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품없다고?” 눈 내린 한라산 어리목 직접 가봤더니…
윗세오름 대피소 재단장으로 편의성 더해
영실기암 절경을 마주하는 영실 탐방로
미끄러운 눈밭으로 아이젠과 스틱은 필수
한라산 탐방로 중 제일로 치는 것은 한라산 백록담까지 닿을 수 있는 관음사 코스와 성판악 코스, 그다음은 영실기암의 절경을 조망하는 영실코스다. 그리고 그 뒤에 붙는 것이 바로 어리목 코스다. 얕은 동산이 이어지는 코스인 까닭에 별 볼품없다는 오명을 안고 있다.
하지만 설산이 두려운 이 또는 등산 초보자인 등린이, 마지막으로 눈 내린 한라산 등산을 꼭 한 번 해보겠다는 이라면 어리목 코스는 탁월한 선택이다. 혹시 다른 코스를 다 섭렵한 이라면 어리목 코스의 진짜 매력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주차공간을 제외하고는 눈이 허리춤까지 쌓인 겨울 왕국이다. 본격적으로 등산로에 들어서기 전부터 아이젠 등 장비를 착용해야 한다.
허리춤까지 쌓인 눈과 나무에 핀 눈꽃 등 따뜻한 서귀포와는 180도 다른 풍경이다.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로 체력 소모는 배가 되지만, 겨울 산이 주는 에너지에 힘이 솟는다.
어리목 목교에서 사제비 동산까지, 약 1.9㎞가 경사가 급한 오르막 구간이다.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으로 지쳐갈 때면 서로 격려하는 인사 소리 벗 삼아 발걸음을 이어가면 된다.
숨이 가빠 멈춰 선 자리에서는 등산객들의 정이 피어난다. 곳곳에 있는 쉼터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면, 정겨운 인사말과 함께 커피와 초콜릿 등 각종 간식거리가 오간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보면 다시금 산을 오를 힘이 차오른다.
너도나도 같은 마음인 듯, 곳곳에는 눈 천사, 눈 오리 등 앞서간 등산객들의 동심이 스며있다. 인증 사진을 남기고 또 관광객들이 남긴 흔적을 보며 천천히 걷고 있으면 곧 한라산 서벽이 보인다.
서벽이 보이면 고생은 끝났다고 보면 된다. 마지막 남은 야트막한 언덕과 만세동산 전망대를 지나 10분 정도만 걸으면, 어리목 코스의 목적지 윗세오름 대피소다.
최근에는 노후화로 인해 안전상 위험으로 출입을 금지했던 제1대피소를 허물고 현대식 건물로 새단장했다. 의자와 히터 등 난방시설을 구비해 더욱 따뜻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대피소 지붕 건물에는 등산객이 앉아 쉴 수 있는 나무 데크를 설치해 한라산 설경을 보며 휴식할 수 있게 했다. 여기 이 데크가 한라산 백록담에 버금가는 명소다. 계단에서 한라산을 배경으로 간식 인증 사진을 찍는 것이 SNS에서 유행처럼 자리 잡았다.
드넓게 이어진 평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밥도 먹었겠다, 나름의 정상도 찍었겠다, 편안한 마음에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등 뒤로 우뚝 선 한라산 화구벽의 위용에 시선을 빼앗겨도 좋다.
길을 피하는 것도 주의가 필요하다. 한겨울의 한라산에는 등산 데크 그보다 위인 밧줄 위까지 눈이 쌓인다. 때문에 마주오는 등산객을 피하기 위해 잘못 발을 디디는 순간 데크 아래 깊은 구덩이로 발이 빠지기 일쑤다. 서로 배려하는 산행이 필요한 이유다.
영실 휴게소에 이르렀다고 등산이 끝난 것은 아니다. 겨울철에는 적설로 인해 영실 매표소부터 영실 휴게소까지 차도를 통제하는 것이 부지기수다. 때문에 영실휴게소에서부터 약 2.5㎞ 거리를 걸어내려와야 비로소 등산이 완전히 끝난다.
영실 매표소에서는 버스와 택시 등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다. 23년 2월 기준 영실과 어리목을 오가는 택시 기준 요금은 2만5000원 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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