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도 역량입니다

2023. 2. 14. 09:4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림으로 만나는 나와 우리
인공 지능이 연일 화제다. 인간만이 창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인공 지능은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모든 면에서 인간을 대체하고 있다. 편리에 앞서 불안해진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해야 내 고유의 능력을 발휘하고 지켜갈 수 있을까. 기계가 하지 못하는 것, 아무리 방대한 정보를 순식간에 직조해도 짜내지 못하는 그 무엇, 그것을 찾아야 한다.

비오는 날 엄마 없는 아기 고양이 한마리를 보고 발을 동동 구르는 마음, 친구의 힘든 이야기에 가만히 어깨를 툭툭 쳐주는 마음, 봄이 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꽃이 필 때 함께 피는 마음, 바로 그 마음에 답이 있다. 사람만이 지니는 다정한 온기, 감성이다. 감성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우리는 살면서 그것이 내 안에 있다는 걸 잊었다. 때론 무시했다.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강해야 해, 감성은 사치야, 앞만 보고 달려도 뒤처질 판에 말랑한 심장은 도움이 안돼! 우리는 그렇게 강한 사회인이 되어갔다.

그런데 강하다는 건 무엇일까. 일을 잘하고 리더가 되고 계속 일을 잘해도 결국 언젠가 약해지는 게 인간의 모습인데 우리는 계속 강강강으로만 살아온 것 같다. 마치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약점이 노출되어 공격받는다고 여겼는지 몰랐다.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는 인류 문명의 시작을 부러졌다 붙은 흔적이 있는 정강이뼈라고 말했다. 동물의 세계에서 다쳤다는 건 곧 죽음을 의미하지만, 부러졌다 다시 붙은 뼈는 누군가 도왔음을 의미한다. 누군가 힘들 때 그 아픔을 공감하고 도와주는 것, 그게 진짜 문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과연 함께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나. 모든 걸 경쟁하고 비교하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더러 동료도 잃고 친구도 잊어버렸다.

그런데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멈춤과 거리두기의 시간 속에서 놀랍게도 우리는 성찰했다. 삶에 진짜 무엇이 중요한지 깨달았다. 매일 가기 싫어 죽을 것 같던 직장, 나만 미워하는 것 같던 상사도 바이러스 앞에 한갓 나약한 인간임을 깨달으며 서로 한 팀이 되어 조심 조심 괜찮아 괜찮아 응원하고 격려하고. 서로 존재의 감사를 깨달으며 함께 극복했다. 그리고 다시 인공 지능의 무서운 기세 앞에 손잡고 선 것이다. 이렇게 따뜻하게 손을 잡는 일, 함께 하겠다는 약속, 이제 ‘감성 지능’은 탁월한 역량이 됐다.

<그림과 글이 만나는 예술 수업>이 신한은행 부서장 연수 프로그램으로 선정되어 처음으로 기업 임원들을 만났다. 솔직히 연수 제안 받았을 때 놀랐다. 예술, 그것도 감성 교육이어서다. 기업은 경영 등 실용 학문이나 자기 계발에 중점을 두지 낯선 예술 감성 교육에 다가오기 쉽지 않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 밝은 이는 미래를 본다. 업계 수위는 그냥 되는 것은 아니구나 감탄했다. 앞으로 우리가 갖춰야 하는 역량으로 공감과 공존을 기획했고 그걸 구현하는 방식으로 예술 감성 강의를 추진한 것이다. 기업이 감성 경영의 필요성을 알고, 미래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것이라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금 더 크게 보자면,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금융인들이라 메마른 감성일거라 걱정했는데 예술 앞에 본모습이 드러났다. 그림 한 점을 보며 3분 응시, 15분 기록을 충실히 함께 했는데, 역시나 놀라운 글들이 쏟아졌다. 우리는 모두 계기가 없었을 뿐 짧은 글 속에 살아온 인생이 콩주머니 터지듯 흘러나왔다. 머리 희끗해진 어른이지만, 그림 한 점 앞에 우리는 모두 초심자입니다! 열 살처럼 맘껏 보고 자유롭게 표현해주세요! 했더니 그때부터 봉인이 풀렸다. 발표 시간에 서로가 쓴 글들을 함께 들으며 미처 그동안 알지 못했던 따뜻한 마음,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 내놓기 어려운 불안까지도 이해할 수 있었고, 또 깊이 공감했다. 그림을 함께 본다는 건 시선의 전환을 가져오고 시점이 유연해지며 시야가 확장되는 일이다. 그 자리에서 공감이 큰 강처럼 맑고 깊게 흘렀다.

이번 연수의 키워드는 공존이었다. 나는 공존이 우리가 남이가! 으쌰으쌰 억지로 하나됨을 말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긍정하고 수용할 때에 진짜 함께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공존은 다름을 껴안는 일이다. 내가 틀릴 수도 있음을 아는 일이다. 그림 한 점 함께 보고 나누는 이야기로 우리는 금세 깨닫게 된다. 인공 지능이 아무리 활개쳐도 감성으로 서로를 안아주는 우리 인간을 꺾을 순 없다고. 다정한 온기를 이길 순 없다고.

“평생 0과 1사이에서 살았어요. 그런데 오늘 함께 예술을 접하며 넓고 다양한 세계를 본 것 같아요. 제 시야가 엄청 확장되는 경험이었습니다.”

수원시립미술관의 전시를 보고 내 마음에 닿은 한 작품 고르기 후에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한 부서장님의 진심어린 이야기에 모두 끄덕끄덕, 깊이 공감했다. 늘 말하지만 예술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림 한 점에서 길어올리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들, 일상의 언어로 표현하는 사유와 통찰이 진짜 삶의 철학이다. 어려운 그림, 난해한 예술은 없다. 모든 예술의 주체는 ‘나’이고, 삶의 주인도 ‘나’이기 때문이다.

이번 연수 프로그램을 함께 하며 중년 남자는 감성이 메말랐을 거라는 선입견이 깨졌다. 또한 금융은 차갑다는 편견도 깨졌다. 어떻게 우리에게 더욱 가깝고 편하게 공존할 수 있을까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심지어 예술 작품이 발상의 전환을 가져와 새로운 기획의 영감이 됐다고 기뻐하셨다. 누군가 말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쉽다! 그렇다. 이제 감성은 인공 지능을 넘어 미래를 이끌어갈 역량이 된 것이다.

수원시립미술관 에리빈부름전에서
임지영 (예술 칼럼니스트 / 즐거운예감 대표)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