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가 제일 좋다”는 18세, 펜 대신 총을 들었다
②미얀마 혁명 주역, Z세대
'민주항쟁 선배' 흔적 따라 ABSDF 합류
45일간 호신, 사격술, 폭탄 제조 등 배워
"엄마 보고 싶지만 내 삶은 내가 개척"
편집자주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로 합법적인 민주 정부를 무너뜨린 지 2년이 지났습니다. 미얀마인들은 총을 들고 싸웁니다. 피와 눈물로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미얀마인들은 과거의 우리와 닮았습니다. 한국일보는 한국 언론 중 처음으로 남동부 카렌주의 가장 깊숙한 곳에 들어가 군부와 싸우는 시민방위군(PDF)과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 학생군의 민주주의 수호 전쟁을 취재했습니다.
“응답하라, 응답하라!”
3일 새벽 태국 국경과 접한 미얀마 카렌주 다운타만의 밀림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적막을 깼다. 미얀마 학생군의 산실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 캠프에 울린 목소리의 주인공은 통신병 킨야다나우(20).
수십㎞ 떨어진 곳에서 쿠데타 군부 정부군과 전투를 벌이는 동료 전사들의 안전과 교전 상황을 상부에 보고하는 게 킨야다나우의 임무. 그가 소리를 지른 건 전투 현장과 연락이 끊겨서였다. 그는 "어제까지 별일 없었는데, 무슨 일이 벌어진 게 아닌지 확인해 봐야 한다"며 다급하게 움직였다.
30분 만에 전투 현장에서 승리 소식이 들려 오고서야 킨야다나우의 표정이 풀어졌다. 스무 살, 청춘의 얼굴로 돌아왔다.
35년 전통 학생 혁명의 산실
ABSDF는 1988년 8월 8일 군부 독재에 저항하는 8888항쟁에 참가한 학생 운동가들이 미얀마 국경 인근에 결성한 반군부 무장단체다. 35년 전 청년들이 깃발을 올렸던 곳에 자식뻘의 청년들이 몰려들었다. 목적은 같다. 독재 타도와 민주주의 쟁취. 미얀마인들은 2021년 2월 총칼로 민주 정권을 무너뜨린 군부와 싸우는 중이다.
요즘 학생군의 선택지는 크게 두 개다. 우선 미얀마 정부와 수십 년째 반목해온 카렌민족연합(KNU) 같은 소수민족 무장단체 혹은 시민방위군(PDF)에 바로 합류하는 것. 또는 ABSDF다. 인종, 계급, 종교의 차별 없이 싸운 '민주항쟁 선배'의 명성을 아는 청년들이 ABSDF를 택한다.
지난해 10월 ABSDF에 합류한 피피퓨아웅(22)은 "ABSDF는 미얀마 청년 혁명의 상징이어서 쿠데타에 맞서 싸우려 생각한 20대가 이곳부터 떠올리는 건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ABSDF에서 기초 군사 훈련을 받고 PDF 등에 합류한 청년은 지난 2년간 1,000명이 넘는다. 최소 45일 동안 호신술, 사격술, 폭탄 제조·사용법, 응급처치법, 군사학 등을 배우는 일정이다.
한국일보가 방문한 이달 2, 3일 캠프는 조용했다. 얼마 전 훈련을 마친 학생군 병사들이 각 전장으로 떠나갔기 때문이었다. 남은 병사들도 캠프 인근에서 경계를 서느라 눈에 띄지 않았다. 조교는 "훈련 기간엔 60~100명이 공동생활을 하느라 시끌벅적하다"고 말했다. 캠프에 남아 있는 학생군은 70여 명. 8명이 여성이었다.
20대 청춘을 바친 이들이 바라는 건 단 하나, 미얀마의 민주주의다. 그래서 매일 외친다. "아예떠우봉 아웅야미(혁명은 승리한다)!"
”내 길 내가 직접 개척해나갈 것”
태국에서 출발해 모에이강을 건너 캠프 입구에 도착하자 앳된 얼굴의 병사가 반갑게 맞아줬다. 총을 들고 있는 병사도, 영내를 청소하는 병사도 전부 천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통신병 킨야다나우는 ABSDF의 막내다. 쿠데타 4개월 만인 2021년 6월 합류 당시 그는 18세였다. 양곤의 한 대학 신입생이었지만, 민주 시위 현장에서 한 시민이 총을 맞고 즉사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펜' 대신 '총'을 들기로 결심했다.
"외국인과 대화하는 건 처음"이라며 킨야다나우는 긴장을 풀지 못했다. 이내 편안해졌는지, "블랙핑크의 지수를 정말 좋아한다. 기자니까 혹시 직접 본 적 있느냐"고 물어 왔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은데 꾹 참고 있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땀에 전 군복을 입고 있을 뿐 그는 누가 뭐래도 발랄한 20대였다.
안내받은 숙소 역시 막사보다는 허름한 대학 기숙사를 닮아 있었다. 침상마다 각종 브랜드의 화장품이 놓여 있었고, 잡지, 소설책도 여기저기 꽂혀 있었다. 야간 보초를 서지 않는 병사들은 밤새 삼삼오오 모여 노래를 부르거나 포커를 친다고 했다.
투지는 베테랑 군인 못지않았다. '위험한데 왜 입대했느냐'는 우문에 킨야다나우는 답했다. "당장 안락해 보이는 도시에 남아도, 여기 와서 싸워도, 군부의 폭정에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는 건 똑같다. 그렇다면, 내 힘으로 싸우며 내 미래를 개척하는 게 낫다. 군부에 복종하며 사는 삶은 하루라도 싫다."
양곤에서 지하저항군(UG)으로 활동하다 ABSDF에 합류했다는 양리엔테(24)는 쿠데타 군부 수장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에게 꼭 하고 싶다는 얘기가 있으니 기사로 써 달라며 기자를 불러 세웠다.
"나는 요즘 싸워서 이길 생각만 한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이 싸움을 계속 할 거다. 절대로 당신을 용서하지 않겠다. 당신을 잡는 그날 당신이 우리에게 준 고통보다 훨씬 길고 괴로운 고통을 줄 것이다."
다운타만(미얀마)=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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