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에 100년 된 총으로 대응사격...미얀마 시민군은 무기가 목마르다
① 평범한 시민, 총을 들었다
부대원 700명 중 총 보유는 500명뿐
군부는 헬기까지 동원해 공중전 나서
총탄 가격 상승에 직접 제작 나서기도
편집자주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로 합법적인 민주 정부를 무너뜨린 지 2년이 지났습니다. 군정은 폭력과 공포정치로 국민을 탄압합니다. 미얀마 사태는 그러나 국제사회의 관심에서 멀어져 ‘잊힌 비극’이 됐습니다. 미얀마인들은 스스로 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고. 피와 눈물로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미얀마인들은 과거의 우리와 닮았습니다. 한국일보는 미얀마를 찾았습니다. 한국 언론 중 처음으로 남동부 카렌주의 가장 깊숙한 곳에 들어가 군부와 싸우는 시민방위군(PDF)과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 학생군의 민주주의 수호 전쟁의 처절한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부대원은 700명인데 자기 총을 가진 사람은 500명뿐입니다. 총과 총알만 충분히 얻을 수 있다면 내 영혼도 팔겠어요.”
지난달 30일 미얀마 카렌주 미야와디에서 만난 시민방위군(PDF) 백호부대 소속 정보장교 아웅표(27)씨의 말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쿠데타 군부에 맞선 지 2년째. 민주주의를 되찾겠다는 의지는 하늘을 찌르지만 현실은 초라하다. 무기 대신 정신력으로 버틸 때가 많다.
수요 폭증에 총 가격 2배로 '껑충'
미얀마 시민군은 군부의 눈을 피해 밀림에서 생활하고 훈련한다. 모든 물자가 넉넉할 리 없지만 가장 부족한 건 무기다. 정규군이 아니어서 막대한 전쟁 비용을 대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제 먹통이 될지 모르는 총을 들고 전장에 나가기 일쑤다.
백호부대 사령부 소속 뚜카(36)씨는 자신의 총을 보여주며 “1948년 미얀마가 영국에서 독립할 때 쓰던 것이다. 내 부모님보다도 나이가 많다”고 했다. 그의 동료 병사의 총은 1차 세계대전 때 만든 것이라고 했다.
뚜카씨는 의기소침해하지 않았다. '총알이 제대로 발사되기는 하느냐'고 물었더니 “성능이 뛰어나진 않아도 우리 시민군의 조준 실력이 군부보다 훨씬 훌륭해 괜찮다”고 말하며 웃었다.
낡고 녹슨 총이라도 적군을 향해 쏠 수 있으면 차라리 운이 좋다. 무기를 지급받지 못해 고된 훈련을 받고도 전장에 투입되지 못하고 기다리는 병사가 부지기수다. 이들은 정부군 유인 작전이나 폭탄 제작에 동원된다.
훈련병들의 사정은 더 열악하다. 훈련받는 수개월간 진짜 총을 제대로 잡아 보지 못했다. 한 병사는 바닥에 놓여 있던 나무 모형 총을 들어 올리며 “3개월 동안 모형총으로 조준하는 법을 배웠다"며 "바라는 것은 오직 총, 총, 진짜 총뿐”이라고 말하며 고개를 떨궜다.
‘무기가격 인플레이션’은 가난한 시민군을 더 어렵게 만든다.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미얀마인들이 십시일반 몰래 보내주는 자금을 모아 총, 총알, 폭약을 구입하는데, 시민군과 정부군의 싸움이 길어져 총기류 수요가 급증하면서 가격이 껑충 뛰었다.
남동부 카렌주에 주둔하는 시민군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 국가 태국에서 주로 총기류를 산다. 2021년 8만 바트(약 300만 원)였던 일반 장총 가격은 최근 16만 바트(약 600만 원)로 뛰었다. 60만 바트(약 2,300만 원)를 넘긴 스나이퍼 라이플은 이제 언감생심이다. 총알 가격 역시 지난 2년간 3, 4배 오른 탓에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남은 총알 개수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헬기 동원한 정부군과의 공군력 차이
시민군의 열악한 상황은 전투기와 중화기로 무장한 정부군과 비교하면 더욱 극명하다. 정부군은 전투기와 중화기로 무장했다. 조떼 백호부대 총사령관은 “우리 부대가 지난달 1월 15번의 전투를 치렀는데, 거의 매번 군부의 전투기가 떴다”고 말했다. 정부군은 지난해부턴 헬기도 투입했다. 헬기에서 시민군을 조준 사격하거나 폭탄을 던진다.
카렌주엔 미얀마 정부와 수십 년간 반목한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이 있고, 시민군은 이들과 손잡았다. 익숙한 지형을 이용해 육상에서 게릴라전을 할 땐 그나마 선전하지만, 공군력에선 절대 열세다. 공습에 대응할 대공 무기는 전멸이다. 미얀마 민주세력 임시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의 라시 라 대통령이 “우리에게 대공 무기가 있다면 6개월 안에 승리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다.
NUG는 "일부 지역에서 대공 무기와 방공망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고 선전했지만, 카렌 지역에선 찾아볼 수 없다. 시민군들은 기자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언제 정부군의 헬기가 머리 위를 지날지 모른다"며 연신 하늘을 올려다봤다.
저렴한 수제 폭탄 제작까지… “길은 있다”
그러나 아무도 포기하지 않는다. ‘자금력이 전쟁의 승패를 가른다’는 오랜 명제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듯 미얀마인들은 우회로를 찾아 나서고 있다. 미얀마 국영철도 수석 엔지니어 우테일라(55)씨는 쿠데타 직후 철도 노동자 전면 파업과 시민불복종운동(CDM)을 주도한 혐의로 군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뒤 카렌주로 도망쳐 시민군을 위한 수제 무기를 연구하고 있다.
우테일라씨는 가방에서 파이프로 만든 유탄 발사기를 꺼내 보여 줬다. 그는 “태국에서 유탄 발사기를 사면 10만 바트(약 375만 원)인데 우리가 직접 만들면 재룟값이 2만 바트(75만 원)밖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 작동할 확률이 절반 수준에 그치는 시제품이지만, 시민군은 그의 ‘첫 작품’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중북부 사가잉의 한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우테일라씨의 아들(25) 역시 아버지를 도와 일반 무인기(드론)에 폭탄을 달아 날려 보내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전투기만큼의 위력은 아닐 테지만, 완성된다면 정부군에 적잖은 타격이 될 것이란 기대를 품고서다.
우테일라씨와 아들은 비장했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우리 둘 다 밤에 잠도 안 자고 고민합니다. 어렵지 않냐고요? 찾겠다고 마음만 단단히 먹는다면 길은 어떻게든 찾을 수 있어요. 우리는 승리의 길을 반드시 찾을 겁니다.”
레이케이코·총도(미얀마)=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짧게 맛본 '민주주의' 위해 미얀마 Z세대는 목숨을 걸었다
- "대학원 논문 써 줘"... 업무 외 사적 지시, 어디까지 해야 하나요?
- 한파 떠나자 전기료 폭탄 왔다…1월 '충격 고지서' 받은 중소기업 "다 죽게 생겼다"
- [단독] 나루히토 일왕 생일 축하연, 서울서 처음 열린다
- [단독] "한 가족당 北에 300만원 보내야"… 이산가족 상봉 가능할까
- '김학의 긴급 출국금지' 무죄 이유 "재수사 기정사실, 정당성 인정"
- '은퇴설' 김연경 "아예 생각 없다면 거짓말...고민 중"
- 지상파 드라마에 한국어 자막이 왜 나와? 67년 관행이 바뀌다
- 박민영, 전 남친 의혹에 검찰 조사…소속사 "출국금지 아냐"
- [단독] 中서 ‘퇴출’ 판빙빙, 한국서 촬영…韓이 ‘문화 망명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