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풍경] 앨런 튜링과 지문의 비밀

한겨레 2023. 2. 14.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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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구글의 인공지능(AI) 언어 프로그램 람다(LaMDA)가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주장해 논란이 됐던 걸 생각하면 꽤 겸손한 답변이다.

튜링 테스트를 제안하고 2년이 지난 1952년 튜링은 학술지 <영국왕립학회보 b> 에 '형태 생성의 화학적 기초'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지난주 학술지 <셀> 에는 지문 형성 과정도 튜링 패턴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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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풍경]

지문은 손가락 끝마디의 세 지점에서 형성되기 시작해 물결처럼 퍼지다 만나면서 완성된다. 이때 확산 속도에 따라 독특한 지문 형태가 나온다. 지문의 융기(ridge)가 일정한 간격으로 형성되는 건 더블유엔티(WNT)와 비엠피(BMP) 단백질이 튜링 패턴을 보이며 서로 작용한 결과다. 더블유엔티의 농도가 높은 지점에서 융기가 생긴다. <셀> 제공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넌 튜링 테스트에 통과했니?’

‘나는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지 않았습니다.’

요즘 장안의 화제인 챗지피티(ChatGPT)를 써보다 문득 생각이 나서 물어봤다. 지난해 구글의 인공지능(AI) 언어 프로그램 람다(LaMDA)가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주장해 논란이 됐던 걸 생각하면 꽤 겸손한 답변이다.

1950년 영국 수학자이자 컴퓨터과학의 선구자인 앨런 튜링이 제안한 튜링 테스트는 기계가 사람과 구별할 수 없는 지능을 보이는가를 알아보는 시험이다. 챗지피티의 경우 한국어로 물으면 대답 속도가 느리고 내용도 짧고 어색하지만 같은 질문이라도 영어로 하면 꽤 길면서도 자연스러운 답을 바로 내놓는다. 솔직히 너무 빠르다는 걸 빼면 사람을 상대하는 것 같다.

튜링 테스트를 제안하고 2년이 지난 1952년 튜링은 학술지 <영국왕립학회보 B>에 ‘형태 생성의 화학적 기초’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튜링이 웬 화학 논문?’이라는 의문이 들지만, 막상 읽어보면 수학과 화학의 원리를 생물현상에 적용한 이론 연구다. 튜링은 형태소(morphogen)라고 부른 가상의 입자들이 간단한 수학적 관계식에 따른 상호작용을 통해 표범 무늬처럼 생물계에서 관찰되는 복잡한 패턴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였다.

지난주 학술지 <셀>에는 지문 형성 과정도 튜링 패턴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지문은 띠 모양의 융기(이랑)가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된 구조로 일란성 쌍둥이조차 세부 형태가 달라 개인을 식별하는 용도로도 쓰인다. 임신 13주 무렵부터 태아 손톱 끝에 닿은 지점과 두번째 마디와 닿은 지점, 끝마디의 중간 지점 등 세곳에서 패턴이 나타나 물결처럼 퍼져 나가다 만나 지문이 완성된다.

지문은 사람뿐 아니라 나무를 타는 영장류나 심지어 유대류인 코알라도 지니고 있다. 지문의 기능은 두가지로, 피부 표면의 미세한 굴곡이 나무를 잡을 때 미끄러지는 걸 방지하고 촉각을 예민하게 만든다. 사람과 침팬지, 코알라의 지장(指章) 사진을 두고 사람의 지문을 찾으라면 찍어야 할 정도로 비슷하다. 종에 관계없이 공통된 생성 메커니즘이 있다는 뜻이다.

지문 패턴을 만드는 형태소의 실체는 더블유엔티(WNT)와 비엠피(BMP) 단백질로 밝혀졌다. 더블유엔티는 비엠피와 자기 자신의 활동을 촉진하고(양의 피드백) 비엠피는 더블유엔티의 활동을 억제한다(음의 피드백). 이런 반응의 결과 더블유엔티와 비엠피의 농도가 물결치면서 주변으로 확산하며 피부의 이랑과 고랑이 형성되는 것이다.

튜링 패턴 논문이 발표되고 2년이 지난 1954년 튜링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나이 42살이었다. 동성애자임이 드러나 처벌로 화학요법을 받다가 우울증에 굴복한 것이다. 동성애를 들키지 않았거나 관련 법이 좀 더 일찍 바뀌었더라면 튜링의 이름이 들어간 이론이나 가설이 한두개는 더 나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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