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영 칼럼] '횡재세 논쟁'서 빠진 4가지
EU는 무역장벽으로 활용
이재명, '횡재세' 논쟁 불붙여
韓정유사, 원유 정제 수익을
탈탄소 시설 확충에 써야
"이산화탄소 감축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인데 탄소 배출이 많은 석유화학업계가 많은 돈을 벌어서 아이러니하다."
지난달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만난 유럽 모 회사의 경영자는 이를 '코로나 시대의 역설'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말처럼 한국 기업들이 작년 휘발유 등 석유를 정제해 수출한 금액이 570억달러에 달했다. 자동차(530억달러)를 제치고 반도체에 이어 수출 2위를 기록한 것이다. 정유사들은 성과급을 대거 풀었다. 월 기본급의 1000%를 지급한 곳도 있으며 기본 연봉의 50%를 지급한 정유사도 나왔다.
그러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횡재한 정유업계에 국가가 '횡재세(windfall tax)'를 부과해 국민들의 난방비 부담을 줄여주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다른 나라도 횡재세를 시행 중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 대표의 발언은 4가지 측면에서 사실과 다르거나 설득력이 떨어진다.
첫째, 횡재세는 영국과 유럽연합(EU) 일부 회원국을 중심으로 도입된 제도다. 영국의 경우 북해유전에서 원유와 가스를 채굴하면서 석유회사들이 얻은 초과 이윤에 대해 매겨진다. 그러나 한국에는 100% 수입한 원유를 정제한 후에 휘발유로 만들어 파는 정유회사가 있을 뿐이다. 영국도 정유사업에는 횡재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둘째, 횡재세를 도입한 나라들은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타국에 비해 높았다. 그러나 한국은 전체 원유 수입의 60%를 중동에서 가져오고, 나머지 20%도 미주 등지에서 들여오고 있다. 유럽과는 달리 에너지 수급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작았다.
셋째, 난방비와 직접 연동되는 에너지원은 LNG(액화천연가스)다. 한국가스공사가 국내 LNG 공급의 80%를 맡고 있으며 난방 관련 업무는 한국지역난방공사가 담당한다. 국내 정유사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넷째, 일관성이나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정유업계가 이익을 낼 때 횡재세를 거두게 된다면 손해가 날 때는 세금으로 일정 부분 보전해주는 것이 세금제도의 일관성에 맞는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주요 정유회사 4곳이 수조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을 때 정부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 다른 업종과의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이재명 대표의 논리를 확장한다면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서 반도체 가격이 폭등한다면 반도체회사들에도 횡재세를 물려야 한다.
지금 한국의 주력 제조업은 대전환 시기를 맞았다. 가장 큰 변수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급격한 탈탄소 전환 움직임이다. 특히 유럽은 이를 무역장벽으로 활용하려고 나섰다. 과거 석유화학 분야에서 세계를 주름잡았던 유럽이 '탈탄소'라는 무역장벽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이는 탄소 배출이 많은 한국의 석유화학과 철강 등 주력 업종에는 직격탄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한국 정유업계는 뜻밖에 생긴 수익을 탄소 배출 저감과 사업구조 전환을 위한 재원으로 써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 따라하기 어려운 신기술을 활용해 신제품을 개발해야 한다.
아울러 디지털 전환 붐이나 데이터에 기반한 스마트공장 건설 흐름은 아날로그 제조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한국의 제조공장들에 또 다른 도전이다. 한국 주력 산업이 전환과 업그레이드를 서두르지 않으면 10년이나 20년 후에는 쇠락할 수밖에 없다.
한국이 그동안 제조업에서 어렵게 쌓아올린 위상이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는 지금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정치인들의 선동적인 발언이다.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고,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해 섣불리 제도를 바꾸도록 해서는 안된다.
[김대영 산업부장 겸 지식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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