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의 D사이언스] "챗GPT발 AI 경쟁, 시스템반도체 초격차기술로 승리해야죠"

이준기 2023. 2. 1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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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안 늘리면 '반도체 식민지' 전락
패권경쟁 치열한데 경쟁국에 비해 투자 크게 부족
성장잠재력 무궁무진한 시스템반도체 적극 키워야
결국 우수인재 양성이 경쟁 승패 좌우
4대 과학기술원·지방거점 국립대를 인재양성소로
계약학과에 파격 장학금… 인력 10배 더 배출해야
아직도 연구 갈증, 설계기술 혁신 목표
AI로 자동화한 '5I 융합설계' 원천기술 세계 주목
머지않은 미래에 설계 완전 자동화 시대 열겠다
KAIST 제공
KAIST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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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의 D사이언스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반도체 산업이 무너지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없다. 미국과 중국뿐 아니라 일본, 대만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투자를 늘리지 않고 우수한 인재를 키우지 않으면 '반도체 강국'에서 '반도체 식민지'로 전락할 수 있다."

고성능 반도체 설계 전문가이자 AI(인공지능) 반도체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반도체 기술패권 전략으로 '투자 확대'와 '인력 양성'을 내세웠다.

김 교수는 "우리의 주력산업이자 먹거리인 반도체가 흔들리면 국가 전체 산업과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 대한민국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고 반도체가 곧 국가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모든 분야에서 반도체 수요가 늘면서 주요 선진국들은 관련 기술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최근에는 챗GPT를 비롯한 초거대 AI가 부상하면서 반도체의 중요성이 한번 더 부각되고 있다.

그는 "갈수록 심해지는 미국, 일본, 중국, 대만의 기술 견제 속에서 우리나라가 반도체 초격차를 유지하려면 정부 차원의 과감한 투자와 지원, 그리고 대학을 중심으로 우수한 반도체 인력을 키우는 선순환 반도체 생태계 구축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대담=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고성능 AI 시대 대비 '시스템반도체' 키워야=격화되는 반도체 기술패권 경쟁에서 우리나라가 집중해야 할 반도체 분야로는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를 꼽았다.

김 교수는 "우리는 메모리 반도체에 강점이 있는 만큼 앞으로 AI반도체 같은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기술적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챗GPT 같은 고성능 AI 구현을 위해 메모리 반도체 수요는 더욱 늘어나는 만큼 한 발 앞선 초미세, 초고층 구조 메모리 반도체 개발에 집중하면서 우리가 취약한 시스템반도체 관련 기술개발 투자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도체 인력은 기업 수요에 맞는 교육과 연구를 강화해 반도체 설계 인력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인력을 지금보다 10배 더 많이 배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KAIST를 포함한 4대 과학기술원과 지방 거점 국립대에 산업체와 반도체 계약학과를 만들어 파격적인 장학금 지원과 혜택을 부여해 '반도체 인력 양성소'로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팹리스(설계)-파운드리(위탁생산)-패키징(후공정)으로 이어지는 반도체 생태계에서 기술 지배력이 크고, 성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시스템반도체 패키징 분야에서 초격차 기술을 확보할 수 있도록 반도체 설계기술의 혁신을 주도하겠다"고 밝혔다.

또 "반도체 기술 혁신은 저전력·고성능·냉각기술 등이 관건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AI를 활용해 반도체 설계를 완전 자동화하는 시대를 열기 위해 반도체 융합설계 기술 확보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수학에 푹 빠진 소년, AI 반도체 전문가로=김 교수는 어릴 적 호기심이 많았다. 그 호기심은 수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수업이 끝난 쉬는 시간뿐 아니라 집에 돌아와서도 수학문제 푸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급기야 당시 청계천 헌 책방에 가서 한 단계 높은 수학책을 골라 스스로 풀며 수학에 대한 호기심을 해소했다.

그는 "형과 누나 모두 문과생이었는데, 유독 나만 수학에 흥미와 재미를 느껴 이과생이 됐고, 공과대학에 진학했다"면서 "대학에 가서도 다른 학과에서 배우는 수학과목을 찾아서 들었다. 대학에서 가장 많이 듣은 수업이 수학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학창시절 수학을 통해 자연스럽게 논리적 사고와 창의력을 기를 수 있었고, 공학도로서 기초 역량을 쌓을 수 있었다. 김 교수는 "수학은 다른 과목에 비해 문제를 풀었을 때 성취감이 크고, 외우지 않고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라며 "수학 중 가장 아름다운 과목은 '선형대수학'이고, 복소수와 미분방정식 수업이 반도체 설계에 큰 도움을 줬다"고 수학 예찬론을 폈다.

AI 전공자가 아님에도 주전공 분야인 반도체와 융합해 'AI 반도체' 분야를 개척하고 세계적 석학으로 인정받은 것은 어릴 적부터 가진 수학에 대한 흥미 덕분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선택한 '반도체 인생'…융합 설계분야 개척=김 교수의 호기심은 대학에 들어가 빛을 발했다. 학부와 석사, 박사 시절 전공을 서로 다른 분야로 정해 융합의 힘을 길렀다. 학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원에 진학해선 전공을 바꿔 플라즈마를 연구했다. 박사과정에서는 펨토초 레이저와 물리학을 전공했다.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과학기술을 통해 혜택과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 반도체 분야를 평생의 '업(業)'으로 선택했다"고 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올 당시 인터넷 수요가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메모리 반도체가 새로운 산업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김 교수는 당시 일본의 기술력을 추월하기 위해 반도체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던 삼성전자 메모리 부서에 취업했다. 입사 당시 삼성전자에는 우리나라 반도체 신화의 주역이었던 진대제 전 정통부 장관과 임형규 전 삼성전자 사장, 고졸 사원으로 삼성전자 첫 여성 임원에 오른 반도체 전문가인 양향자 국회의원 등 쟁쟁한 인물들이 포진해 있었다.

김 교수는 D램 설계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반도체 기술 고도화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이를 실현하는 방안은 무엇인지 골몰했다. 이후 2년 간의 직장 생활을 마치고,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으로 연구에 매달렸다.

그는 "입사 당시 삼성전자가 64M D램 개발에 성공해 세계 메모리 반도체 선두주자였던 일본을 본격적으로 추월하기 시작했다"면서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메모리 반도체 강국 위상을 이어온 것은 과감한 투자와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반도체 설계 분야' 독창성 인정=김 교수는 KAIST에서 20년 넘게 산업체와 협력을 이어오고 있다. 파트너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한화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간판 기업이자 글로벌 기업들이다.

그는 다양한 연구 아이디어를 산업체와의 소통을 통해 얻었다고 말했다. 산업체가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있는 것도 항상 산업계와 교류하며 산업 현장의 어려움과 애로를 잘 알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고성능 반도체 구현을 위해 신호선 설계(SI)와 전력선 설계(PI)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10년 전부터 SK하이닉스와 공동으로 '고대역폭 메모리(HBM)' 설계 기술을 개발해 이를 적용한 제품을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공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HBM 메모리는 D램을 여러 층으로 쌓아 올려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인 것으로, AI 반도체에 쓰인다. SK하이닉스가 생산하는 HBM-3는 세계 AI반도체 시장의 85%를 차지하며 AI 컴퓨팅에 가장 많이 쓰이는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다.

김 교수는 "챗GPT 등장으로 클라우드 서버나 데이터센터용 고성능 서버 수요가 급증하면서 앞으로 HBM 제품의 시장은 더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교수는 시스템반도체 패키징 설계 분야에서도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다. 특히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기반으로 신호선 설계(SI), 전력선 설계(PI), 기계·열 설계(TI), 전자파 설계(EMI), 구조 설계(AI) 등의 반도체 설계를 융합해 AI로 자동화한 '5I' 기술을 개발했다.

그는 "5I 기술은 고성능, 저전력, 다기능 반도체 설계 전 과정을 AI로 자동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앞으로 반도체 설계를 AI가 100% 하도록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제자들도 세계를 무대로 '맹활약'=연구에 있어 독창성과 융합, 협력을 강조하는 김 교수의 제자들은 글로벌 반도체 무대에서 스승 못지 않게 맹활약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 삼성전자 정기 인사에서 최연소 임원 승진자가 김 교수의 제자였고, 또 다른 제자는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상 수상을 앞두고 있다. 또 약 40명의 제자가 구글, MS, 애플, 퀄컴, 인텔, 엔비디아, 마이크론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에서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국내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한국기계연구원, KAIST 등에서 반도체 설계 분야를 리드해 가고 있다.

김 교수는 "1년 한 두 번은 연구실 제자들과 선배들이 취업한 미국 실리콘밸리나 한국의 수원, 판교 등에서 선후배 워크숍을 열어 토론과 교류를 한다"며 "이를 통해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를 얻고 어려움과 우정을 나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김 교수가 지도하는 박사과정생 4명이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국제학술대회 '디자인콘'에서 최우수 논문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낭보가 전해졌다.

이번 수상이 더욱 값진 것은 전체 수상자 8명 중 절반인 4명이 김 교수 연구실 소속 학생이었고, 이들이 인텔, 마이크론, AMD 같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소속된 엔지니어 등과 경쟁해 수상했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지난 30년 간 쌓은 학문적 성과와 경험, 노하우를 KAIST 후배 교수들에게 전수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KAIST가 세대를 이어 퇴직을 앞둔 선배 교수의 연구업적을 이어갈 수 있는 초세대 협업연구실로 김 교수의 '시스템반도체 패키징 연구실'을 선정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뛰어난 제자들과 함께 연구하면서 반도체 설계 분야의 '퍼스트 무버'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며 "지금껏 창의적인 연구를 하면서 전 세계 사람들과 교류하는 기회를 가지고, 그 결과 국가와 산업 발전에 기여한 것이 가장 큰 행복이자 보람"이라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계획에 대해 "아직도 연구에 대한 설레임과 목마름을 느낀다. 기존 컴퓨터 언어를 뛰어넘는 새로운 언어와, 이전과 전혀 다른 컴퓨터 구조도 연구 대상 중 하나"라며 "세계적인 반도체 설계 기업인 영국의 암(Arm)사와 EDA(반도체설계자동화)에 의존하지 않고, 머지 않은 미래에 반도체 설계를 AI를 통해 완전 자동화하는 혁신적인 기술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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