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혈세 빼먹는 ‘좀비 위원회’…작년 117곳 회의 전무

우제윤 기자(jywoo@mk.co.kr), 홍혜진 기자(honghong@mk.co.kr), 전경운 기자(jeon@mk.co.kr) 2023. 2. 13.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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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 5년 한시운영 제한법
작년 행안위 논의되다 스톱
野 “3+3에서 논의하자”더니
논의안되고 질질 시간만 끌어

e스포츠진흥자문위원회는 지난 2012년 e스포츠진흥법의 제정과 함께 탄생했다. 급속도로 커지는 e스포츠 시장 활성화를 위해 만들어진 이 조직은 업계에서는 유명하다. 권한과 역할이 커서가 아니다. 11년간 위원회가 단 한번도 구성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활동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도 법 상으로는 살아있는 이른바 ‘좀비 위원회’인 셈이다.

이 위원회는 문재인 정부 당시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실질적 운영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근거 조항 폐지에 나섰다가 업계 반발 등으로 법이 통과되지 않아 살아남았다. 이후 황희 장관이 위원회를 구성해보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한번 만들어진 위원회를 없애기가 얼마나 힘든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처럼 상당수 정부 위원회는 일단 만들어진 뒤엔 역할이 있으나마나 한데도 이름과 조직만 유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616개의 정부 위원회 중 19%인 117개가 2022년 단 한 차례의 본회의조차 열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는 서면회의나 분과회의는 열었지만 위원회 전체의 회의는 없았다는 것은 중요 안건은 전혀 논의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정부부처 위원회에 여러 번 참여한 한 인사는 “참여했던 위원회 중 ‘밥값을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알찬 논의를 한 곳은 3분의 1정도에 불과했다”며 “실제 회의를 열지 않고 서면으로 갈음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자 작년 9월말 국회에 제출한 것이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 개정안이다. 행정기관의 장이 설치하는 모든 행정위원회나 자문위원회 운영기간이 5년을 넘길 수 없게 하고 2년마다 존속여부를 점검하는게 골자다.

기존에는 ‘한시적으로 운영될 필요가 있는’ 행정위원회와 ‘계속해서 존치시켜야 할 명백한 사유가 없는’ 자문위원회에만 일몰제를 적용했지만 이를 모든 행정·자문위원회로 확대하는 것이다.

만약 존속 기한 연장이 필요하면 행안부 장관과 사전 협의를 거쳐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가급적 기한이 연장되지 않도록 해 5년이 지나면 위원회가 없어지게 한다는 취지다. 앞으로 좀비 위원회들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하는 예방법인 셈이다.

하지만 이 법안은 작년 11월 30일 국회 행정안전위 1소위에서 처음 상정됐으나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 마디에 막힌 채 잠자고 있다. 국회속기록에 따르면 1소위원장이었던 김교흥 의원은 이 법안에 대해 “내일 (3+3 협의체에서) 협의하기로 돼있다”며 통과 대신 보류를 결정했다.

3+3 협의체는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정책위의장, 원내수석부대표, 행정안전위원회 간사까지 6명이 모인 협의체로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공공기관 장 임기와 대통령 임기를 일치시키는 내용의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개정안을 논의하기 위한 일종의 TF조직이다.

당황한 한창섭 행안부 차관이 “협의체에서 위원회 관련 논의는 없다”고 항변했으나 김 1소위원장은 “관련법이다. 오래 걸리지 않는다. 내일 협의한다”고 몰아붙여 결국 보류시켰다.

그러나 3+3 협의체에서 해당 법안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행안위 여당 간사인 이만희 의원은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협의체에서는 정부조직법과 공운법에 대해 논의했다”며 “위원회 얘기는 일언반구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이후 여야간 대치가 이어지고 3+3협의체 논의가 지지부진하면서 이 법안은 아직도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행안위 야당 간사인 김교흥 1소위원장은 “이태원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활동으로 논의가 지체됐다”며 “3+3 협의체에서 정부조직법과 함께 논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방법 뿐 아니라 현재 정부가 제출한 32건의 일괄 개정안도 거의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중 9건은 전체회의에서 안건으로 선정되지 못해 국회 상임위 법안심사소위에 회부조차 되지 않았다. 절반이 넘는 18건은 법안심사소위에 회부만 됐을 뿐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행안위 법안소위에 상정된 2건은 김 1소위원장이 심사를 보류시켰다.

국회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한 사례는 극소수다. 통일부 소속 납북피해자보상및지원심의위원회의 경우 새로 발생한 납북 피해자가 거의 없어 위원회 기능은 없지만 위원회 자체를 폐지하는 것은 재고해야 된다는 이명수 국민의힘 의원 등의 반대로 폐지 법안이 통과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우후죽순 늘어나는 위원회에 대한 수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박정수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는 “역대 정부가 초기에는 위원회를 줄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슬금슬금 늘리는 패턴을 보여 왔다”며 “행정부처가 위원회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를 정량·정성적으로 평가해 국회에 보고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의 시간, 빈도, 논의 성과, 정책적 기여도 등을 평가 항목으로 들었다.

위원회가 내실있게 운영되려면 위원회 회의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행정전문가는 “위원회 위원이 회의에서 한 발언을 공개하면 좀 더 책임감 있고 진지하게 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치적 편향성 논란도 잠재울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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