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죽음에의 정의’ 철학자 김진영 “낮엔 우울을 아낀다”

임인택 2023. 2. 17.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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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피아노> (2018)는 철학자 김진영이 그해 8월 죽음으로 가는 자신의 해소수 여정을 담은 일기다.

즈음 줄곧 되새긴 "몰락은 가깝고 구원은 멀다"는 철학자로서의 화두와 "언제나 폐허 속에서 아름다움을 꿈꾸었다"는 문학적 윤리주의자로서의 고백이 힌트이긴 하겠으나, 인간 김진영은 아주 수수하게 무너지고 일어나길 또한 반복하므로 2010~16년 그가 쓴 1348개 글을 엮은 <조용한 날들의 기록> 은 한 편의 긴 서사시이자 소설이 된다 해도 무엄하질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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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날들의 기록
철학자 김진영의 마음 일기
김진영 지음 l 한겨레출판 l 2만7000원

<아침의 피아노>(2018)는 철학자 김진영이 그해 8월 죽음으로 가는 자신의 해소수 여정을 담은 일기다. 한명의 독자로서, 책의 무게를 감당 못 해 되읽길 몇 차례였다. 불의의 시대 ‘문학적 상상의 효용’을 설파하는 마사 누스바움(76)의 <시적 정의>에도 그만한 밀도와 열이 없다. 문학과 철학에 기거한 이, 결국 제 생애 일상을 문학과 철학의 텍스트로 헌사하듯 김진영이 삼켜 쓴, 가히 ‘사(死)적 정의’이기 때문이다.

“왜 기억하는가. 그건 망각하기 위해서다. 왜 쓰는가. 그건 지우기 위해서다. 왜 망각하고 지우려 하는가. 그건 새로운 삶들을 기록하기 위해서다.”

예순여섯 그가 눈 감기 넉달 전의 글이다. 이 모순의 진리는 적어도 2010년 인식에 닿아 있음을 후속성 신작 <조용한 날들의 기록>이 보여주고, 이는 <아침의 피아노>가 내재한 밀도가 곧 생과 사를 떠안은 지난 10년가량의 압착이었음을 비로소 알린다. 죽음의 신호가 없던 때로부터의 어둡고 슬픈 감지랄까. “…지속적으로 강박하는 자명한 상념들 중의 하나는 ‘이제는 시간이 많지 않다’라는 생각이다.”(2012년 6월)

철학자 김진영. 흔치 않던 저 웃음을 김진영은 좋아했다고 쓴 바 있다. ©이해수, 한겨레출판 제공

위 언급한 ‘2010년 인식’이라 함은, 암으로 한달 생을 남긴 독일 사회학자 야콥 타우베스가 하루씩 쉬면서 사흘 3시간씩 진행했던 강의(<바울의 정치신학>)에 대한 소고로서, 김진영은 이를 생의 정리 대신 생의 도전으로 읽는다. 결미로의 착지가 아닌 결미로부터의 도약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즈음 줄곧 되새긴 “몰락은 가깝고 구원은 멀다”는 철학자로서의 화두와 “언제나 폐허 속에서 아름다움을 꿈꾸었다”는 문학적 윤리주의자로서의 고백이 힌트이긴 하겠으나, 인간 김진영은 아주 수수하게 무너지고 일어나길 또한 반복하므로 2010~16년 그가 쓴 1348개 글을 엮은 <조용한 날들의 기록>은 한 편의 긴 서사시이자 소설이 된다 해도 무엄하질 않다.

그는 알았던 것 같다. “우리는 태어날 때 이미 한 권의 완성된 소설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우리가 소설을 쓴다는 건 그 완성된 소설들 중에서 어느 한 부분 부분들을 기억해내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니까 소설을 쓴다는 건 창작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소설을 찾아가는 일인지 모른다…”(2010년 10월)

굳이 따지자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마르셀 프루스트)로 환유되는 지점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스스로를 엄습한 죽음에의 명징한 감각 자체라 해야겠다. 모친을 잃고 2년간 슬퍼하며 사랑의 본령에 닿은 <애도 일기>의 롤랑 바르트와 프루스트에 관하여 김진영보다 더 많이 아는 자들이 있을망정 더 많이 감각하는 이는 없지 싶다.

“낮에는 우울을 아낀다. 다정한 애인처럼 깊은 밤에 찾아올 수 있도록.”

하지만, “밤의 방은 언제나 빈방이다. 밤에는 방도 갈 곳을 몰라서 한숨을 쉰다.”(이상 2016년 10월)

바르트의 말마따나 “슬픔의 독자성을 간직하고 싶다”던 그 철학자가 온전히 그만의 방에 당도한 지 올해 5년. 자박한 그의 발자국을 따라 걸어본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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