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파트 어떡해”…관리시스템이 불법복제품?

박홍주 기자(hongju@mk.co.kr) 2023. 2. 13.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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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단지 95% 관리 업체
타사 개발 SW 무단도용 의혹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국내 아파트 등 공동주택 3만3000여단지의 관리시스템이 국내 개발사의 프로그램을 불법으로 무단 도용해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제기돼 경찰이 수사를 진행 중이다. 업계에서는 해당 관리시스템이 전국 수백만 가구에 적용되며 아파트 단지 시장 점유율이 95%에 달하는 것으로 보는 만큼, 의혹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전국의 공동주택 관리시스템이 불법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13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공동주택·집합건물 통합관리업무솔루션 업체인 이지스엔터프라이즈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지난 2021년 12월 IT 개발업체인 쉬프트정보통신 측으로부터 “이지스엔터가 자사의 프로그램 개발 소프트웨어를 불법적으로 사용해 제3자에게 프로그램을 판매했다”는 고소장을 접수받은지 1년3개월여 만이다. 경찰은 조만간 수사를 마무리하고 기소의견으로 검찰 송치를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사진 = 연합뉴스]
이지스엔터는 전국 3만3000여개 단지의 공동주택·집합건물에 통합관리솔루션 및 관리비 자동이체 중계를 제공하고 있다. 전국 아파트단지 대부분의 관리비 납부 등 관리시스템이 이 업체의 소프트웨어로 작동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러한 이지스엔터의 관리시스템 소프트웨어인 ‘공동주택 통합관리 업무시스템(XpERP)’ 및 ‘상가관리 통합관리업무시스템(XpBIz)’ 등이 국내 개발사 쉬프트정보통신의 프로그램 개발 소프트웨어 ‘가우스’를 무단으로 사용해 개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는 점이다.

쉬프트정보통신의 가우스는 기업들이 사내 그룹웨어 등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이를 응용해 또다른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데 쓰이는 일종의 개발도구 소프트웨어다. 이지스엔터가 쉬프트정보통신의 소프트웨어를 구매하지 않고도 무단으로 사용해 아파트 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해 제3자인 아파트 관리사무소들에 판매해서 부당이득을 챙겼는지 여부가 사건의 핵심이다.

쉬프트정보통신 측은 ‘가우스’의 개당 판매가격을 500만원 내외로 추산하고 있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3만3000개의 아파트단지마다 가우스가 무단 사용됐으니 최소 1650억원을 지급받지 못했고, 각종 상가 관리사무소 계약 및 10여년 동안 불법사용을 숨긴 점을 감안하면 피해액이 2000억원대에 이른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지스엔터 측은 지난 2012년 쉬프트정보통신으로부터 ‘가우스’ 8개를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효성그룹 계열사였다가 이지스로 합병된 홍진데이타서비스 측이 사전에 구매했던 수량까지 합쳐 총 20개 안팎이다. 하지만 경찰이 이지스엔터 측의 서버를 압수수색한 결과 100개 이상의 ‘가우스’ 복사본이 깔려있던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지스 측이 구매했던 수량 이상의 ‘가우스’를 불법 복제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다.

형사 고소에 대한 경찰 수사와 별개로 민사소송도 진행 중이다. 쉬프트정보통신은 지난해 6월 이지스엔터를 상대로 가우스와 XpERP 및 XpBiz 사용금지를 구하는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기했다. 이어 11월에는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본안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해 진행 중이다. 법원은 지난해 12월 가처분신청에 대해 “(신청을 인용하면) 전국 아파트 단지의 관리시스템이 중단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기각했다.

쉬프트정보통신 측 관계자는 “우리같은 원천기술 회사는 소프트웨어 하나를 개발하기 위해 10년 이상 막대한 금액을 들이는데 다른 회사가 훔쳐쓰고도 처벌은 약하게 받을까 억울하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지스엔터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라면서도 “내부 보고 절차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최종 처분 시기 등은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매일경제는 이지스엔터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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