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아동학대살해, 면접교섭만 이뤄졌어도

한겨레 2023. 2. 1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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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따돌림방지협회 제공

[왜냐면] 김승유 | 흰여울 법률사무소 대표·부모따돌림방지협회 기획이사

최근 인천에서 참담한 아동학대 살해 사건이 발생했다. 아이는 양육자인 친부와 계모로부터 장기간 학대를 당한 끝에 온몸에 멍이 든 채 사망했다. 친모는 아이를 만나고 싶어도 친부와 계모에 의해 면접교섭이 차단됐다고 한다. 친부는 “당신이 나타나면 가정의 화목이 깨진다”, “아이는 잘살고 있다”며 친모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 사건에서 주목할 점은 친모의 표현처럼 “아이 스스로가 마치 세뇌된 듯 자발적으로 면접교섭을 거부했다”는 점이다. 이른바 ‘부모 따돌림’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양육자가 비양육 부모를 적대시하며 만나지 말 것을 강요하면 양육자에게 생존을 의지해야만 하는 아이는 이에 순응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건처럼 양육자가 학대를 자행하고 있더라도 말이다.

많은 가사 전문 법률가나 상담사들은 면접교섭이 자녀와 비양육 부모의 권리이기에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면접교섭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민법상 권리이기 때문이 아니다. 면접교섭은 궁극적으로는 양육의 연장선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이혼하지 않은 가정의 아이는 양쪽 부모의 양육을 받는다. 부모가 서로의 양육방식을 견제하고 감시하며 아이의 복리를 위해 적절한 양육을 이뤄가야 한다. 이혼 뒤 단독 양육이 일반적인 우리나라에서는 부모가 별거한 직후부터 양육 견제와 개선의 기능이 중단된다. 비양육 부모는 면접교섭권을 통해서나마 주기적으로 만나 아이가 잘 크고 있는지 확인해야 하지만 양육자가 적극적으로 면접교섭을 방해하면 별다른 도리가 없다.

양육자가 면접교섭을 차단시킬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아이 스스로 거부한다”를 내세우는 것이다. 법률가와 상담사 등 가사소송 관련자들은 “아이가 면접교섭을 거부한다”고 하면 일단 비양육 부모를 의심할 뿐이다. 그러나 아이의 의사 표현은 그 전후 맥락과 상황을 복합·심층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아이가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 복잡한 심리적 역학관계의 희생양이 돼 누군가의 정서적 인질로 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더 나아가 생존을 양육자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어 매우 취약한 존재인 아이에게 ‘독립적이고 진정한 의사'를 묻는다는 것이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양육은 법의 영역을 넘어 가족이라는 자연적 관계에서 오는 명령이다. 양육이라는 천륜의 명령은 이혼 뒤 양육권과 면접교섭권이라는 법적 권리 개념으로 파편화한다. 선진국 가운데 우리나라처럼 양육을 파편화시키는 나라는 거의 없다. 양육이 두 개의 권리로 갈라지니 이혼가정의 부모들은 자녀를 두고 ‘권리 쟁탈전’을 벌인다. 갈등은 심화하며 자녀를 심리적으로 지배해 소유물로 삼는 ‘부모 따돌림’ 현상이 벌어지기 쉽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파편화한 권리마저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양육자의 권리에만 치중한 나머지 비양육 부모의 권리에는 무척 소홀하다. 양육비는 의무이행과 집행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면접교섭은 그에 못 미친다. 특히 양육자가 자녀를 인질로 삼아 자녀 스스로 면접교섭을 거부하도록 만들면 이에 대응할 제도는 거의 없다. 결국 이전까지 문제없었던 비양육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한순간에 단절된다.

이번 비극은 면접교섭만 제대로 이뤄졌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양육권과 면접교섭권은 본래 하나의 ‘양육’을 이루던 것으로 상호 불가분의 관계다. 면접교섭권으로 뒷받침하고 견제하지 않는 양육권은 비극을 방지하는데 무력하다. 아니, 견제받지 않은 단독 양육권은 아동학대를 자행하기 쉬운 상황을 초래한다.

그 공백과 한계를 국가가 보완해야 한다. 출산휴가를 주고 육아수당을 주며 양육비 이행확보 제도를 마련했듯 면접교섭에 관해서도 이행 여부를 감시하고 확보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면접교섭은 단순히 비양육 부모가 아이를 만나고 싶어 내세우는 권리가 아니라 비양육 부모가 실현하고 국가가 지원해야만 하는 양육의 다른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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