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여사 계좌, 2차 때 권오수 통해 재위탁…‘작전 연루’ 판단
윤 대통령 “2010년 5월 이후 관계 끊어” 해명과는 배치
권오수와 친분 정황…모친 계좌도 ‘차명계좌 운용’ 판단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심리한 1심 법원은 13일 판결문에서 여러 번 등장한 김건희 여사의 계좌 다수를 “시세조종에 이용된 계좌”로 판단했다. 공소시효가 남은 이른바 ‘2차 작전’ 시기에 김 여사의 계좌가 쓰였다는 사실을 법원이 인정함에 따라 김 여사의 주가조작 관여 의혹에 대한 수사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조병구)는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의 시세조종 행위별 유무죄를 판단하면서 2010년 10월 이후 2차 작전 시기에도 김 여사 일부 계좌가 작전 세력의 시세조종에 연루됐다고 판단했다.
대표적인 예가 2010년 11월 2차 작전을 주도한 ‘주포’ 김모씨와 블랙펄 인베스트먼트 임원 민모씨가 시세조종을 하는 과정에서 김 여사 계좌가 쓰였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거래일수나 횟수가 많지 않으나 이 거래들에서 해당 계좌(대신증권 계좌)는 피고인들 의사에 따라 시세조종에 이용한 계좌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에선 김씨가 당시 민씨에게 “3300원에 8만개 매도하라고 하셈”이란 문자를 보내자 7초 뒤 김 여사 계좌에서 8만주 매도 주문이 나온 일이 다뤄졌다. 재판부는 “해당 계좌에서 직접 주문을 낸 것이 누구인지 확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문자메시지를 통한 의사연락과 주문·체결 시점을 종합해보면 권 전 회장 또는 시세조종 세력에 일임됐거나 적어도 이들 의사나 지시에 따라 운용된 계좌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검찰은 재판에서 “당시 김 여사 명의 계좌는 영업점 단말로 김 여사가 직접 전화해 거래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김씨→민씨→이씨(2차 주가조작 ‘선수’)→권 전 회장→김 여사’ 순으로 연락이 간 것이냐고 캐물은 바 있다. 재판부는 김씨부터 권 전 회장 순으로 연락이 이뤄진 점은 인정했으나 김 여사가 직접 거래에 개입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2차 작전을 주도한 이씨와 김씨는 1심에서 유죄를 받은 터다. 여기에 더해 김 여사 명의 계좌가 이들의 범행에 이용됐다고 법원이 판단함에 따라 이씨와 김씨의 주가조작에 김 여사가 관여했는지 밝히는 것이 검찰 수사의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김건희 파일’에 거래 내역이 적힌 김 여사의 미래에셋증권·DS투자증권 계좌 역시 2차 주가조작 세력이 관리하며 시세조종에 이용한 계좌로 인정됐다. 블랙펄 인베스트먼트 측에서 관리하던 이 파일은 작성 시기가 2011년 1월이고, 거래가 이뤄진 시기는 2010년 11월로 재판부가 공소시효가 남아있다고 본 시기에 포함된다.
재판부는 “김 여사는 2010년 1월29일경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이씨(1차 주가조작 ‘선수’)에게 계좌관리를 맡겼다고 볼 만한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면서도 “(2차 작전이 시작된) 2단계 이후에 ‘주포’가 변경됨에 따라 범행 방식이 갱신되어 권 전 회장을 통해 재차 (계좌가) 위탁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에 담긴 1심 재판부의 이런 판단은 윤석열 대통령 측이 그간 내놓은 해명과 배치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김 여사가 2010년 이씨(1차 주가조작 ‘선수’)에게 위탁관리를 4개월간 맡겼는데 손실이 나서 돈을 빼고 절연했다”고 주장했다. 주가조작이 주로 벌어진 시기는 2011~2012년이며 이때는 김 여사가 주식 거래를 하지 않았다는 취지이다. 그러나 김 여사의 계좌가 2차 주가조작 시기에도 관련돼 있다는 사실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김 여사뿐 아니라 모친인 최은순씨 계좌 1개도 통정·가장매매에 이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최씨의 계좌를 권 전 회장이 차명계좌로 운용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주가조작 의심 계좌로 제시한 최씨의 또 다른 계좌에 대해서는 “최씨가 권 전 회장으로부터 도이치모터스 주식 정보를 듣고 직접 매매 여부를 결정했다”고 판단했다.
1·2차 주가조작 세력 모두에게 계좌를 빌려준 사람은 김 여사와 최씨 둘뿐이라는 사실도 판결문에 적시됐다. 두 사람이 권 전 회장과 오랜 기간 친분관계를 유지해온 정황도 적혔다. 김 여사와 최씨는 도이치모터스가 상장되기 전인 2008년부터 이 회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김 여사는 권 전 회장이 2011년 도이치파이낸셜을 설립할 때 투자하기도 했다.
법조계에선 제대로 된 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김 여사 계좌가) 단순히 동원된 계좌에 불과한지 당장 알기는 어렵지만 국민적 의문이 제기된 것은 사실이고 국민들은 이 사건을 권력에 관한 수사라고 생각한다”면서 “검찰이 신속히 수사를 해서 결론을 내고 그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세가 맞다”고 했다.
김희진·이혜리·강연주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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