말(1만7710가구)과 비교하면 4.3배 가량 늘어난 수준이다.
미분양이 확대되면 증권사 PF 대출의 상환이 지연되고 담보 가치 하락 등으로 이어져 대출 채권의 건전성이 악화한다.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나신평) 금융평가본부장은 "미분양 가구 수 자체보다 증가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는 점이 더 문제"라며 "지난해 하반기 이후 주택경기가 급격히 악화하면서 미분양 가구가 급격히 증가해 PF 사업장이 어려워졌는데, 이럴 경우 여기에 대출을 한 금융회사도 손실을 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최근 대형 건설사 대우건설이 미분양에 대한 우려로 400억원이 넘는 돈을 포기하고 지방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 시공권을 포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최근 '브리지론'(bridge loan) 금리가 크게 오른 가운데 지방을 중심으로 미분양 물량도 급증하면서 사업 리스크가 커지자 본 PF로 넘어가기 전에 사업을 접은 것이다.
A증권사 구조화금융 관계자는 "자금 집행이 완전히 실종됐던 연말과 달리 1월엔 우량 딜에 대한 자금은 조금은 활기를 보이기도 했다"면서도 "하지만 이번 대우건설처럼 지방에서 시공권 포기 사태가 발생함에 따라 금융사들의 자금 집행이 다시 까다로워질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이어 "지방 사업지가 대출을 받으려면 이자율 15% 정도는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마저도 사업성이 확실한 것만 가능하고 지방 대부분 사업지는 자금 조달이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부동산PF에서 증권사는 은행과 보험사 등 대주들로부터 돈을 끌어모아 시행사에 자금을 조달하는 브리지론을 제공하며 사업에 참여한다. 브리지론은 시행사들이 본 PF를 시작하기 전 토지매입과 인허가 비용을 위해 증권사로부터 계약금, 중도금, 잔금 대출 등 자금을 조달받는 것을 말한다. 즉 브리지론은 본 PF로 연결하기 위한 다리인 셈이다.
브리지론은 사업 인허가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단계에서 이뤄지는 고금리 단기대출 성격으로 토지매입 위험, 인허가 위험, 본 PF 미성사 위험을 안고 있다. 착공 이후의 본 PF에선 미분양 위험, 시공사 위험, 준공 위험이 상존하는데 특히 중·후순위 본 PF의 경우 선순위 본 PF보다 변제 순서가 밀리는 만큼 리스크가 큰 우발채무로 분류된다.
시행사가 브리지론을 통해 토지매입, 인허가 등 이슈를 처리하고 기관투자자가 사업에 참여해 본 PF를 일으켜 자금이 충당돼야 증권사들은 빌려준 돈을 받고 단기 대출을 청산할 수 있다. 만약 브리지론에서 대주를 구하지 못해 본 PF로 연결되지 못하면 증권사의 손실 가능성은 커진다.
브리지론 내에서도 선순위, 중순위, 후순위로 나뉘어 있어 물건별로 위험성은 다를 수 있다. 선순위로 들어간 증권사의 경우 부동산 담보 비율(LTV)을 50%로 유지하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 무난하게 원금 회수를 집행할 수 있다. 다만 중소형증권사가 보유한 브리지론은 통상 선순위보다 높은 수수료를 받을 수 있는 중·후순위 비중이 높게 형성돼 있다.
대우건설의 사례와 같은 시공권 포기가 연쇄적으로 발생하면 PF 시장에 자금을 투입하는 은행·증권·캐피털사 등의 자금 집행이 다시 위축되면서 지방 PF 시장이 침체할 가능성도 있다. 사업성이 떨어지는 지방 사업지를 중심으로 시공사가 시공권을 포기하는 사례가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중소형 증권사들의 공포는 더 커지고 있다. 브랜드 파워가 약한 중소형 증권사들은 그동안 부동산 호황기에 고금리 단기대출 성격의 브리지론이나 변제 순서가 밀리는 중후순위 본 PF 등에 뛰어들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자본 3조원 이상 대형 증권사들의 부동산 우발부채 중 브릿지론(19.6%)과 중·후순위 본 PF(15.9%)가 차지하는 비중은 35.5% 수준으로 나타났다.
반면 자본 1∼3조원 규모의 중형 증권사는 브릿지론(27.9%)과 중·후순위 본 PF(41.4%)의 합산 비중이 69.3%로 대형사의 2배에 달했다. 자본 1조원 미만의 소형 증권사(76.5%)의 경우 각각 30.8%, 45.7%로 더 높았다. 이처럼 최근 부동산 금융시장 경색으로 PF가 사실상 멈춰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브리지론 비중이 높은 증권사를 중심으로 우려는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나신평에 따르면 중소형 증권사의 경우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 부동산 익스포져(위험노출액) 구성 중 비수도권 지역 비중이 61%로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미분양으로 인한 부실 위험은 중소형 증권사들에 큰 타격을 입힐 것으로 전망된다.
이예리 나신평 금융평가본부 선임연구원은 "대형 증권사의 경우 국내에 한정된 투자대상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자본여력과 전문인력을 무기로 해외투자를 확대했다"며 "하지만 상대적으로 자본 등에서 열세인 중소형 증권사들은 해외투자는 물론 비교적 위험이 낮은 수도권 지역에서의 프로젝트 수주 능력이 대형사 대비 열위에 있어 광역시와 기타 지방을 중심으로 영업을 확대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지운 기자 lee101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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