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금융의 우로보로스

2023. 2. 15.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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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투탕카멘 무덤 벽면에는 전설의 동물 우로보로스(Ouroboros)가 새겨져 있다. 커다란 뱀이 자기 꼬리를 물고 있는 그림으로서 윤회와 영원을 상징한다고 한다.

우로보로스가 주는 신화적이고 철학적인 영감과 달리 우로보로스 효과라는 표현은 다소 부정적 풍자에 쓰인다. 통계학에서 자기상관(autocorrelation)과 같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내놓은 방안 자체가 기실은 문제의 근원에 연결되어 있어 해결책으로 미흡할 때를 일컫는다. 다시 말해 '그게 그것인' 것이 돼버리는 상황이다.

예금보험공사는 금융회사가 부실해져 예금을 돌려줄 수 없을 때를 대비하여 금융회사에 예금보험료를 받아 예금보험기금으로 적립한다. 2003년부터 새로 적립하기 시작한 기금은 2011년 저축은행 부실사태 등 필요할 때마다 제 역할을 해왔고 매년 약 1조원씩 늘어나 작지 않은 규모가 되었다.

예금보험기금은 금융회사가 부실해지면 즉각적인 자금 조달이 가능해야 하므로 유동성과 안정성에 중심을 두고 운용된다. 따라서, 주로 국채와 같이 안전한 채권과 은행 예금으로 운용한다. 보유 채권과 예금 만기도 자금 소요 가능성과 금리 상황을 고려해 너무 길지 않도록 조정한다.

국제적으로 보면,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 예금보험기금은 보호대상인 은행에 상당한 금액을 예치하는 반면, 미국과 캐나다는 전액 시장성 금융상품인 채권으로 운용하고, 일본은 보호대상인 은행 예치가 가능하지만 실제 운용하지는 않고 있다. 예금보험기금이 안정성과 유동성을 넘어 수익성을 추구한다면 그 한계는 어디일까? 외국의 사례를 보면 프랑스 정도를 제외하고는 적극적으로 수익을 추구하는 예금보험기금은 드물다.

금융시장과 금융산업의 진화에 맞춰 예금보험기금의 운용방식도 변화해야 한다. 이론적으로 보호대상인 은행에 예금보험기금을 예치하는 것은 앞서 말한 우로보로스 효과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보호해야 할 금융회사에 그들로부터 받은 예금보험기금을 예치하면 해당 금융회사가 부실화되는 경우 기금을 통한 정상화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이 빠르게 변화하며 서로 연결된 금융환경에서는 작은 불씨가 금융시장 전체로 확산될 수 있어 우로보로스를 현실에서 맞닥뜨릴 가능성이 점점 커져 가고 있다. 이에 맞서 예금보험기금의 운용자산 간 비중을 적절히 조정하고 기금 규모에 걸맞은 운용체계를 구축하는 데 한 치의 소홀함도 없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꼬리를 삼키는 뱀은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예금보험기금 운용의 선진화를 위한 발전적 논의를 시작할 때다.

[유재훈 예금보험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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