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사진 속 이슈人] 베네수엘라 학생들 마두로에게 "유권자 명부 다시 만들라"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AP 연합뉴스]

베네수엘라에서 2월 12일 '학생의 날'을 맞아 수도 카라카스에서 친·반 정권 시위자들이 대규모 집회를 가졌습니다. 현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정부를 지지하는 집회 규모가 더 컸지만, 학생들을 중심으로 2018년 선거 부정 의혹을 제기하며 재선거를 주장하는 시위의 목소리도 높았습니다.

베네수엘라는 19세기 초 독립을 위해 '라 빅토리아 전투'에서 싸우다 사망한 모든 청소년을 기리기 위해 2월 12일을 '학생의 날'로 정해놓고 있습니다. 라 빅토리아 전투는 1814년 2월 12일에 벌어졌습니다. 베네수엘라 독립운동의 지도자 호세 펠릭스 리바스는 학생들과 청소년들을 모아 군대를 구성하고 독립전쟁을 벌였습니다. 열악한 무기와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청년 군대는 왕당파 군대를 저지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같은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베네수엘라에서 학생 시위가 갖는 사회적 함의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날 집회에서 학생들은 마두로 대통령에게 새로운 유권자 명부 개설을 요구했습니다. 2018년 대선과 2020년 총선에 부정 의혹이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마두로 정권을 지지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습니다. 포퓰리즘 정치로 유명한 차베스의 계승자임을 자처하는 마두로는 중산층 이하 경제적 하층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마두로 정부를 합법적 정권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도 마두로 정권은 남미의 좌파정부들, 러시아, 중국 등과 외교 및 통상을 하며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던 차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유가가 뛰고 러시아로부터 석유수입을 중단하면서 바이든 행정부가 대(對) 베네수엘라 석유수입 금수조치를 일부 풀은 것이죠.

바이든 행정부는 산유국 베네수엘라와 협상을 추진했고 석유수입 금지 등 일부 제재를 완화했습니다. 예컨대 미국은 지난해 11월 마두로 정부와 야권이 협상 재개를 조건으로 미 정유사 셰브런의 베네수엘라 원유 생산을 승인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이 마두로 정권을 인정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이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니콜라스 마두로에 대한 우리의 접근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며 "그는 베네수엘라의 합법적인 지도자가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베네수엘라 국회가 오늘날 베네수엘라에 남아있는 유일하게 민주적으로 선출된 기관"이라며 과이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이 이끄는 '임시정부'를 합법정부라고 주장했습니다.

다만 2020년 총선에서 과이도가 이끄는 야당이 마두로가 이끄는 여당에 패하면서 그의 입지는 현재 대폭 축소돼 있는 상태입니다. 지난해 말에는 국회가 임시정부에 대해 해산 결정을 내렸고 4년 만에 과이도 체제는 막을 내렸습니다.

마두로 대통령은 지난달 신년 인터뷰에서 미국과 관계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는 "베네수엘라는 현 미 정부는 물론 앞으로 출범할 행정부와 외교 및 영사, 정치 관계 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베네수엘라 자유우파 학생 단체를 중심으로 반 마두로 세력은 지속적으로 반정부 활동을 이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학생 활동가, 각 대학 학생회, 자유민주 진영 정당의 청년 당원들을 중심으로 2024년 대통령 선거에 초점을 맞춰 선거 당국에 전국적인 투표 등록을 재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12일 오전 10시부터 카라카스의 외곽의 차카이토 플라자 브리온에 모여 시내 중심부의 국가선거위원회(Consejo Nacional Electoral, CNE) 본부까지 행진했습니다. 하지만 보안군이 시위대의 시내 접근을 차단하며 작은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베네수엘라가 2024년 대통령선거에서 선거의 무결성을 확보해 정상적으로 국민의사가 반영된 선거 결과가 나올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마두로 정권에 대한 정통성의 의심은 지속적으로 제기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규화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