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노벨상 작가 파무크의 분노
200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튀르키예 소설가 오르한 파무크가 에르도안 정권에 날을 세운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2016년 군부 쿠데타 미수사건 이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대규모 숙청에 나서자 " 사상의 자유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법치국가로부터 광속으로 멀어져 공포정치 체제로 향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2020년 이스탄불 아야소피아 성당을 모스크로 바꾸라는 에르도안의 명령에도 "나의 조국을 6세기 전으로 되돌렸다"고 비판했다.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세속주의가 헌법에 명시됐음에도 이를 지우고 이슬람주의로 회귀한 데 대한 반발이었다.
대지진으로 튀르기예가 '절망의 땅'으로 변하자 파무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는 미국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국민이 그렇게 화가 난 걸 본 적이 없다"며 지진 발생 이후 정부의 미진한 대응을 작심 비판했다. 정전과 통신망 혼선으로 도로가 폐쇄됐는데도 정부의 부실한 조치로 구호물품이 전달되지 않는 비극적인 상황을 묘사했다.
튀르기예를 강타한 규모 7.8의 강진은 금세기 최악의 재앙이다.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튀르키예는 지각판이 교차해 일찌감치 지진 초위험 국가로 분류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2002년 권력을 잡게 된 것도 1만7000명의 사상자를 낸 1999년 대지진으로 정권 심판론이 들끓으면서였다. 그래서 도입한 게 지진세였다. 지난 20여 년간 징수한 지진세는 약 5조90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정부가 눈감아준 내진설계가 안 된 불법 건축물들은 팬케이크처럼 무너져 내렸다. 이렇다 보니 "대체 돈을 어디에 쓴 거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지진에 대비하지 않고 20년간 철권통치를 일삼은 에르도안은 결국 지진으로 위기를 맞게 됐다. 파무크는 "지진만큼이나 군중을 절망하게 만드는 것은 '참혹하게 버려졌다는 감정'"이라며 "정부는 어디에 있냐"고 분노했다. 성난 강물은 배를 뒤집는다. '21세기 술탄'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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