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심 100%’에 색깔론 판치는 국민의힘 전당대회···“‘도로한국당’ 우려”
국민의힘 차기 지도부 선거가 색깔론으로 물들고 있다. 근거가 미약한 ‘제주 4·3 사건 김일성 지시설’이 등장하고, ‘종북좌파’ 용어와 노조 혐오가 횡행한다. ‘윤심’(윤석열 대통령 의중) 논란에 더해 색깔론까지 전면에 등장하면서 여당 전당대회가 민심과 떨어진 ‘그들만의 리그’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3·8 전당대회는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한 태영호 후보가 최고 관심 인물로 떠올랐다. 태 후보는 제주 합동연설회를 하루 앞둔 지난 12일 제주 4·3 평화공원을 찾아 “4·3 사건은 명백히 김씨(김일성) 일가에 의해 자행된 만행”이라고 주장했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를 비롯한 관련 단체 등이 “역사 왜곡이자 제주의 상처를 다시 들추는 일”이라고 비판했지만, 태 후보는 사과는커녕 외려 더 공세적인 태도로 나왔다.
태 후보는 지난 14일 부산·울산·경남 합동연설회에서 “사과해야 할 사람은 김일성의 손자 김정은인데, 김정은한테는 뻥끗 못 하고 저보고 사과하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종북좌파에 의해 잘못 쓰여진 현대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 후보는 15일에도 기자회견 등을 통해 “뭐가 막말이고, 무엇이 피해자와 희생자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건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며 “중앙당 유일관리제로 운영되는 공산당의 운영방식을 봐도 김일성의 (4·3 사건) 지시는 명백하다”고 했다.
태 후보 주장과 달리 2003년 정부가 발간한 제주 4·3 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는 김일성 지시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태 후보를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했다. 허용진 국민의힘 제주도당 위원장도 “태 후보가 해서는 안 될 발언을 해 4·3 유족과 도민들에게 상처를 준 점에 대해 대신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태 후보에 가려졌지만, 당대표 선거에 나선 황교안 후보도 못지않다. 황 후보는 천하람 후보가 과거 “경제 기적을 일으킨 박정희 대통령은 폄하한 반면 북한에 핵무기 개발자금을 지원한 김대중 대통령은 칭송했다”며 “우리 당 정체성과는 맞지 않는 후보”라고 주장했다. 황 후보는 안철수 후보를 향해서도 “통혁당 간첩사건 주범 신영복을 시대의 위대한 지식인이라고 칭송했다.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디있냐고도 했다”며 “이런 후보가 어떻게 정통보수정당의 대표가 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전날 부산·울산·경남 합동연설회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 초대 비서실장 임종석을 제가 구속했다. 저는 종북좌파와 평생을 싸워온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황 후보는 이날 TV 토론회에서 “통진당을 해산시킨 그 뚝심으로 대한민국과 당을 지켜내겠다”고 밝혔다.
이번 전당대회에 색깔론을 처음 끌고 들어온 이들은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관계자)들과 대통령실 관계자들이다. 이들은 나경원 전 의원이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한 뒤 이달 초 안 후보가 여론조사 1위로 올라서자 안 후보 지지율 상승을 꺾기 위해 “공산주의자 신영복을 존경하는 사람”(이철규 의원)이라고 공격했다. “윤 대통령은 안 의원이 신영복 교수에 대해 존경의 뜻을 밝힌 사실을 최근에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민주당이나 종북좌파, 민(주)노총 같은 반윤 세력이 전당대회에 개입해 안 의원을 띄우고 있다”는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 ‘여권 관계자’ 발언을 인용한 보도가 이어졌다. 친윤(석열)계 지원을 받는 김기현 후보는 지난 5일 안 후보에게 “자유민주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하는 국민의힘 당대표가 되고자 한다면 친언론노조 행적을 반드시 해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전당대회가 본격화하기 전부터 국민의힘 안팎에서 극우화 우려가 제기됐다. 친윤계는 유승민 전 의원이 일반시민 여론조사에서 차기 당대표 지지도 1위를 달리자 20년 가까이 유지해온 ‘7(당심):3(민심)’ 규정을 당심 100%로 바꿨다. 이는 당 밖 대중들의 시선과는 동떨어진 주장이 여당 전당대회를 지배하는 배경이 됐다. 당 선거관리위원회가 예비경선(컷오프) 참여를 막긴 했지만, 강신업·김준교·김세의·류여해·신혜식 등 극우성향 인사들이 대거 전당대회 출사표를 던졌던 것도 당심 100% 규정이 도입되면서 ‘해볼 만 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국민의힘 초선의원은 “태 후보가 개정된 전당대회 룰을 활용해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초선의원은 “누가 보더라도 불행한 역사를 들춰서 대결을 만들어 선거에 이용해 먹는 것”이라고 했다.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은 박근혜 탄핵 이후 정권 탈환을 위해 중도·청년 등 지지층 저변 확대에 나섰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에서 4·3 사건, 5·18 민주화운동 등 과거사에 대한 전향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지난해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해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온전한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당대회 과정에서 ‘우향우’ 경향은 다시 심화되고 있다. 당 내에선 2020년 총선에서 참패한 자유한국당 시절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 여당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중도층까지 끌어와 겨우 이겼다. 대선 후 이들을 다 적으로 만들고 있다”며 “당이 민생과 일반인들의 상식과는 거리가 멀어졌다”고 말했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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