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마 합법화한 샌프란시스코가 주는 교훈

김양혁 기자 2023. 2. 1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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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엔 널브러진 주사기와 풀 타는 향이 가득 찼다.

미국은 지난 1996년 처음으로 의료용 대마를 합법화한 데 이어 일부 주들이 기호용 대마까지 허용하기 시작했다.

대마 합법화로 대마를 찾는 이들이 폭증한 반면, 주 당국의 까다로운 영업 허가 심사로 공급이 수요를 쫓지 못한 결과다.

길거리에서 대마 같은 마약 거래가 활성화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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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혁 기자.

거리엔 널브러진 주사기와 풀 타는 향이 가득 찼다. 정체 모를 패치를 붙인 사람들은 동공이 풀린 채 거리를 이리저리 어슬렁거렸다. 지난 1월 출장길에 들른 미국 샌프란시스코 도심 한복판엔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디스토피아’ 같은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인적이 드문 이른 아침과 저녁에는 거리를 활보하기 어려울 정도다. 머릿속에는 서둘러 거리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발걸음은 계속해서 빨라졌다.

샌프란시스코는 한때 미국의 대표적인 낭만과 기회의 도시로 불렸다. 19세기 골드러시로 미 서부의 대표 대도시로 성장했고 랜드마크인 금문교를 기대하며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 유학생이 많이 몰리는 도시로 떠올랐다.

지금의 샌프란시스코는 마약과 부랑자들로 대표되는 도시로 전락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대낮 거리에서 마약을 하는 사람은 물론, 마약 거래 현장을 보여주는 게시물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시민의 발’인 버스 정류장은 어느새 주요 마약 거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도시의 이런 급격한 변화는 지난 2018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캘리포니아주가 당시 1월부터 기호용 대마를 합법화하면서다. 미국은 지난 1996년 처음으로 의료용 대마를 합법화한 데 이어 일부 주들이 기호용 대마까지 허용하기 시작했다. 음지에 있던 대마 시장을 양지로 올려 마약 밀매를 줄이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책임과 의무가 따르지 않는 자유는 방종으로 이어졌고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이던 대도시를 나락에 떨어뜨렸다.

대마는 입문용 마약으로 불린다. 일단 시작하면 코카인, 헤로인 등 강도가 높은 약물을 찾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미국 현지 언론은 해마다 대마 암시장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마 합법화로 대마를 찾는 이들이 폭증한 반면, 주 당국의 까다로운 영업 허가 심사로 공급이 수요를 쫓지 못한 결과다. 허가를 받지 않은 대마는 가격도 싸다. 길거리에서 대마 같은 마약 거래가 활성화된 배경이다.

한국도 대마 도입을 앞두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4년 12월까지 관련 법을 개정해 의료용 대마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식의약 규제혁신 100대 과제에도 포함됐다. 제조·수입 허용에 따른 사회·경제적 편익을 분석하는 연구도 병행할 계획이다. 대마 시장 개방 전 관리 대책은 아직 구체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약류 통합망을 통해 제조부터 사용, 처방까지 디지털망에 보고되는 시스템을 갖춰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마저 내비치고 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허가한 국내 대마 재배 면적은 총 511.0489헥타르(ha)에 이른다. 지난해 자료이니 올해는 더 늘었을 수도 있다. 실제 2021년에만 전년보다 4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채취 수량은 5599㎏에 이른다. 대마 1㎏은 1회 흡연분 0.5g 기준 약 2000번 흡입할 수 있는 수준이다.

식약처는 대마 재배 농가 관리·감독은 지자체 소관이라며 뒷짐을 지고 있다. 지자체별 관리·감독 인원은 천차만별이다. 관련 규정이 없는 곳도 있었다. 연간 점검 횟수는 두 차례에 불과하다. 대마 재배지는 특성상 산골, 오지가 많다. 그래서 도난 위험이 크다. 디지털망만 믿고 있다가는 큰코 다칠 수 있다. 대마 도입 전 제대로 된 관리 대책부터 내놓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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