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으로 펼친 우리말 순은처럼 빚어낸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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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별세한 오탁번 시인은 시인으로 더 유명하지만 1980년대 말까지는 중·단편 소설에 매진했다.
고인과 친분을 나누며 최근까지도 교류를 해온 이영춘 시인은 "고인은 해학스러운 언어를 쓰면서도 진리를 말하는 시인이었다"며 "'엘레지'(개의 음경을 한방에서 이르는 말), '알요강'(어린아이의 오줌을 누이는 작은 요강) 등과 같은 순수한 우리 말을 쓰려고 노력했던 모습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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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연고 신춘문예 3관왕
월북시인 정지용 첫 논문
소설 ‘아버지와 치악산’ 등
‘엘레지’ 등 순우리말 애정
“나는 혼자 치악산으로 가서 아버지의 유해를 뿌렸다. 이제 치악산에는 다시 오지 않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버지의 유해 대신에 이러한 예감을 안고 큰 산을 내려오면서 나는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소설 ‘아버지와 치악산’ 마지막 문장)”
지난 14일 별세한 오탁번 시인은 시인으로 더 유명하지만 1980년대 말까지는 중·단편 소설에 매진했다. 평론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글을 써왔다. 1966년 동아일보 (동화), 1967년 중앙일보(시), 1969년 대한일보(소설)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신춘문예 3관왕’으로 이름을 알리는 등 데뷔부터 주목받았다.
1979년 발표한 단편소설 ‘아버지와 치악산’은 세 살 때 떠나 보낸 아버지 모습을 상상으로 쓴 작품으로 2021년 소설집으로 발간됐다. 원주중과 원주고를 다녔던 어린 시절 작가의 시선 또한 묻어나온다. 작품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군청 산림계장으로 일하는 주인공은 교육공무원인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교육공무원인 아버지와 화해를 기대하지만 정년퇴임을 한 달 앞둔 상황에서 화재로 목숨을 잃는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치악산은 어릴 때 보았던 큰 산이 아니었고 결국에는 화해하지 못한 아들의 회한으로 끝을 맺는다. 시적인 문장과 함께 권력의 속성 대신 아버지의 권위를 다룬 작가의 미학이 눈길을 끈다.
날카로운 비평과 해학을 버무린 그의 글에는 전통의 터전 위에 영미 문학을 수용한 모더니스트의 이미지가 남아있다. 시인의 대표 작품으로는 등단작인 시 ‘순은이 빛나는 이 아침에’와 함께 정지용문학상 수상 작품인 시 ‘백두산 천지’를 꼽을 수 있다.
우리 모국어에 대한 애정과 함께 사전에서 토박이말을 찾는데 정성을 들이는 ‘모어(母語)의 연금술사’로도 통한다. 1971년 월북시인으로 금기시된 정지용 연구 논문을 한국문학사 최초로 발표해 주목받았다. 1980년대 월북 문인 연구의 물꼬를 텄다는 평가와 함께 정지용 시와의 관련성 연구 또한 숙제로 남아있다. 고인은 한림대 교수를 지낸 아내 김은자 시인의 영향으로 춘천 시인과도 종종 교류해왔다. 고향 마을의 폐교를 사들여 원서문학관을 지었다.
고인과 친분을 나누며 최근까지도 교류를 해온 이영춘 시인은 “고인은 해학스러운 언어를 쓰면서도 진리를 말하는 시인이었다”며 “‘엘레지’(개의 음경을 한방에서 이르는 말), ‘알요강’(어린아이의 오줌을 누이는 작은 요강) 등과 같은 순수한 우리 말을 쓰려고 노력했던 모습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마지막 시집 ‘비백’에는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노시인의 해학과 성찰이 드러난다. 시 ‘종종이’에서는 “원주역에서 기차를 타고/1963년 겨울/청량리역에 내렸다//안암동까지/추운 길을 걸어갔다/그 길이/ 내 생애의 비알이고 벼랑이라는 것도/까맣게 모르는 채”라며 청년 시절의 기억을 바탕으로 비유력을 확장시킨다.
고인은 1998년 시 전문 계간 ‘시안’을 창간했으며 한국시인협회장을 역임했다. 2020년부터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도 활동했다. 한국문학작가상, 동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김삿갓 문학상, 은관문화훈장, 고산문학상 시부문 대상, 목월문학상, 유심작품상 특별상, 공초문학상을 받았다.
김진형 formatio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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