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춘추] 고분고분 내 손

이은심 시인 2023. 2. 1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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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을 볼 때마다 나는 미안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려먹기만 하고 요즘 유행하는 손관리는 커녕 매니큐어도 발라준 적 없으니 깜찍할 만큼 예쁜 네일숍을 지나갈 때면 더욱 눈치가 보인다.

대접받지 못한 걸로 치자면 내 손이나 엄마 손이나 거기서 거기다.

암튼 어쩌다 모지리인 나와 고락을 함께 할 운명을 타고난 죄로 군소리 없이 수발들다가 쭈글쭈글 늙어버린 손이여,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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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심 시인

내 손을 볼 때마다 나는 미안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려먹기만 하고 요즘 유행하는 손관리는 커녕 매니큐어도 발라준 적 없으니 깜찍할 만큼 예쁜 네일숍을 지나갈 때면 더욱 눈치가 보인다.

주인을 잘못 만나 물 마를 날 없는 내 하수인. 할 수 없이 붉고 투박한 고무장갑을 끼기로 한 건 내 딴엔 대단한 결심이다. 로션도 핸드크림도 미끌거리는 질감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데 그 정도는 해줘야 고분고분해지지 않을까. 더 늦기 전에.

손에도 필시 감정 같은 게 있을 터. 갑자기 석고붕대를 친친 감고 파업을 하거나 퇴행성관절염을 핑계로 꼼짝 않을 수도 있다. 그러기 전에 비위 맞춰주는 게 상수다. 다듬고 무치고 채 써는 섬세한 요리는 좀 불편하겠지만 차고 뜨겁고 더러운 물과 독한 세제로부터는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을 테니 꽤 잘한 일이다.

생각해 보니 돌아가신 엄마는 고무장갑 같은 걸 끼신 적이 없는 것 같다. 반지 같은 건 더욱 그렇다. 하기야 대식구 건사에 손이라는 게 말 그대로 머슴인데 그런 호강이 가당키나 했을까. 두꺼비등마냥 거칠고 깍짓동마냥 굵어진 손에 팔자 좋은 여염들처럼 실반지인들 어울리기나 했겠는가. 그나마 시집올 때 혼수로 받은 금반지마저 자식들 등록금으로 날아가 버렸는데.

대접받지 못한 걸로 치자면 내 손이나 엄마 손이나 거기서 거기다. 보석으로 치장하고 물방울이나 톡톡 털어낼 귀티나는 형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장갑도 끼워주지 않고 반지도 끼워주지 않았으리라. 그러면서 그게 무슨 대단한 철학이라도 되는 것처럼 떠벌리지는 않았을까. 여리여리하고 미려한 손이었다면 나도 보석반지 몇 개쯤 탐냈을 게 뻔한데. 틈만 나면 귀금속 브로셔를 뒤적거리면서 안달복달하면서.

암튼 어쩌다 모지리인 나와 고락을 함께 할 운명을 타고난 죄로 군소리 없이 수발들다가 쭈글쭈글 늙어버린 손이여, 미안하다. 내 이참에 클로버라도 엮어서 풀꽃 반지라도 끼워줄까 보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장갑을 벗는다. 손이 뽀송뽀송하다. 만져보면 매끄럽고 보드랍다. 내가 아껴주니 저도 내게 성의를 보이는 것인가. 이젠 장갑 없이는 아무 일도 못 할 것 같다. 사람의 습관이라는 게 이렇게 요사스럽다니. 아니 사람이란 자체가 좀 요사스럽지 않은가. 나만 그런가.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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