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보조금 삭감 안돼” ‘백지시위’ 이어 중국 노인들의 ‘백발시위’ 확산
삭감 배경에 ‘제로 코로나 여파’ 재정난 관측
당국 “자금 배분 방식 바꾸는 것일 뿐” 반박
중국 일부 지역에서 잇따라 노인들의 집단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 3년 간 코로나19 방역에 예산을 쏟아부으면서 크게 악화된 재정 상황 때문에 지방 정부들이 퇴직자들에게 지급하는 의료보조금을 삭감하자 이에 분노한 노인들이 거리로 몰려나온 것이다.
로이터통신과 자유아시아방송(RFA) 등 외신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동영상을 토대로 지난 15일 중국 허베이(河北)성 우한(武漢)과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에서 노인들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외신들은 참가자 규모를 최소 수백명에서 최대 수천명으로 추산했다.
최근 우한시는 의료보험 제도를 바꾸면서 퇴직자에게 지급하는 의료보조금을 월 260위안(약 4만9000원)에서 83위안(약 1만6000원)으로 대폭 삭감했다. 우한에서는 지난 8일에도 이에 분노한 퇴직자 수천 명이 시 정부청사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인 바 있다. 우한의 한 주민은 로이터통신에 “그 돈은 매우 적지만 노인들에게는 생명을 구하는 돈”이라고 말했다.
동북지역의 다롄시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노인들의 시위가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로이터통신 등은 다롄 시위의 경우 SNS에 동영상이 공유되고 있지만 자체적으로 사실 관계를 검증하지는 못했다고 전했다.
외신들은 이번 시위의 배경이 된 보조금 삭감이 ‘제로(0) 코로나’ 정책의 여파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의료보험 개혁은 값비싼 제로 코로나 정책 때문에 재정난에 빠진 지방정부들이 지출을 줄이기 위해 시행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번 시위는 중국이 의료 시스템을 강화하고 급속히 고령화되는 인구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직면한 재정적 어려움 부각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중국 국가의료보장국은 “의료보험 개혁은 자금 배분 방식을 바꾸는 것일 뿐”이라며 제로 코로나로 인한 재정난과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다. 매달 개인에게 직접 제공하는 보조금을 줄이고 병원 치료를 받은 뒤 청구할 수 있는 금액을 늘리는 방향으로 의료보험 개혁이 진행되는 데 따른 것이란 설명이다.
노인들이 중심이 된 이번 시위를 지난해 11월 중국 내 주요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던 ‘백지 시위’와 연결짓는 시각도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강력한 검열과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확대된 대대적 감시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이 정부 정책에 항의하는 것에 더 대담해지고 있다”면서 “이는 지난해 백지시위 이후 중국 정부가 직면한 도전을 강조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중국 SNS인 웨이보(微博)에서 노인들의 우한 시위 사진과 영상은 몇 시간만에 사라지고 ‘의료보험 개혁’과 관련된 검색도 허용되지 않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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