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성장시키고 망가트리는 챗GPT
주차장으로 가서 차에 시동을 걸고 아이폰을 켠다. 영국 런던의 라디오뉴스 앱을 튼 후 T맵을 켠다. 목적지는 학교 연구실. 헤드라이트를 켠 후 런던 라디오뉴스와 T맵의 내비게이션 안내 소리를 동시에 들으며 클러치를 밟고 1단 기어를 넣은 후 학교로 출발한다. 거의 매일 이루어지는 나의 일상이다.
나는 10여 년 전에 산 수동 자동차를 몬다. 영국 살 때 8년 동안 수동 자동차를 몰았던 터라 귀국한 후에도 수동 자동차를 사서 지금까지 탄다. 영국 살 때는 창문도 손으로 올리고 내리는 차를 몰았다. 자동 세차라도 하려면 사이드미러는 당연히 차에서 내려 꺾어야 했다. 그나마 지금 차는 창문이 자동이다.
언뜻 나를 아날로그만 좋아한다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다. 아직도 수첩과 펜을 가지고 다녀서 그런가? 내가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웬만하면 내가 제어할 수 있어서다. 전자 부품이 덜 들어가 싼 이유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취향보다도 설명하기 다소 미묘한 복잡한 것이 섞여 아직은 그걸 쓴다고 할 수 있다.
1998년 영국 버밍엄대학교 공대를 다닐 때, 학교 지하 컴퓨터실에서 코딩과 컴파일을 반복하며 챗봇을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알고리즘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프로세스로 내가 묻는 말에 대응되는 대답이 나오도록 했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챗GPT를 쓴다.
처음에는 챗GPT 무료 버전을 사용했다. 그러다 잠시 한 달에 45달러 유료 버전이 나온 적이 있었다. 나중에 구글처럼 무료 서비스를 할 것으로 생각했고, 너무 비싸다고 생각해 등록을 안 했다가 땅을 치고 후회했다. 유료버전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가 유료 버전 등록을 할 수 있을지 확인했다.
드디어 얼마 전 한 달에 20달러 챗GPT 유료 버전이 나왔다. 한동안 미국 거주자만 유료 버전을 등록할 수 있다가, 며칠 전 우리나라 거주자도 등록할 수 있게 되어 바로 등록했다. 유료 버전을 등록한 후 이런저런 실험을 하며 매일 챗GPT를 학대하고 있다.
나는 대학에서 2019년부터 컴퓨터보조번역(Computer Assisted Translation, CAT)을 가르친다. 말이 컴퓨터보조번역이지, 실제는 인공신경망 기계 번역이다. 쉽게 얘기해서 AI로 번역한 것을 사람이 후처리하는 것이다. 과거 우스꽝스럽다고 천대받던 구글 번역기의 현재를 무시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번역의 패러다임이 바뀐 지 오래다.
챗GPT를 사용하며 느낀 건 내가 필요한 것을 얻는데 신속하게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지치지도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정말 아무 때나. 도움받았다고 미안해할 필요도 없다. 마치 내비게이션 같다. 처음 가보는 곳도 내비게이션만 켜면 가면 갈 수 있다. 처음 가는 외국에서도 내비게이션만 있으면 못 갈 곳이 없다. 문제는, 그만큼 게을러진다는 것이다.
영국 살 때 내비게이션이 없었다. 어딘가를 가려면 며칠 전부터 큰 지도책을 펼쳐놓고 공부해야 했다. 손등에 사인펜으로 고속도로에서 어디로 빠져나갈지 적었다. 운전대 위에 지도를 올려놓고 운전한 적도 있다. 옆에 누가 타면 내비게이터 역할을 하라고 하고, 길을 잘못 들어서면 옆 사람에게 화를 냈다. 그런 수고를 하고 나면 길을 기억한다. 나중에는 지도가 없어도 기억을 더듬어 대충 찾아간다.
집에서 학교 연구실까지 6㎞ 남짓. 지난 4년 동안 천 번을 넘게 오갔다. 길을 모를까? 그런데도 늘 내비게이션을 켠다. 기억하는 게 귀찮아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챗GPT를 사용하며 영국에서 배운 정통 연구방법을 벗어나는 기분도 들 때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진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더 크다. 마치 처음 구글이 나왔을 때처럼.
챗GPT의 장점이 있다. 예컨대 최근 중학교 예술교육 관련 연구를 하며 톡톡히 도움을 받았다. 평소에는 잘 생각하지 않는 분야의 지식을 챗GPT의 도움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연구 경력 20년 차의 노하우를 십분 활용하여 여러 관련 자료를 추가 조사한 후, 누구나 이해할만한 상식선에서 글을 재구조하고 재기술하였다.
처음 구글 검색이 나왔을 때, 이제는 노하우(know-how)가 아니라 노웨어(know-where)가 중요하다는 말이 유행이었다. 하지만 챗GPT가 나온 이후, 단언컨대 인간과 AI의 협업인 노콜라보(know-collaboration)가 대세가 될 것이다. 남들 다 자동차 타고 서울에서 부산 갈 때, 굳이 말이 끄는 마차를 고집할 이유는 없다. 가끔 기분전환 할 때 빼고는.
정채관 국립인천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교육과정본부 및 평가본부 부연구위원) | 《원자력 영어: 핵심 용어 및 실제 용례》, 《4차 산업혁명과 미래 영어교육》, 《내 아이와 영어산책: 영잘알 부모의 슬기로운 영어 공부법》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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