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zine] 미지와의 조우…사우디아라비아 ②
(제다=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열사(熱砂)의 땅'으로 일컬어졌던 사우디아라비아는 관광과는 거리가 먼 곳으로 인식돼 왔다. 특히 엄격한 이슬람 율법 탓에 서방 세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최근 '미스터 에브리씽'(Mr. Everything)으로 불리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방한하면서 관심이 부쩍 높아진 사우디아라비아.
그곳에는 상상 속에서나 있을 법한 신비로운 옛 도시 제다를 만날 수 있다.
제다, 그리고 알발라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두 번째로 큰 해안 도시 제다는 이슬람교와 함께 발달한 도시다.
가까이는 바다 건너 이집트를 비롯해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도 순례객들이 드나들었다.
제다에는 보석 같은 거리가 숨어있다.
제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채널에는 최근 축구스타 메시가 이곳을 찾은 영상이 올라왔다.
메시는 이 영상에서 특색 있는 골목으로 유명한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역 알발라드 거리를 걷는 모습을 연출했다.
메시가 찾은 알발라드 지역에서는 건물 앞으로 돌출된 발코니형 창문인 '로샨' 형식의 창문을 많이 볼 수 있다.
로샨 창문에는 나무로 된 발이 있어 내부에서는 바깥이 보이지만 외부에서는 내부가 보이지 않는다.
이 창문은 시선 차단, 공기 순환, 먼지 방지 등 3가지 쓰임새가 있다.
발코니 형태의 로샨 창문이 있는 건물들은 16세기부터 지어졌고, 가로세로 1㎞가량의 알발라드 지역과 메카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다.
알발라드 인근에는 메카로 향한다는 뜻을 가진 '마카문'이 서 있다.
홍해와 평행으로 달리는 산맥의 이름은 히자즈(Hijaz)다.
이 단어에서 따 온 건축과 디자인 양식을 히자즈 양식이라고 말하는데, 알발라드의 많은 가옥은 히자즈 양식으로 지어졌다.
201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은 16세기 해상 실크로드의 향신료 무역에 탐을 냈던 포르투갈의 침범을 막아낸 역사가 있다.
제다 관광 가이드 나이프 아잡 씨는 "당시 포르투갈군은 대포 등을 앞세워 침범해 왔지만 좁고 암초가 많은 해안 지형 탓에 좌초되는 일이 잦아 제다를 집어삼키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우디 정부는 최근 알발라드 지역의 가치를 인정해 1천300만 달러의 예산을 들여 모두 56개의 건물을 복원하고 있다.
고대도시의 숨은 비밀을 엿보기 위해 새벽 일찍 일어나 알발라드로 향했다.
그러나 도착해서야 알게 된 사실은 상당수 건물이 주민들이 살지 않고 비어 있다는 것이었다.
복원사업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쉽지만 주변의 상가들도 모두 문을 닫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복원 전문가들이 분주히 오가는 모습과 간간이 주민들이 공사 현장을 지나쳐 생업 현장으로 가는 모습은 정적인 가운데서도 생동감을 줬다.
오후에 다시 이 지역을 찾았을 때는 흥정을 하는 상인들과 주민들의 모습으로 활기가 넘쳤다.
상가들은 일제히 문을 열고 있었다. 각 상점에서는 동양에서 흘러들어온 진귀한 향신료 등이 판매되고 있었다.
수백 년 역사를 지닌 상가들이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에 비친 알발라드의 모습은 깊은 인상을 줬다.
때마침 1400년전 세워진 알샤피 이슬람 사원에서 예배 시간을 알리는 아잔(Azan) 소리가 애잔하게 울려 퍼진다.
아랍 문화권 진수 엿볼 수 있는 알 타이밧 박물관
제다의 전통 양식으로 지어진 알 타이밧 박물관(Al Tayebat Museum)도 빼놓을 수 없다.
이 건물은 일단 외경에서 관람객을 압도한다.
지붕 위에 수십 개 돔을 가진 이 건물은 전통 히자즈 양식으로 지어졌다.
3개 층에 걸쳐 사우디아라비아뿐만 아니라 저 멀리 아프리카까지 아랍 각 지역의 의상과 생필품 등을 전시해 아랍 전체의 생활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수집품 보유한 홈 앤 아트 박물관
역시 제다 시내에 있는 홈 앤 아트 박물관은 개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집품을 보유한 곳이다.
관람객은 우선 수집품의 방대함과 그 수준에 놀란다.
그 뒤에는 끊임없이 나타나는 수많은 접대실에 더 놀란다.
각기 다른 테마로 꾸며진 접대실은 아랍 특유의 문양을 지닌 카펫과 주인의 고급스러운 기호를 보여주는 다양한 장식품 등으로 꾸며놓아 아랍 문화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심지어는 한국의 자개농까지 만날 수 있었다.
과거 자개 기술은 오로지 한국과 사우디, 이란 등지에서만 발견된다고 가이드는 설명한다.
고려 시대 예성강 하류에 위치한 중요한 나루였던 벽란도를 통해 중국과 일본, 멀리 동남아시아 상인, 아라비아 상인들도 자주 드나들며 교역을 했던 사실이 떠올랐다.
한국은 사우디의 교역로 가장 끝에 있던 나라였다.
그때부터 한국과 사우디의 인연이 시작됐다는 사실이 상기됐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3년 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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