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 주석 사임에도 굳건한 베트남[가깝고도 먼 아세안](5)
새해 벽두부터 베트남 국가주석의 갑작스러운 사임으로 베트남 정가가 술렁이고 있다. 베트남에 진출한 9500여개 한국 기업들은 베트남 정치가 불안정하지 않은가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베트남 신규 투자를 재검토하는 곳들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걱정할 필요 없다’.
베트남 경제개혁을 이끈 경제 전문 관료로서 친시장주의자이고 친서방파로 분류되는 응우옌 쑤언 푹(Nguyen Xuan Phuc) 국가주석이 지난 1월 17일 돌연 사임했다. 국가 최고 권력자가 임기 중 사퇴한 것 자체가 예사롭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베트남 정국에 혼란은 없다. 중국은 시진핑이라는 국가 권력자 한 명에 의해 모든 국가 정책 방향이 결정되지만, 베트남은 집단 지도체제이기 때문이다. 권력 서열 ‘빅(Big) 4’로 불리는 공산당 서기장(서열 1위), 국가주석(2위), 총리(3위), 국회의장(4위)을 중심으로 또 다른 14명의 정치국원이 함께 국가 중대사를 결정한다. 따라서 새로운 주석을 선출할 5월까지는 국정 운영에 별문제가 없다.
‘대형 뇌물 스캔들 책임’ 푹 주석 사임
푹 주석은 일신상의 이유로 사임했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2016~2021년까지 푹 주석이 총리로 재임하던 시절 발생한 대형 뇌물 스캔들에 대한 책임이다. 푹 주석 사임 이전 외교 부총리와 교육노동보건 부총리 2명이 대형 뇌물 스캔들로 해임됐고, 장관급 인사 3명이 구속됐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해외에 거주하는 자국민들을 특별 귀국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한 우리돈 수백억원에 달하는 ‘전세기 뇌물 스캔들’과 엉터리 코로나19 진단키트를 터무니없이 부풀려 공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뇌물 스캔들에 대한 조치다. 당시 행정부 총책임자인 총리로서 푹 주석 본인이 임명한 부총리와 장관들에 대한 관리·감독 소홀에 따른 연대 책임 차원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더해 베트남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인 반 띤 팟(Van Thinh Phat) 회장이 2018년부터 사이공 상업은행(Saigon Commercial Bank)으로부터 담보나 지급보증 없이 25조베트남동(약 1조3000억원)을 대출받은 사건으로 2022년 10월 전격 구속됐다. 불법 대출 스캔들에 연루된 사이공 상업은행의 고객들은 현금 인출을 위해 각 은행 지점에 길게 줄을 섰고, 베트남 정부는 뱅크런을 막기 위해 예금 전액 보장을 추진하느라 애를 먹었다. 푹 주석이 베트남 국내 문제 전반을 관장하는 총리 시절 관리·감독해야 했던 일들이 터져 나오며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국가 권력 서열 2위의 주석과 부총리 2명, 장관 3명과 굴지의 대기업 회장까지 모두 정리된 이번 반부패운동의 중심에는 2012년부터 2023년 현재까지 12년째 반부패운동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응우옌 푸 쫑(Nguyen Phu Trong) 당 서기장이 있다. 쫑 서기장이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부패, 권한 남용, 횡령 등 경제범죄 1만6000여건을 적발했다. 관련자 3만3000여명을 기소했다. 공산당원은 16만8000명이 비리 혐의로 징계를 받았다. 이중 7000여명은 형사처벌을 받았다. 일부 외신에서는 부패와의 전쟁을 이용해 강경보수주의자인 쫑 서기장이 정적들을 제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표한다. 영국, 프랑스, 독일 외신은 대체로 베트남 통신사의 보도 내용을 전달하는 수준인데, 일본 언론에서는 친시장 경제주의자인 푹 주석이 실각하면서 외국 투자가 줄어들 수 있어 베트남 경제가 위태롭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적극 표출 중이다. 베트남에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일본 기업 활동에 어려움이 생길까봐 염려하는 듯하다. 일본의 대표적인 경제지 닛케이신문은 아시아 영문판에서 ‘베트남의 반부패 캠페인이 경제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반부패 단속으로 아세안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베트남 경제가 위협받고 있다’며 현재 베트남 상황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아시아 정치안보 전문가인 재커리 아부자(Zachary Abuza) 미국 국방대학교 교수는 지난 1월 17일 닛케이신문 특별기고에서 “유능한 관리들의 숙청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불안해 할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반면 유럽의 외교전문지 모던 디플로머시(Modern diplomacy)는 2022년 7월 ‘베트남의 반부패 전쟁’이라는 칼럼에서 베트남의 반부패운동을 적극 옹호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경제가 성장하는 베트남이지만 부패인식지수는 180개국 중 87위로 해외투자자들이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쫑 서기장의 적극적인 반부패 전쟁 덕분에 10년 전 117위에서 30계단 상승했다.
일각 ‘반부패운동 탓 경제위기’ 우려는 기우
일본의 과도한 베트남 걱정은 2016년 베트남 정치 상황과 오롯이 겹쳐져 ‘호들갑’이라고 평하고 싶다. 당시 베트남 중앙은행 총재 출신의 응우옌 떤 중(Nguyen Tan Dung) 총리가 2연임을 끝내고 당 서기장에 도전했다가 경선을 포기한 적이 있다. 적극적인 시장주의자이자 외국투자를 과감하게 끌어들이면서 규제를 대폭 완화했던 응우옌 떤 중 당시 총리는 재임 시절 끊임없는 측근의 부패 스캔들로 보수파들과 갈등을 빚고 있었다. 이에 자신의 정치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퇴임하는 연임 총리가 이례적으로 당 서기장에 도전해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2016년 당시에도 일본을 중심으로 한 해외 언론은 강경보수파가 서열 1위 당 서기장 자리를 차지하고 친시장주의자 세력을 부패 사슬로 옭아맨다며 “베트남의 개혁·개방 경제가 퇴보하고 베트남이 중국의 길을 가는 것 아닌가” 불안해했다. 게다가 ‘베트남 경제가 불안하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발길을 돌릴 것’이라며 지금처럼 우려를 표명하는 보도를 했다. 하지만 베트남은 해마다 최고의 경제 실적을 이뤄냈다. 강경보수주의자가 12년째 국가 권력서열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미국을 군사적으로 적극 끌어들여 중국도 견제하고 있다. 4000만도스의 백신까지 지원받아 코로나19 대위기도 무사히 극복하며 안정적으로 발전해오고 있다. 오늘도 베트남의 성장 기차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달리는 중이다.
호찌민 | 유영국 「왜 베트남 시장인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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