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 친북좌파 방송 아니냐고 할 거 알아서 조심했는데…"

장슬기 기자 2023. 2. 14.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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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진천규 통일TV 대표, KT 송출중단 조치에 "왜 국보법 위반을 법원 아닌 KT가 판단하나"
"조선 당국자, 한국 언론 비난에 해명 기회 없어 억울해해"…"있는 그대로 보여주자, 그들도 사람이다"
"북한을 조선으로 부르는 날, 통일이 다가온다"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 미디어오늘은 이번 기사에서 '남한'과 '북한'이란 표기 대신 1995년 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기자협회·한국PD연합회가 1995년 8월15일 제정(2017년 10월24일 개정)한 '평화통일과 남북 화해 협력을 위한 보도 제작 준칙'에 따라 '대한민국(한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으로 표기합니다.

“경애하는 최고 영도자 동지께서는”
“함께 몸소 나오시어”
“최고 영도자 동지 애국 헌신의 장정에”

TV조선과 채널A 등 보수 성향 종합편성채널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 매체 방송을 보도하면서 화면에 내보낸 자막들이다.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TV' 등 조선 매체에선 김정은 국무위원장 등 찬양이 기본 논조이기 때문에 일상적인 모습이다. 그럼에도 이를 문제 삼는 사건이 발생했다.

▲ 고민정 민주당 의원이 지난 9일 국회에서 준비한 종합편성채널에 등장한 북한 매체 방송 내용. 사진=FACT TV 갈무리

지난달 18일 오후 KT에서 직원 3명이 서울 중구 통일TV 사무실을 방문해 공문 한 장을 놓고 갔다. KT의 IPTV(인터넷TV) '지니TV'에서 통일TV 송출을 중단하고 계약해지 한다는 내용의 공문이다. 두시간 뒤 송출이 끊겼고 통일TV 임직원 14명은 일을 잃었다. KT는 공문에서 “김정은을 찬양하는 내용이나 북한 이념 및 체제의 우월성 선전에 관한 내용을 포함시키는 등 법적·국가적·사회적 공익을 저해하는 내용의 방송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송출해 왔다”고 했다.

이 내용이 알려지면서 통일TV의 존재도 모르던 시민들은 통일TV가 '조선 체제를 찬양했겠지'라고 의심하게 됐다. 국회에서 KT 측에 구체적인 송출 중단 사유를 묻자 KT는 고민정·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통일TV가 '이적표현물'을 방송해서 '국가보안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답했다.

KT는 구체적으로 “위대한 수령님” “위대한 장군님”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 유훈” 등 표현을 언급하며 “북한 체제·제도의 선전·미화·찬양, 사회주의 체제 선전·선동, 주체사상에 관한 표현 등 북한의 주장을 적극적이고 직접적으로 찬양하거나 이에 동조하는 표현이 그대로 송출”됐다고 했다. 조선의 방송이 기본적으로 체제를 미화하는 성격이 있는데 '그대로 송출'한 점까지 문제 삼은 것이다.

미디어오늘은 14일 오전 통일TV 사무실에서 진천규 통일TV 대표를 만나 송출중단·계약해지에 대한 입장과 대응, 조선을 취재하는 언론의 문제 등에 대해 물었다. 진 대표는 “종편에서는 진행자가 어떻게 얘기해도 들여다보지 않지만 통일TV는 토씨 하나만 삐끗해도 (국보법을) 적용할 걸 알기 때문에 조심했다”며 “법원이나 정부가 아니라 콘텐츠를 돈 받고 송출하는 KT가 왜 법적인 판단을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 진천규 통일TV 대표가 자신의 저서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를 들고 있는 모습. 사진=장슬기 기자

다음은 진 대표와 일문일답이다.

- 설마했는데 KT가 국회 답변에 통일TV 송출중단 사유로 '이적표현물'과 '국가보안법'을 언급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70여년 분단국가에서 상당히 예민하고 무시무시한 말이지 않나. 광화문에서 태극기들고 집회하는 분들이 쓰는 말인데 기업과 기업의 계약관계에서 썼더라. KT가 아무리 거대회사이고 우리가 손바닥만한 회사라 갑을관계라 하더라도 국보법 위반, 종북 등은 삼족을 멸하는 걷잡을 수 없는 수준인데 법원의 판단을 구해야 하지 않나. 한국전쟁, 적어도 30~40년 전에 쓰던 말을 썼다고 생각한다.”

- 조선에 대해 뭘 다뤘느냐보다는 누가 다루느냐의 문제로 보는 것 같다. 보수진영에서 다룰 때는 특정 프레임대로 편집하는데 보수진영이 아니거나 원하는 방향으로 다루지 않는 태도에 대한 반감이 있는 것 같다.

“동의한다. 보수매체에선 어떻게 방송해도 상관없다는 식이다. 종편에서 진행자가 어떻게 얘기해도 들여다보지 않을 거다. 통일TV 진행자도 다 안다. 토씨 하나만 삐끗해도 국보법을 들이댈 거다. 당신들 진짜 친북좌파 방송 아니냐고 할 거 안다. 그래서 조심했다. 우리가 하는 건 싫다고 하는 게 문제다. 그것도 법원이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도 아니고 사업 운영하는 송출회사가 어떻게 그럴 수 있나.”

- 구체적으로 보면 보수매체나 보수단체에선 김정은과 조선체제를 악마화하고, 거기서 탈출한 사람들을 한국에서 잘 보듬어주고 있다는 이야기로 편집하고 다른 종류의 이야기는 거의 방송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통일TV가 조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방송하겠다는 거다. 국보법이 있으니 정치·사상적인 내용은 다 방송할 수가 없다. 우리를 다 모니터링하고 있지 않겠나. 그래서 나부터 (정치 내용은) 배제하자고 말했다. 음식, 문화, 교육, 역사, 자연경관 이런 것만 방송한다. 여기에 무슨 사상이 있나. 그런데 그조차도 싫어하는 거다. 그러다가 살림집을 준공하는 이야기 중에 '경애하는 원수'라고 나오는 뉴스 내용가지고 (이적표현물이라고) 얘기한다.”

- KT에서 그 외에 이야기를 들은 건 없나.

“공문 한 장 말고는 없다. 살인자도 3심제 진행하지 않나. KT가 우리보고 '지속적으로 이적표현물을 방송했다'고 하는데 그러면 미리 알려주고 경고를 했어야 한다. 소명도 없이 선고하고 2시간 만에 사형집행했다. 전화 한통 없었다.”

KT가 공개적으로 통일TV의 국보법 위반 소지를 거론한 것과 달리 일부 언론보도를 보면 내부 사정이 반영된 정황이 있다. 서울신문 지난달 30일자 <KT, 통일TV 등 새 의혹 잇단 돌출… 포스코·KT&G도 '좌불안석'> 등의 보도를 보면 구현모 KT 대표이사의 연임을 결정하는 오는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연임을 반대하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KT는 민영화했지만 실질적으로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은 기업이었고, 국민연금의 반대표는 이전 정부 당시 임명된 현 대표를 이번 정부에서 내보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서울신문은 “통일TV 등록 허가를 받고 방송을 시작하는데 구현모 대표가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의심을 받는다”고 보도했다. 통일TV를 의혹으로 보도한 것을 보면 KT 대표 연임을 막으려는 세력이 통일TV 송출을 색깔론으로 문제 삼았고 이를 현 대표가 급하게 끊어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KT와 통일TV 계약서를 보면 별다른 조건이 없으면 매년 초 계약이 갱신된다. KT가 2023년 1월1일 갱신된 계약을 18일만에 해지했는데 이는 실무진 차원의 결정이라고 보기 어렵다.

▲ 진천규 통일TV 대표. 사진=통일TV 갈무리

- 조선 찬양 내용 관련 민원이 있었다고 들었다.

“지난달 10일 방통심의위에서 연락이 왔다. 방송 시작하고 처음이다. 이틀 전인 지난달 8일 방송이 '친북적'이라는 내용이다. 누군가는 조선의 상황을 보여주는 게 싫을 수 있는데 그러면 안 보면 될 일이다. 그런데 방통심의위에 신고를 했더라. 지난달 16일에는 처음 '시청자'라면서 한분이 (사무실로) 전화해 '우리 아들이 너무 좋아해서 통일TV를 보는데 조선찬양방송 아니냐'면서 항의하더라. 그리고 이틀 뒤에 KT가 송출을 중단했다.”

통일TV는 지난 8일 방송통신위원회에 진정서를 내고 필요한 시정조치를 요청했다. 곧 KT를 상대로 송출중단 등을 중단해달라는 가처분과 KT의 계약해지 등으로 입은 손해를 배상하라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 지난달 19일자 SBS 보도 등을 보면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이 '통일TV 등록허가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에 특혜를 받았다면 2019년 1월에 바로 등록해줬어야 하지 않나. 등록제인데 역사상 처음으로 국정원, 통일부, 외교부, 방통위, 과기부까지 다섯 개 부서 회람을 돌려서 다들 안 되는 이유들을 찾아오면서 두 번을 불허했다. 전문가 10명을 불러서 회의까지 했다. 2017년부터 준비해서 세 번째에 등록을 받아줘서 2022년 8월에 방송했는데 무슨 특혜냐.”

- 송출중단·계약해지 이후 통일TV 상황은 어떤가?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에도 심의 중이라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됐다. 투자도 좀 받기로 한 곳이 있는데 (투자하겠다는 말이) 쑥 들어갔다. 누가 하겠나. 지금 손해가 어마어마하다. 직원들 중에 엔지니어 등은 사직했다. 시청권도 시청권이지만 직원들과 그 가족들 관련업체까지 수십명의 생계가 달린 문제다.”

- 개인적인 얘기를 잠시 해보자. 조선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전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을 것 같은데.

“1988년 한겨레 창간 때 판문점 출입기자로 매달 군사정전회담을 취재했다. 국방부 출입기자랑 나랑 새벽 6시쯤 만나서 정부청사 앞에서 버스타고 판문점에 갔다. 그때 조선 사람들을 처음 보고 '그들도 우리와 말이 통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충격을 받았다. 조선 사람들이 '나 여기 뿔 달린 거 안보이냐' '얼굴 새빨간 거 안 보이냐'라며 놀리더라. 분단된 세월동안 마치 조선사람들이 사람이 아닌 것처럼, 뿔 달린 짐승들인 것처럼 왜곡했으니까 처음엔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그러다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계속 취재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양특파원이 내 꿈이었다. 2017년 방북취재를 개인 자격으로 시작했고 통일TV를 만들게 됐다.”

진 대표는 1988년 한겨레 창간기자(사진기자)로 조선 취재를 시작했고, 남북고위급회담과 2000년 6·15 정상회담 등을 취재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손을 잡고 들어올리는 사진을 찍었는데 교과서에도 실렸다. 2001년부터 미국으로 가 LA에서 미주한국일보에서 일했고 미국 영주권자다. 2017년 10월부터 개인 자격으로 조선 취재를 시작해 코로나로 국경이 막히기 전까지 총 16차례 조선을 취재했다. 그는 통일TV에서 하고 싶었던 것에 대해 더 설명했다.

▲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2000년 6월14일 목란관 만찬에서 역사적인 남북공동선언문 서명에 앞서 맞잡은 손을 들어올려 착석자들의 박수에 답하고 있다. 진천규 대표가 찍은 사진으로 교과서에도 실려있다. ⓒ연합뉴스

“있는 그대로 방송하고 판단은 국민들이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국보법 관련 내용은 다 뺀다. 예를 들어 요리프로그램을 보면 '감자지짐이' 같은거 나오는데 나도 배우고 싶다. 거기서도 요리 프로그램을 하냐고 묻는 분들이 있는데 그만큼 조선 사회에 무지한 것 아니냐. 단절돼서다. 우리도 요리프로그램, 먹방 하지 않나. 통일TV의 지향점은 그들도 같은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거다. 정치·경제체제가 다르지만 다른 부분은 빼고 같은 부분을 보자.”

- 윤석열 정부 들어 통일부가 조선 매체를 개방하겠다는 내용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어땠나?

“지난해 7월 용산 대통령실에 업무보고했는데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 개방하겠다고 했다. 전향적으로 남북관계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예지만 DJ정부때 일본과 문화교류를 한다고 하자 왜색문화가 들어온다고 비판이 많았지만 거꾸로 되지 않았나. 한류가 일본에 더 영향을 많이 끼쳤다. 국민들 수준대로 가는 거다. 조선 매체들을 개방하면 처음에나 호기심으로 보겠지만 사실 재미가 없어서 누가 볼지 모르겠다. 아마 통일부 관계자, 학자들, 관련 사업하는 사람들이나 볼 것 같다.”

- 종편에서 탈북자들이 나와서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해 발언하는 방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현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 증언을 들을 때 '언제'가 중요하다. 근데 방송에서는 '언제'가 거의 빠져있다. 오래전 얘기를 오늘 이야기처럼 하면 그건 과장이고 잘못이다. 일부 방송에 나오는 탈북자들은 한국 사람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잘 알고 있다.”

- 한국에서도 과거 군사정권 시절 이야기를 오늘 이야기처럼 하면 왜곡이라는 설명 같다.

“그렇다. 심지어 사람도 죽고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나. 게다가 탈북자가 3만8000여명인데 조선 인구를 2500만명으로 잡으면 0.2%도 안 된다. 0.2%가 나머지 99.8%를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조선이 싫어서 탈출한 사람들이다. 일부는 여러 이유로 조선에서 살 수 없어서 나온 사람들도 있다. 방송에 나오는 일부 탈북자가 전체 탈북자를 대변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 조선을 다루는 한국 언론의 문제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언론에서 조선을 비난해도 해명할 기회도 없고 문제 삼을 수 없다. 조선 당국자들은 굉장히 억울해했지만 방법이 없어 포기한 상태다. 내가 2017년 이후 통일TV 하겠다고 조선을 방문했더니 오히려 북쪽에서 '정치적 행사는 일절 취재하지 말라', '국보법 조심해야 한다' '진(천규) 선생, 금강산 같은 관광지 가고 음식·학교 이런 것만 취재하라'면서 걱정하더라.”

▲ 진천규 통일TV 대표 사무실에 걸려있는 조선 측 인사들과 교류 사진. 개인 자격으로 취재를 시작해 통일TV 설립에 대한 논의와 저작권 문제를 협의해왔다. 사진=장슬기 기자

- 조선에서는 '북한'이라는 말을 싫어한다고 들었다. 당사자들 입장을 반영하지 않고 한국 언론에선 북한으로 쓰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보고 '남조선'하면 싫지 않나. 조선에선 '북한'이라고 하는 거 더 싫어한다. 1995년에 언론노조 등이 만든 보도제작준칙이 있다. 거기 첫 번째 조항이 서로의 국명과 호칭을 제대로 불러준다는 내용이다. 통일부에서 나오는 자료 봐도 '북한'이라고 쓰지 않는다. 강연가면 나는 남녘·북녘, 한국·조선, 남한·북한을 섞어서 쓴다. 북쪽에 있는 한국이니 '북한'이라고 해놓고 대응하는 말을 정해야 하니까 대한민국이라고 못하고 남한이라고 하는 것 아니냐. 통일TV 대표프로그램이 '북녘의 하루'인데 '북녘'이란 말을 써도 되는지 변호사에게 자문까지 받았다. 어떤 변호사는 파격적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하루'로 하자는 얘기도 했다. '조선의 하루'로 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아직 '조선'을 쓸 때가 아닌 것 같다. 결국 나도 몸을 사려서 '북녘의 하루'로 결정했다. '북한'이 아니라 조선을 조선이라고 쓸 수 있는 날, 통일이 다가온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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