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고발’ 편법 현장조사·위원장 개입…신뢰 잃은 공정위
한기정 위원장 “비협조 땐 엄정 대응” 브리핑…‘무관여’ 방침과 배치
시민단체 “조사 방해 처벌, 재벌 아닌 노동자에 적용 입법 취지 훼손”
공정거래위원회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에 대한 현장조사를 시도하면서 조사 공문에 법 위반 혐의를 기재하지 않고 광범위한 내부 자료를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15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공정위의 화물연대 ‘현장조사 공문’(지난해 12월2일 교부)을 보면 조사목적 항목에 ‘법 제40조 1항 및 제51조 제1항 위반 여부 조사’라고 명시돼 있다. 구체적인 법 위반 혐의는 누락하고 법 조항만 기재한 것이다.
공정위가 피조사인에게 교부하는 현장조사 공문은 현장조사의 범위와 한계를 직접적으로 명시하는 중요한 문서다. 이 때문에 공정위 조사절차규칙 제10조는 조사 공문에 기재되는 조사목적에 관련 법 조항과 법 위반혐의를 함께 기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조사절차규칙에 부당한 공동행위 조사는 법 위반혐의의 기재 및 설명을 생략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이 있다”며 “화물연대의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한 조사였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조사 공문의 절차적 하자 문제는 앞서 화물연대 검찰 고발 여부를 심의한 전원회의에서도 지적됐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조사 공문에는 조사의 범위와 객관성 명확성 등이 특정돼야 한다”며 “적법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피심인의 지적에 뼈아픈 부분이 있다”고 했다.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한 조사에 대해서는 법 위반혐의를 기재하지 않도록 한 예외 규정이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피조사인의 방어권 보장을 강화하기 위해 제정한 조사절차규칙의 취지와 맞지 않다는 것이다.
화물연대에 요구한 내부 자료 항목도 구체적이지 않고 포괄적이었다. 공정위는 현장 조사공문 조사방법 항목에 ‘법 제81조의 규정에 의한 업무 및 경영상황, 장부, 서류, 전산자료, 음성 녹음자료, 화상자료 등과 기타 조사공무원이 요구하는 자료 및 물건에 대한 제출, 보고, 열람, 확인, 복사, 일시 보관과 임직원에 대한 진술, 설명 등을 조사’한다고 명시했다. 요청 자료 등이 광범위해 사실상 조사 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셈이다.
공정위원장이 사건에 직접 개입한 점도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지난해 12월2일 공정위의 화물연대 본부에 대한 현장조사가 무산되자 한기정 위원장은 브리핑을 열고 “고의적인 현장 진입 저지가 계속될 경우 고발 등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그간 공정위가 밝혀온 위원장의 ‘무관여’ 방침과 배치된다.
지철호 전 공정위 부위원장은 “화물연대가 안전운임제를 이유로 진행한 파업에 경쟁 촉진을 목적으로 하는 공정거래법을 적용해 처벌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공정위 소관이 아닌 사건에 개입해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고 고발한 것은 성급하고 부적절한 판단”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화물연대에 ‘고의적인 현장진입 저지·지연 행위’(공정거래법 제124조 제1항 제13호)를 적용한 것은 법 취지와 맞지 않다고 본다.
공정위 조사 방해 행위에 대해 형벌규정을 도입한 배경에는 대기업의 관행적인 조사 방해가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대기업의 조사 방해에도 불구하고 고발에 소극적이었다.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장)는 “어렵게 도입한 형벌규정을 재벌에는 적용하지 않고 노동자에게 적용해 입법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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