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혁 녹색병원장 “차별 없는 진료하려면 노동자·노조 보호해야”

전종휘 2023. 2. 1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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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이 '공공의 적'이 된 세상이다.

임상혁(58) 녹색병원장은 "모든 환자한테 차별 없는 진료를 하기 위해선 병원이 노동자들을 차별해선 안 된다. 노동조합에 가입할 권리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임 원장은 56명 직접고용에 나선 배경에 대해 "녹색병원은 차별 없는 진료를 표방한다. 이를 위해선 우리 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차별받아선 안 된다. 병원 경영이란 같이 일하는 직원의 노동권을 보호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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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사 등 56명 직접 고용
대부분 노동조합에도 가입
“소속감 생기고 심리적 안정”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이 지난 10일 오전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 원장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 원장은 최근 외주업체 소속 노동자 56명을 직접 고용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노동조합이 ‘공공의 적’이 된 세상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노조를 부패세력으로 몰아세우고 산업현장의 평화를 깨는 폭력집단, 기득권 집단으로 몰아세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겠다면서 정작 노조를 혐오하는 목소리가 넘쳐난다. 그런 중에 다른 시도를 하는 노동 현장이 있다. 원진재단 부설 녹색병원은 평등한 노동을 기치로 내걸고 최근 1년 반 새 외주업체 소속이던 요양보호사, 조리사, 환경미화 노동자 56명을 직접 고용했다. 이들 대부분은 노동조합에도 가입했다. 임상혁(58) 녹색병원장은 “모든 환자한테 차별 없는 진료를 하기 위해선 병원이 노동자들을 차별해선 안 된다. 노동조합에 가입할 권리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10일 <한겨레>가 서울 중랑구에 있는 녹색병원에서 임 원장을 만났다.

임 원장은 56명 직접고용에 나선 배경에 대해 “녹색병원은 차별 없는 진료를 표방한다. 이를 위해선 우리 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차별받아선 안 된다. 병원 경영이란 같이 일하는 직원의 노동권을 보호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별 없는 일터’와 함께 노동권의 핵심을 이루는 건 노조에 가입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라는 게 임 원장의 설명이다. 녹색병원은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직업병 투쟁의 성과로 만들어진 원진직업병관리재단이 2003년 설립한 민간형 공익병원이다.

임 원장은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그리고 소속 정규직 노조인 녹색병원지부와 뜻을 모아 2021년 7월 사회적 협동조합 도우누리 소속 요양보호사 일자리 13개를 직접고용으로 바꿨다. 조합 소속 요양보호사 5명이 전환에 동의했고 8명은 추가로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이런 식으로 2022년 1월 조리사와 영양사 일자리 18개, 올해 1월 미화원 16개 일자리를 직접 고용하는 것으로 바꿨다.

처음엔 병원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적잖았다. 정규직으로 신분이 바뀐 노동자들이 업무지시를 잘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점, 비용이 크게 오를 것이라는 점 등이다. 우려와 달리 결론적으로는 “근무 태도가 더 좋아졌다”고 임 원장은 말한다.

정규직화 뒤 노동자들의 임금이 많이 오르진 않았다. 5∼9%가량 올랐다고 녹색병원 쪽은 설명했다. 하지만 고용이 안정되고 신분이 보장되는 이점은 노동자들한테 마음의 안정을 준다. 환경미화 노동자들의 정년은 65살로 높였다. 정년퇴임 이후엔 1년 단위 촉탁직으로 쓴다. 현재 녹색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 565명 가운데 521명이 정규직이다. 43명이 기간제 노동자인데, 정년퇴임 뒤 촉탁직으로 ‘계속 고용’하는 이들이 21명이고 나머지는 육아휴직 대체자를 비롯해 계절적 업무를 하는 이들이다.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이 지난 10일 오전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 원장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노동자들의 만족도는 대체로 좋은 편이다. 정규직이 된 요양보호사 김미정(57)씨는 “파견을 나오다 정규직이 되자 녹색병원에 소속감이 생기고 심리적인 안정감이 커졌다”며 “조금 더 쉬어도 일정한 월급을 받는 덕에 연차휴가를 마음껏 쓸 수 있는 자유가 생긴 것도 좋다”고 말했다. 조윤찬 녹색병원지부장은 “정규직화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전환돼 조합원이 된 분들한테 ‘아프면 쉴 권리가 중요하다. 이젠 정시 출근, 정시 퇴근하시라’고 했다. 그분들의 권리니까”라고 말했다.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녹색병원엔 진료 때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이 많지 않다. 그만큼 과잉진료를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정규직화 과정에서 상승한 비용을 추가로 확보하는 것도 만만찮다는 게 임 원장의 설명이다. 다만 여러 노동조합이 지원하는 기부금과 연대기금은 큰 힘이 된다.

오는 9월 녹색병원은 개원 20년을 맞는다. 임상혁 원장은 “주차장 자리에 필수의료를 맡는 신관을 지으려 한다. 이를 위해 20억원가량 모금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 녹색병원은 어떤 병원?

녹색병원은 1970∼90년대 합성섬유 제조공장 원진레이온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인체에 치명적인 이황화탄소에 장기간 노출돼 2023년 현재까지 300여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산업재해로 질병에 걸린 사건에서 비롯한다. 살아남은 노동자들도 뇌경색, 말초신경 손상, 콩팥 손상과 사지 마비, 정신 이상 등으로 고통받았다. 원진레이온은 1993년 6월 문을 닫았다. 이후 피해 노동자와 가족들을 위해 비영리법인 원진재단이 설립됐고, 재단 부설로 경기 구리에 녹색병원이 문을 열었다. 2003년 9월 서울 중랑구로 자리를 옮겼다.

녹색병원은 운명처럼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와 지역 주민에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 제공을 지향한다. 상처받고 지친 노동자들이 많이 찾는다. 특수고용직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를 비롯한 비정규직과 의료 서비스에 접근하기 힘든 이주 노동자들이 단골 손님이다.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하청지회 부지회장, 이봉주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화물연대 위원장 등 오랜 단식 투쟁을 끝낸 노동자들이 대부분 찾는 곳이 녹색병원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전체 400병상 가운데 80개 병상을 코로나 환자에 내어줄 만큼 지역거점병원으로서의 구실에 충실하려 애쓴다. 현재도 35개 병상을 코로나 환자를 위해 비워놨다. 국내에선 처음으로 병원에 인권치유센터를 열어 난민·성소수자, 국가폭력피해자 등 의료서비스에서 소외된 사회적 약자를 위해 필요한 의료를 제공하고 의료비 지원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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