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유보다 몸에 좋은 동백기름… 우리 마을도 살리네요” [마이 라이프]

최현태 2023. 2. 14.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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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동백고장보전연구회 오동정·최혜연
신흥2리 동백연구회 회장 오동정
감귤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토박이
300년 동백나무 테마로 마을 가꿔와
2009년 동백기름 짜면서 사업 본궤도
이익 절반은 마을 발전기금으로 전달
식물학 전공한 사무국장 최혜연
2006년 귀농후 놀러 갔다가 사업 합류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이끄는 살림꾼
동백기름으로 파스타·비빔밥 등 선봬
매년 동백나무 심어 미래 만들어갈 것
방앗간으로 들어서자 고소한 향이 진동한다. 방금 기름을 짜냈나 보다. 작은 병에 담긴 기름 한 방울 숟가락에 올려 입안으로 밀어넣자 눈이 휘둥그레진다. 은은하게 배어나는 깊고 그윽한 고소함이라니. 이렇게 맛있는 기름은 태어나 처음이다. 침샘을 마구 자극하며 음식을 부르는 녀석의 정체는 동백기름. 제주 환경 살리기에 앞장서는 제주 서귀포시 신흥2리 동백고장보전연구회의 오동정(52) 대표를 따라 우리가 잊고 지낸 동백기름의 맛을 찾아 떠난다.
동백고장보전연구회의 오동정 대표(오른쪽)와 최혜연 사무국장이 제주 서귀포시 신흥2리 동백마을 방앗간 앞에서 동백기름 제품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 대표 등은 동백나무 심기가 후대에게 물려줄 제주 환경을 살리는 중요한 프로젝트라고 강조한다.
#올리브유를 뛰어넘은 동백기름을 아십니까

할머니와 함께 지내던 어린시절을 기억한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머리에 동백기름 발라 참빗으로 곱게 빗어내리곤 하셨지. 그 동백기름을 먹을 수도 있는 거구나. 신흥2리 동백마을 방앗간을 찾은 덕분에 중요한 사실을 처음 알았다. “동백기름에는 올리브유와 똑같이 올레인산(오메가9)이 함유돼 있답니다. 올리브유는 올레인산이 65%이지만 동백기름은 무려 80%에 달해요. 몸에 더 좋을 수밖에 없죠. 올레인산은 혈관을 깨끗하게 만들어 나쁜 콜레스테롤(LDL)을 감소시키고 고지혈증과 고혈압을 예방하는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답니다.” 옆에 있던 최혜연(51) 사무국장도 거든다. 화장품을 전혀 안 쓰고 매일 동백기름 생오일만 바른다는 그의 얼굴 피부는 20대처럼 반짝반짝 윤기가 흐른다. “동백기름은 천연 피지층 성분과 유사해요. 피부에 자극을 주지 않으면서도 빠르게 흡수돼 피부 보습 효과가 탁월하죠. 아토피, 각질, 가려움도 막아 건성 피부에도 좋답니다.” 뿐만 아니다. 동백연구회에서 함께 일하는 한 마을 주민은 평생 기침과 천식에 시달렸는데 몇 년 전 이곳으로 이사온 뒤 매일 동백기름을 먹고 씻은 듯이 나았단다. 이처럼 효과가 뛰어난 동백기름을 업체들이 그냥 둘 리 없다. 동백마을은 2010년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운 구매협약 1호 마을’로 선정돼 열매, 꽃, 잎을 공급하고 있다. 또 2019년 SK바이오랜드의 ‘행복동행협약’ 1호로 선정됐다.

#동백마을 만들기 프로젝트

신흥2리가 동백마을로 불리는 이유가 있다. 마을은 1706년부터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했는데 동백나무 2만그루가 군락으로 자라며 300∼400년 수령의 동백나무에 지금도 열매가 달린다. 동백나무 군락지는 1973년 제주도 기념물 제27호로 지정됐다. “2007년에 마을 탄생 300년이 됐으니 기념사업을 한번 해보자는 공감대가 마을 청년회를 중심으로 형성됐어요. 청년회 특별사업기구로 동백고장보전연구회가 창립된 뒤 ‘제주특별자치마을 만들기 프로그램’에 지원했답니다. 당시 어떤 사업으로 참여할지 막막했는데 자문단이 마을을 한 바퀴 쭉 둘러보더니 1706년에 집을 지은 터와 동백나무 고목이 자라는 것을 보고 놀라더군요. 즉석에서 ‘300년 동백나무’를 테마로 마을을 가꿔보자고 결정됐죠.”

동백연구회는 마을 300년 기념으로 동백나무 300그루를 심으면서 마을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난관에 부딪혔다. 군락지가 사유지였기 때문이다. 세 차례 주민 토론회를 거쳐 공유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였고 시에서 예산 2억원을 지원하면서 사업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군락지 소유주가 팔지 않겠다고 완강히 버텼죠. 이장과 동백연구회 초대 회장이 끊임없이 찾아가 설득한 끝에 밀린 세금을 대납하는 조건으로 매입에 성공했답니다.”

2008년 동백연구회는 신흥2리 마을 특별사업기구로 독립하면서 공신력도 갖춰 나갔다. 모든 사업은 동백연구회가 진행하고 총괄은 이장이 맡았다. 그해 ‘제주도 베스트마을 만들기’ 사업에 선정돼 지원받은 1억원으로 마을 방앗간을 신축했고 2009년 드디어 동백기름을 짜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동백연구회 회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사업을 시작했답니다. 동백기름을 팔아서 수익이 나기 시작하면서 매년 300만∼500만원 정도를 마을발전기금으로 환원해 적립했고 지금은 1년에 1500만원 정도로 늘었어요. 매출이 가장 많이 날 때는 6억원 정도였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지난해 매출은 2억3000만원 정도 기록했습니다. 제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동백연구회를 사단법인으로 등록했어요. 마을 사업으로 발생한 이익을 회원들에게 분배하지 않겠다는 취지죠. 최소 인건비만 지급합니다. 또 마을에 매년 마을발전기금을 전달하고 같은 금액만큼 동백연구회 사업비로 적립하고 있습니다.”
고사리파스타만들기체험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가동

동백마을 사업에는 마을 어르신들이 대부분 참여한다. 9월 말부터 열매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어르신들이 이를 주워오고 동백연구회 방앗간에선 이를 사들여 식용 동백기름을 생산한다. 또 생열매로 짠 기름은 피부 미용에 좋은 기름으로 따로 만든다. 제주 전역에서 수거되는 동백 열매는 50∼60t으로 동백마을에서만 5∼6t 정도 생산된다. 아모레퍼시픽에서 원료를 구매하면서 사업은 정상 궤도에 올랐고 2011년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촌체험휴양마을로 선정돼 2013년부터는 다양한 체험사업도 시작했다.

체험 프로그램은 최 사무국장이 이끈다. “고사리 파스타 만들기, 식용 동백기름 비빔밥 한상차림 만들기, 동백기름 비누 만들기, 공예품 만들기가 대표적이죠. 식용 동백기름과 생동백오일 활용 방법을 소개하고 동백꽃으로 만드는 천연화장품 체험도 한답니다. 화전 만들기 체험도 인기죠. 꽃만 피는 관상용 애기동백 꽃잎은 먹을 수 없지만 토종 동백꽃은 식용이 가능해요. 찹쌀 반죽을 동백기름으로 지져 꽃잎을 올리는데 사람들이 아주 좋아해요. 다양한 동백기름 가공품도 판매하죠. 체험 프로그램은 연간 3000∼5000명 정도 참여할 정도로 인기가 높아요. 단순히 동백 군락지만 보러 오는 관광객까지 포함한다면 마을 방문객은 훨씬 많을 겁니다.” 입소문이 나면서 지난해 12월 인기 연예인 장도연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동네가 달라’ 촬영팀도 동백마을을 찾았다. 쿠킹 클래스 체험은 1인당 5만원으로 제주여행예약플랫폼을 통해 젊은 층이 많이 예약한단다. 최 사무국장은 2013년 서울에서 열린 전국 농어촌체험마을 페스티벌에서 동백오일로 만든 주먹밥을 선보여 최우수마을 상을 타냈을 정도로 솜씨가 좋다. 이유가 있다. 최 사무국장은 대학에서 생물학을, 대학원에서 식물학을 공부했다. 뒤늦게 전공을 제대로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최 사무국장은 운명이 자신을 제주로 이끈 것 같아 신기하단다. 동백마을은 2014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 2018년 제주형마을만들기 사업운영평가 대상을 받았고 2018년 농림축산식품부 ‘으뜸촌’으로 선정됐다. 또 2021년 제1회 제주관광공사 웰니스 관광지 만남·즐김치유 분야 인증도 획득했다.

#동백마을 토박이 동백연구회를 이끌다

오 대표는 동백마을 토박이다. 조상 대대로 제주에 살면서 감귤 농사를 짓는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났다.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99%가 감귤 농사를 짓는다. 해병대로 군 복무를 마친 뒤 막노동을 하면서 잠시 방황했지만 27세에 결혼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감귤 농사에 전업했다. 지금은 3000평 규모 비닐하우스에서 감귤을 생산한다. 2007년 동백연구회 총무, 2008∼2012년 부회장을 거쳐 2013년부터 회장을 맡고 있다. 회장 임기는 3년인데 할 사람이 없어서 계속 맡고 있단다. “제가 마흔두 살에 회장을 처음 맡았어요. 그때도 ‘애’였는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애’랍니다. 마을에 저보다 어린 사람이 별로 없어요. 20∼30대는 시골에서 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마을 흥산초등학교 학생이 한때 6학년만 90명가량 됐는데 지금은 전체 학생이 50명에 불과해요. 마을 돌잔치 안 한지 한 3년 된 것 같네요.” 그래도 동백연구회 활동으로 마을이 활기를 띠고 초등학교 살리기 프로젝트로 학부모를 유치하면서 외부에서 마을로 이주하는 이들은 꾸준히 늘어 사업 전 200가구이던 마을 주민이 270가구로 늘었다. 최 사무국장도 귀농한 케이스. “대전에 살다 동백사업을 시작할 때쯤인 2006년 귀농했어요. 집이 동백연구회 사무실 바로 옆이었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놀러 갔다가 그만 설득당해 사업에 합류했답니다. 제주 사람들은 외지인들을 싫어한다는 편견이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더군요.”
동백마을 머그컵
#제주의 미래를 생각하는 동백나무 심기

동백연구회는 제주관광공사와 마을에서 머무는 체험여행 ‘카름스테이’도 함께 진행하고 있는데 마을사업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다만, 오 대표는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오래된 집을 숙박 시설로 꾸밀 때 집 주인이 거주하면 안 된다는 규정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카름스테이를 활성화하려면 숙박 시설이 많아야 하는데 머물 곳이 별로 없어요. 오래된 집을 리모델링해 숙박 시설로 활용하고 10년 뒤에 다시 집주인에게 돌려주는 다자요 빈집재생 프로젝트 참여도 쉽지 않습니다. 제주 집은 안거리에는 부모님이 거주하고 밖거리엔 자식들이 삽니다. 안거리에 어르신들이 계속 살면서 바깥채만 민박집으로 활용하면 좋을 텐데 그게 현행법상 불가능해 집을 완전히 비워야 한다는군요. 어르신들이 거주하면 더 인기가 좋지 않을까요. 손님들이 집밥도 먹을 수 있고 제주의 따뜻한 정도 체험할 수 있으니까요.”

동백연구회는 2007년 300그루를 시작으로 매년 동백나무를 심고 있다. 한국지역난방공사의 도움도 컸다. 마을과 1사1촌 자매결연을 하고 5년 동안 매년 300∼500그루를 심었다. 2015년에는 아모레퍼시픽이 창사 70주년 행사를 동백마을에서 열어 70그루를 심었고 지금도 신입사원들이 제주 연수 때 1인당 한 그루의 동백나무를 심고 있다. 마을 진입로와 외곽길 등 20㎞ 구간에 동백길을 조성했는데 그동안 심은 동백나무만 3000그루에 달한다. 동백연구회는 최근 마을 토지 1200∼1300평을 매입했으며 이곳에 동백정원을 만드는 원대한 꿈을 펼치고 있다. “제주는 바람이 많아 예전부터 과수원 울타리 용도로 동백나무를 많이 심었어요. 하지만 고목이라 쓰러지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동백 군락을 우리 시대에 만들어 보자는 일념으로 동백정원을 만들려고 해요. 올해 우선 200그루가량 심을 계획입니다. 동백을 계속 심다 보면 제가 할아버지가 됐을 때쯤 또 다른 군락지가 완성되겠죠. 동백나무 심기는 후대를 위한 사업이고 제주의 환경을 지켜나가는 위대한 여정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여행자들이 관심을 갖고 동백마을을 찾아 주셨으면 좋겠네요.”

오동정 회장은 ●1971년 제주 서귀포 출생 ●서귀포 남주고 졸업 ●2008년 제주 남원 JC회장 역임 ●2013년 (사)동백고장보전연구회 대표 ●2010년 아모레퍼시픽 아리따운 구매협약 1호 협약 ●2019년 ㈜SK바이오랜드 행복동행협약 1호 체결 ●2014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 수상 ●2018년 제주형마을만들기 사업운영평가 대상 수상
 
최혜연 사무국장은 ●1972년 서울 출생 ●부산 덕문여고·충북대 생물학과 졸업·동 대학원 식물학 박사 수료 ●2013년 (사)동백고장보전연구회 사무국장 ●2014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 수상 ●2018년 농림축산식품부 ‘으뜸촌’선정 ●2021년 제1회 제주관광공사 웰니스 관광지 만남·즐김치유 분야 인증 획득

서귀포=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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