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시간 도난’ 없고 싶어…삶에 돌려주는 ‘15분 도시’란

한겨레 2023. 2. 17.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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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 도시’ 창시자 카를로스 모레노
‘복잡한 유기체’ 도시를 지속 가능하게
시간에 따라 달라져야 할 도시계획
“코로나19를 새로운 기회로 삼아야”
프랑스 파리에서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시민들 모습. 프랑스 시장 안 이달고는 카를로스 모레노의 ‘15분 도시’ 개념을 받아들여 실제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자료 제공 Chaire ETI 한승훈 디자이너

도시에 살 권리
세계도시에서 15분 도시로
카를로스 모레노 지음, 양영란 옮김 l 정예씨 l 1만7400원

전 세계 인구 중 절반 이상이 도시에 거주한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도시 밖을 상상하기 어렵다. 아파트와 고층 건물들 사이에서, 매캐한 공기 속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는 게 도시 사람들의 일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소외, 환경오염, 각종 사건사고의 온상인 도시에서 ‘꾹 참고’ 살아야 하는 미약한 존재들이다. 다행히 그 도시를 바꾸자는 움직임이 적잖다. ‘15분 도시’ 개념을 창안한 복잡계 연구자이자 시스템 과학자 카를로스 모레노의 <도시에서 살 권리>는 생태, 경제, 사회 등 각종 영역에서 도시가 당면한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하는 책이다.

저자는 도시를 긍정하는 일에서 자신의 주장을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도시는 “인류의 이야기가 담긴 영원한 서사시를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들려주는 증인”이다. 그렇다고 도시가 유토피아일 리는 없다. 저자는 “사회적으로 공간적으로 분산화되고 파편화된 도시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인간답게 살 수 없다고 강조한다. 전쟁, 전염병을 온몸으로 겪어야만 하는 도시의 약자인 빈곤층들의 현실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저자는 “어떻게 해야 생태학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균형 잡힌 도시 생활의 길을 재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를 지금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만 “모두를 위한 도시”의 길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를 새롭게 하는 길의 시작은 “복잡한 유기체”로서의 도시에 대한 이해, 즉 “도시에 귀를 기울이고, 긴 흐름으로 생성된 도시의 리듬과 호흡을 찾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하여 “도시의 몸체와 영혼의 분리를 막고 그 어떤 기술적 업적보다 삶의 질이 우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가치들을 저자가 중시하는 이유는 “성소로서의 도시”, 즉 인류애에 입각한 도시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보다 광범위하게 생각해보자면, 이는 남과 다를 수 있는 권리, 도시에서 살 권리, 각자가 선택한 남성 또는 여성을 사랑한 권리이며, 그래서 각자가 원하는 가정환경을 꾸릴 권리, 후손을 낳거나 낳지 않고 입양할 권리를 옹호함으로써 구식이 되어버린 지난 시대의 가족 모델, 구태의연한 위계질서에 따른 가족 틀을 깨거나 적어도 변화시킬 수 있는 권리다.”

이런 권리들이 충분히 납득되는 도시라면, 저자는 “도시보다 더 지속 가능한 것은 없다”고 강조한다. 지속 가능의 토대는 “환경 보호 차원으로 이해되는 생태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속 가능한 세계를 위한 “생태주의적 투쟁은 기후 정의, 사회 정의, 경제 정의와 함께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세계와 한편”이 되어야만 한다. 그 사례 중 하나로 저자는 2002년 서울 청계천 공원 조성 프로젝트를 언급한다. “자동차들에게 할애되었던 도시 공간을 삶의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콜롬비아 메데인(메데진)은 하천 복원을 통해 “자연을 되찾고 사회통합을 촉진하며 새로운 도시형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도시를 삶에 돌려주는 변화”를 가져왔다.

‘15분 도시’의 개념도. 자료제공 Chaire ETI
프랑스 파리에서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시민들 모습. 프랑스 시장 안 이달고는 카를로스 모레노의 ‘15분 도시’ 개념을 받아들여 실제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자료 제공 Chaire ETI 한승훈 디자이너

이 모든 토대 위에 저자는 “15분 도시”라는 혁신적인 제안을 올려놓는다. ‘15분 도시’는 한마디로 “다중심적 도시”다. ‘15분 도시’는 생활 반경 내에서 주거, 일, 보건‧의료, 교육, 문화, 생활재 공급 등의 사회적 기능이 제공되는 곳이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시간을 “도난”당하지 않는다. 포디즘, 즉 강력한 전문화에 기반해 분할된 공간 생활방식은 사람들의 시간, 이를테면 오랜 출퇴근 시간을 야기한다. 이러한 “시간도시계획”(chrono-urbanism, 크로노어바니즘)에 입각한 도시는 “지역적인 것에 역점을 두고, 이웃 간의 관계를 촘촘하게 만들며, 실업자들에게 수치심을 안겨주기 마련인 직업의 사회적 지위에서 탈피”하는 등의 효과를 발휘한다.

크로노어바니즘과 함께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시공간의 차원을 말하는 크로노토피아(chronotopia)와 그것에 대한 애정인 토포필리아(topophilia)라는 세 가지 기본 요소들의 통합을 이룬 ‘15분 도시’는 “자신을 위한, 가족과 이웃을 위한 시간을 갖도록 해줄 뿐 아니라, 장소의 활용도를 높여주고, 자신이 사는 곳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심을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 삶의 리듬을 제공한다. 기초부터 다시 시작할 필요는 없다. “이미 존재하는 시설들은 기존의 기능과 다른 기능, 다른 사용자, 요일과 시간대에 따라 다른 이용객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발상의 전환만으로도 시작할 수 있다. “‘15분 도시’를 생각한다는 것은 도시민들이 자신의 삶의 시간을 사용하기 위해 도시가 무엇을 제공해야 하는지를 심도 있게 질문하는 것이다.”

도시를 빼고 세계를 논할 수 없는 시대이지만, 그만큼 “시골이라는 사회 영토”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다가올 시대에는 “농촌성 또는 농촌다움이 새로운 생산, 소비, 유통 방식을 구축할 수 있게 해주는 희망”이 될 것이기에 그렇다. 저자는 농촌성은 “자원 활용을 최적화함으로써 순환경제의 또 다른 모델을 개발하고 정착시킬 수 있는 기회”이며, 확장해보면 “땅을 일구는 일뿐 아니라 마음을 가꾸고 자연과 타인에 대한 존중심을 기른다는, 이를테면 모든 의미에서의 경작”이라고 강조한다. 도시의 지속 가능성만큼이나 시골의 존재는 중요하다는 저자의 균형감이 빛나는 대목이다.

저자는 “코비드-19”와 같은 위기가 새로운 기회라고 말한다. “이후의 세계”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도시 그 자체가 아닌 “도시에서의 삶을 다시 생각하는 기회, 삶의 회복력을 근접성에서 찾을 기회, 집 가까이에서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서비스를 개발할 기회,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간성, 활동적인 저탄소 이동 방식으로 옮겨갈 기회”는 바로 지금이다. <도시에서 살 권리>는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바꿀 수 있는, 남다름이 가득한 책이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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