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여의도 정치, 시대에 역행하고 있다

2023. 2. 14.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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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권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권위주의 땐 장외정치 불가피
총재와 측근 중심 위계적 정당
민주당의 장외전략은 퇴행적
여당의 당내 민주주의도 위험
대통령실 경선 개입은 악선례
현재 정치지형은 유지될지 의문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 정당정치의 거대한 흐름 가운데 하나는 장외정치를 장내로 불러들여 국회를 포함한 제도권 내에서 소화하고, 제도권 정치의 핵심 기구인 정당이 민주적으로 운영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국회 중심의 제도권 정치와 당내 민주주의가 지금 당 대표 사법 리스크에 휩싸인 더불어민주당과 당 대표 선출을 앞두고 내홍에 휩싸인 국민의힘에 의해 동시에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민주화 투쟁에 매진하던 야당에 대해 여당과 머리를 맞대고 국회에서 상의하고 협력하라고 하는 주문은 투쟁의 예봉을 무디게 하는 사이비 전략으로 받아들여졌다. 태생적으로 비민주적인 정권과 국정을 함께 논의하는 것은 민주화 쟁취라는 선명한 명분을 통해 지지세를 확보해 온 야당으로서는 고려할 수 없는 선택지였다. 그래서 기댈 곳이라곤 없었던 신민당이나 신한민주당 등 제1야당은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장외전략에 의존해 반정부 투쟁에 임했다. 이 과정에서 야당은 총재를 중심으로 뭉쳐 권위주의 정권에 대항해야 했고, 당의 사무는 총재와 가신(家臣)을 중심으로 철저히 위계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987년 민주화의 물꼬가 트이고 그 후 2000년대 초반에 이르러 3김이 퇴진하면서 당 총재 제도가 사라지자, 정당은 중앙집권적 운영에서 벗어나 더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권력의 분산을 지향하는 당내 민주주의의 경로를 밟아 나가기 시작했다. 정당의 장외정치 역시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물론 광화문이나 시청 앞에서 대규모 집회가 자주 개최됐고, 이러한 시위가 한국 정치의 변곡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각종 집회나 시위는 여야 정당보다는 시민이 주도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정당은 오히려 광장의 정치를 따라가는 형편이었다. 정당의 장외집회 참여는 정당 본연의 영역인 국회를 벗어나 국정을 방치한다는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어 여야 정당으로서도 쉽지 않은 선택지였다.

그런데 지금 169석으로 거대 야당인 민주당과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이 민주화의 성과인 제도권 정치와 당내 민주주의를 손상하면서 기약 없이 표류하고 있다. 우선, 거대 야당인 민주당은 대정부 장외투쟁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손을 내밀고 말았다. 대정부 장외투쟁을 통해 내적 단합을 도모하고 이재명 대표를 둘러싼 검찰의 수사로부터 국민적 이목을 윤석열 정부의 과실로 전환해 보려는 의도가 다분히 있다고 보인다. 장외정치에 대해 민주당 내에서 반대 목소리도 들리지만, 일종의 정당 총동원 체제 아래에서 합리적 판단과 상식의 목소리는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장외정치를 청산하고 대의민주주의를 토대로 제도권 정치를 활성화하려 했던 민주화 이후의 부단한 노력과 성과가 거대 야당이 스스로 택한 장외투쟁 전략으로 인해 무색해지는 형국이 됐다.

한편, 국정을 책임지는 집권 여당의 당 대표 선출 과정은 3김 퇴진 이후 당내 분파 정치의 우여곡절 속에서도 유지돼 온 당내 민주주의에 심각한 손상을 줬다. 대통령실의 집요한 선거 개입성 발언으로 인해 당 대표 후보 클린업 트리오 가운데 이제 안철수 후보 한 사람만 남는 상황이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안 의원을 겨냥해 ‘국정 운영의 방해꾼’ 등의 표현을 사용하면서 참모들에게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는 보도도 나왔다.

현직 국회의원이 대통령 선거 캠프에 직접 몸을 담는 우리나라 정치의 현실에서 대통령을 여당에서 떼어내는 당·정 분리는 원래부터 성립되기 어렵다. 그러나 비록 간접화법일지라도 당 대표 선출을 포함한 여당의 주요 업무에 대해 대통령의 분명한 입장을 전달한 이번 사례는 당내 의사소통 채널을 경직시켜 그만큼 당내 민주주의를 퇴행시킨 선례를 남겼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렇게 기약 없이 표류하는 두 정당이 당 대표 선출, 이재명 대표 검찰 수사, 2024년 총선을 거치는 항로에서 당 안팎의 난제를 극복하고 그런대로 순항할지, 아니면 도중에 좌초하거나 아예 난파하지나 않을지 무척 궁금하고 또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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